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고속도로에는 회전교차로가 없었다
더블린 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한 렌터카 업체로 향하는 길. 동생이 아일랜드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인지 나에게 말했다. “아일랜드 고속도로에서는 카드 결제도 되는데, 안 되는 곳도 있으니 동전을 좀 만들어야 해. 물이랑 간식 좀 사 올게.” 나는 캐리어 두 개를 맡아서 렌터카 업체에서 보내주는 승합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우리가 예약한 렌터카 업체의 로고를 단 승합차가 공항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동생과 함께 무거운 캐리어 두 개를 넣고 승합차에 올라탔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사히 차를 렌트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와 달리 운전석 방향도, 주행 방향도 반대인 곳에서 사고 없이 골웨이와 둘린을 거쳐 더블린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설렘과 걱정을 안고 렌터카 업체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장 싼 도요타를 예약했는데 아우디를 배정해주었다. 보증금을 내려는데 내 카드 한도가 초과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숙소나 항공권 등을 모두 카드로 예약했는데, 카드 결제일 전이라 한도가 적었던 내 카드로 3백만 원가량의 보증금 결제가 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선결제로 카드대금을 결제하고 나서야 (동생 카드로는 보증금을 낼 수 없다고 했다. 예약한 사람의 카드여야 한다나) 보증금을 내고 우리 차로 향할 수 있었다. 3일 동안 우리가 타게 될 아우디의 앞 범퍼엔 알 수 없는 흠집들이 많았고 나는 서둘러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카운터로 달려가 직원에게 말했다.
“야. 차에 뭐가 이렇게 흠집이 많아. 같이 확인 좀 해줘.”
직원이 시크하게 말했다.
“동영상 찍었네? 그럼 괜찮아. 문제 될 거 없어.”
뭔가 찝찝했지만 문제 될 것 없다는 말에 다시 차로 달려갔다. 그 사이 동생은 차에 시동을 걸어보고 이것저것 확인을 하더니 기름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주유 확인창 눈금은 바닥을 향해 있었고 그걸 확인한 나는 다시 차에서 내려 카운터로 달려갔다.
“야. 이거 기름 가득 채워줘야 하는 거 아니야? 기름이 없는데?”
이번엔 직원과 함께 확인을 했다. 직원은 다시 매니저에 달려가 사정을 설명했고 그들은 렌터카 계약서에 ‘이 차는 반납할 때 기름 없이 반납하면 됨’이라고 매니저의 사인과 함께 메모를 해주었다.
차를 렌트하면서 카드 승인한도 초과가 뜨지를 않나 카운터까지 여러 번 뛰어다녔더니 출발도 전에 내 넋이 나가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생은 운전석이 반대인 차를 몰고 주행 방향이 반대인 아일랜드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동생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나라와 주행 방향이 반대라니! 우리가 이곳에서 차를 렌트해서 운전을 한다니! 신기한 기분도 잠시,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기름 때문에 휴게소를 찾아야 했다. 휴게소 표지판이 맞는 것인지 몰라 두 개 정도 휴게소를 지나치고 나서야 겨우 휴게소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주유소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주유기에 차를 대고 먼저 주유를 한 다음에 휴게소 안에 있는 슈퍼에서 결제를 해야 했다. 즉, 주유기 번호를 알려주고 우리가 넣은 기름만큼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나라 셀프주유소와는 다른 시스템도 신기했다. 그 신기한 시스템 속에서 실수 없이 무사히 주유를 마친 우리도 대견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화장실도 갈 겸, 점심도 먹을 겸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실수 없이 햄버거를 주문했고 결제도 무사히 마쳤다. 비록 우리는 런던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지만 아일랜드에서의 여행은 순조로웠기에 더욱 아일랜드가 기대되었다.
더블린에서 골웨이까지 이어진 고속도로도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도로 옆으로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푸른색 초원이 펼쳐졌고,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끼고 나면 잠시 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하늘은 곧이어 다시 맑아졌고 우리는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음악을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우리의 기분은 마냥 좋았다.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으랴. 고속도로 옆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초원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도 그림 같았다. 첫 번째 톨게이트에서는 다행히 카드로 결제를 했다. 너무 쉽다. 이렇게 쉬울 줄이야! 연신 감탄을 했더랬다. 그리고 문제는 두 번째 톨게이트에서 터졌다. 마치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처럼 우리의 운은 첫 번째 톨게이트에서 수명을 다해버렸다.
