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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Dec 10. 2020

다 안다는 착각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 더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


얼마 전 동생이 부모님과 아침식사 시간에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내가 아침밥을 차렸으니 이제 당신이 커피 좀 끓여오소” 

엄마의 말에 아빠는 바로 일어나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엄마에게는 연하게 탄 커피를(설탕과 프림이 없는), 본인은 본인 취향대로 믹스커피를 한잔씩 타서 가지고 오더라는 이야기를.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바로 대꾸했다. 

“야, 말도 안 돼. 아빠가 무슨 커피를 타? 물도 안 떠다 드시는 분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야 언니. 진짜야. 아빠가 커피를 타 오더라니까?”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아는 아빠는 물 한잔도 본인이 직접 떠 드시는 일이 없는 분이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아빠는 엄마의 그런 이야기에 벌컥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집을 떠나왔다. 인근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은 만 15년에 불과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산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의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초반의 성격과 성향을 내 부모님의 모습이라 믿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들이 사십 대 후반, 오십 대를 거쳐 육십 대인 지금의 모습은 나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므로 내가 알고 있던 부모님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였던 것이다. 


몇 년 전, 마당에서 사과 분류 작업을 하던 중 아빠가 시계를 보더니 급하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일하다가 말고 갑자기 아빠가 사라져 버려 놀란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왜 그래?” 

“드라마 할 시간이야” 

엄마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어? 아빠가 드라마를 챙겨본다고? 에이 말도 안 돼. 아빠가 무슨 드라마를 봐.” 

“일일연속극은 꼭 챙겨봐. 지금 딱 8시 반이잖아. 드라마 할 시간이야.” 

헐. 

정말 헐이었다. 내가 알던 아빠는 항상 뉴스만 보는 사람이었는데,  뉴스 이외의 프로그램은 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아빠는 엄마와 같이 일일연속극도 챙겨보고, 주말 드라마도 챙겨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엄마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사람이었다. 아빠가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가자고 해도 엄마는 아빠 혼자 보내며 집에 남아서 농사일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편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는데,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전에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여성농민회 활동을 하며 친해진 친구분들과 1박 2일 즉흥여행을 떠난 것인데, 엄마가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 속에 엄마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온갖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고, 그녀들은 델마와 루이스처럼 거침없이 포항에서부터 속초까지 여행을 했다. 배낭여행을 좀 해봤다고 자부하는 나도 항상 여행을 떠나기 전 숙소를 먼저 잡고 여행을 일정을 짜기에 엄마에게 숙소는 미리 잡았는지 물었는데 엄마의 야무진 대꾸에 놀라고 말았다. 

‘숙소는 가다가 맘에 드는 곳 있으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자면 되지 뭐. 뭐가 걱정이야’ 

헐. 

내가 알던 엄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항상 움추러 든 모습이었는데 이토록 용감한 사람이라니! 


엄마가 맹장 수술을 했을 때, 아빠는 수술실에 들어가는 엄마 침대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분들이 그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긴, 엄마가 입원해있는 동안 아빠는 봉화에서 안동까지 매일매일 엄마를 만나러 갔으니까. 교통사고로 엄마가 다쳤을 때도 울음이 가득 배어있는, 잠긴 목소리로 내게 전화했던 아빠이니까. 내가 알던 아빠는 자주 화를 내고, 감정표현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아빠는 드라마를 보다 감정이입을 해서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이다. 내가 웃긴 이야기를 하면 이전에는 "지랄하네” “까불기는”이라며 혀를 차면서 못마땅해했는데 이제는 같이 웃는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이 아프면 함께 병원을 다니고, 누군가의 실수에도 이전처럼 쉽게 화를 내지 않으며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다. 아빠는 엄마가 밥을 차리는 동안 대강이지만 걸레질을 하기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을 자주 사 오며, 엄마는 아빠가 각종 모임으로 집을 비워도 이전처럼 닦달하지 않는다. 


내가 알던 부모님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내 부모님이라서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오만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는 지를. 부모님도 나를 다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아는 나는 15살의 어린 내 모습일 테니 말이다. 내가 회사에서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 내가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즐겨먹는지, 내 운전습관이 어떤지 그들은 모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이제까지 규정지었던 내 부모님의 성격은 겨우 그들의 이십 대, 삼십 대의 모습이니까. 내가 두 사람의 딸이라서 두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며칠 전, 사촌동생의 결혼식장에서 아빠가 내게 말했다. 

“너그 동네도 코로나 심하제? 뉴스 보이 그렇더라. 항시 조심해라” 

나는 저 말을 해석하는데 한참 걸렸다. 아, 우리 아빠가 이토록 다정한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기억을 되돌려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었다. 나는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인 아빠가 다정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던 것이다. 내가 임용고시에 떨어졌을 때 아빠는 내게 “시험은 또 보면 되지 뭐”라고 했고, 준비했던 은행권 취업에서 실패했을 때도 “내년에 다시 보든가” 라며 무뚝뚝한 위로를 건넨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성격과 성향의 틀에서 벗어나서 그들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집을 떠나온 그때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달라진 것처럼, 내가 알던 그들도 그때의 그들과 많이 달라졌던 것이다. 내가 그들의 가족이므로, 딸이므로, 첫째이므로 내가 그들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것은 또 무척 무지했던 판단이었고, 비상식적이기도 했다. 내가 알던 모습과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변한 만큼 내가 아는 사람들도 변할 수 있다는 생각, 나에게는 친절하지만 누군가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 누군가를 평가할 때(그것이 가족일지라도) 쉽게 단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조금 더 교양 있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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