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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Oct 16. 2019

공감은 어려워

공감의 말은 어떻게 하는 걸까? 공감능력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



“그러니까 지금 너는 내 말은 안 믿고 기사는 믿는다는 말이지?” 

방금 전까지 열을 내며 언쟁을 했던 내 머릿속은 그야말로 하얗게 변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남자들은 대부분 공대 출신이어서, 혹은 인문계열 출신이더라도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 이를테면 문학, 정치, 사회문제들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만날 때면 나 혼자서 신나게 내 관심사에 대해 떠들어도 돌아오는 답변은, ‘아 그래?’ 라거나 ‘정말?’ 혹은 ‘뭐 먹을래?’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몇 해 전 대다수의 국민들이 한겨울의 길거리에 모여 촛불집회를 할 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다고 했고, 나와 정치적 견해가 어느 정도 비슷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났다 하면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 곧잘 토론을 하곤 했었는데 그때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던 그즈음이었다. 곧 손에 잡힐 것 같은 평화에 신난 우리는 평화의 상징이라며 평양냉면을 먹고 차를 마시기 위해 카페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이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북한에 투자를 해야 한다느니, 어서 빨리 종잣돈을 마련해서 우리도 이 시국을 타서 부자가 한번 되어보자며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던 와중이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고 했을 때 나는 불안했었잖아. 내가 살아생전에 전쟁이 날까 봐. 그런데 이렇게 되네?”

내 말에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너 그거 알아? 사실은 오바마가 북한에 전쟁 선포하려고 했는데 참모진이 말렸었대잖아.” 

내가 실소하며 

“에이~ 설마. 서울에 사는 미국인이 얼마나 많고,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아니야 진짜라니까!” 

그는 핏대를 세우며 사실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나는 왜 그것과 관련된 기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어디서 본 내용이야?” 


이것이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든 그의 대답 전에 우리가 나눈 대화였다. 


헤어지기 전까지 나에 대한 그의 여러 가지 불만사항 중 하나는 내가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 공감능력이 떨어진 다는 것.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어떤 이야기이든 무조건 믿을 수는 없다는 것. 공감이 되지 않는데 거짓으로 공감하는 척은 할 수 없다는 것.


나는 4남매 중의 맏이로 자랐다.  형제가 많은 집은 으레 그렇듯이 우리는 자주 싸웠고 나는 빨리 해결하고 싶어 했다. 중재할 때는 어느 한쪽 말만 믿을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대가족 사이에서 체득하여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본인의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으면 냉큼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봐야 할 것 같고, 그가 가진 고민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해결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부모님의 부부싸움 후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야! 너네 아빤 대체 사람이 왜 그런다니. 아휴 내가 못살아 진짜.”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하면 나는 먼저 엄마에게 사건의 발생원인이 무엇인지, 전개는 어떻게 되었는지, 결론은 무엇인지 묻는다. 들어줄 사람이 있어 신난 엄마가 부부싸움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을라치면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야?” 라며 사실만 말하라고 선을 그어주고는 모든 이야기가 끝나면 “들어보니 엄마도 잘한 거 없는데? 둘이 똑같은데?” 라며 사법고시도 치르지 않았으면서 재판관처럼 시시비비를 가려준다. 엄마가 나에게 원한 건, 그저 본인의 답답함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일인데 나는 이 모든 논쟁이 빨리 해결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의 반응에 엄마는 으레 “못된 년, 써글 년, 그래 너 잘났다!”하고는 분노의 방향을 나에게로 전환하여 전화를 끊어버리곤 한다. 


얼마 전 15년을 함께했던 강아지가 죽었다. 내 품에서 죽은 아이를 안고 병원에서 사망진단을 받은 후, 혼자 강아지 화장장에 가서 장례를 치르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강아지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에게 괜찮냐며 물어보는 친구의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났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야 너도 참.. 우리 복길이 몇 번이나 봤다고 우냐?”라며 괜히 면박을 주었다. 그 당시에는 몇 번 보지도 않았던 내 강아지의 죽음에 울어주는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은 그 친구의 울음이 혼자서 강아지 장례를 치르던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것은 감정적인 사람들보다 더욱 나은 가치라고 믿고 있었던 내가 실은 다른 사람에게, 상황에게 공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성적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가 자신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믿어주지 않는 나를 비난할 때 내 머릿속이 하얗게 된 것은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만큼 위로를 건넨 적도 없었고 누군가의 따듯한 말 한마디에 위로가 되었던 기억도 없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했고, 인터넷에 넘쳐나는 감동 스토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좋아요를 누른다.  


최근 인터넷에서 어느 정신과 의사가 쓴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글을 읽었다. 보통 자기 삶에 대한 만족이 높은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이야기였다. 그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는 않았지만 나를 대입해본다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보다 내 삶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건넨 주었던 말들이 내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지만 분명 그 모든 것들이 내 몸속 어느 한 곳에, 내가 걸어온 길 한편에 새겨져 있을 것임에도 나는 아직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긴 한 걸까? 

제발 누가 공감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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