두 번째 톨게이트에서도 카드와 동전 결제가 동시에 될 수 있는 곳으로 진입했는데 카드결제가 되지 않았다. 당황했다. 아뿔싸, 아까 휴게소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면서 나는 버릇처럼 가지고 있는 동전을 탈탈 털어 주문을 해버렸다. 우리에게는 동전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부러 동생이 동전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나는 해외여행 중 동전을 만들면 나중에 처치곤란이라는 생각에 동전을 다 써버린 것이다. 헬프 버튼을 눌렀다. 안내원이 이내 대답을 했고 나는 우리의 상황을 설명했다. 안내원이 블랙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블랙 버튼은 없었다. 안내하시는 분은 계속해서 블랙 버튼을 누르라고 했고 없는 블랙 버튼을 자꾸 누르라고 하니 짜증이 났고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이미 우리 뒤에는 차량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2,3분쯤 지났을 무렵,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시 블랙 버튼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멘붕인 상태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데 뒤차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미안함 마음에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운전자에게 달려갔더니 인상 좋은 아저씨가 동전을 건네주었다. 살았다. 연신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아저씨가 건네준 동전을 있는 힘껏 동전통에 던졌다.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뒤차에서 연신 클락션을 울려댔을 테고 이미 정신이 나간 우리의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겠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기다려주었다.
우리가 아일랜드에서 느낀 것 중 최고는 여유로움이었다. 어찌나 여유롭던지 시속 100킬로 속도제한 도로에 회전교차로가 있었다. 실은 처음 회전교차로를 맞이하고서 고속도로에 중앙에 회전교차로 있다고 생각했더랬다. 더블린에서 골웨이로 가기 위해서 M4, M6 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회전교차로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시속 100km/h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처음 회전교차로를 맞이했을 때는 고속도로가 끝난 줄도 몰랐다. M4, M6 같은 고속도로는 속도제한이 120km/h, N6 같은 국도는 100km/h 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에는 도로가 변경되었다는 표지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회전교차를 맞이하고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와! 아일랜드에는 고속도로에도 회전교차로가 있어! 미쳤어!"
또 둘린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플로리다에서 여행을 온 부부를 만났다. 아일랜드에 대해 서로의 감상을 나누던 중에 남편분이 나에게 물었다. “한국에도 고속도로에 회전교차로가 있니?” 나는 대답했다. “Nope! Absolutely not.” 아저씨는 “정말 미친 짓이야. 어떻게 고속도로에 회전교차로가 있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라고 했다. 나도 동감했다. 그러나 이건 우리 둘 다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일랜드 고속도로에는 회전교차로가 없다. 그저 우리는 M6 고속도로와 N6 국도를 같은 도로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고속도로와 국도의 차이가 별로 없었고, 속도제한이 100km/h 인 도로는 당연히 고속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 그렇지만 이곳은 여유가 만만한 아일랜드이니까. 속도제한이 100km/h인 국도에서 그 속도로 주행하는 차는 우리밖에 없었으니까. 주행 차선과 추월차선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므로 고속도로에 회전교차로가 있다고 오해할만했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전교차로에서 사고가 자주 날 것 같지 않았다. 둘린을 거쳐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탈 때 우리는 동전도 넉넉히 준비해두었고, 회전교차로가 나와도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핸드폰 데이터를 다 써버리는 바람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더블린에서 찢어진 지도 한 장으로 간신히 렌터카 반납 장소를 찾았다. 겨우겨우 렌터카를 주차하고 카운터로 가서 자동차 키를 반납했다. 직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심지어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렌터카 반납하는 일이 쉬운 일이었던가. 한국에서는 직원들이 나와서 차를 확인하는 데 이곳 직원들은 의자에서 엉덩이도 떼지 않았다. 범퍼에 있던 흠집들이 찝찝했던 나는 나가려다 말고 다시 카운터에 물었다. 차를 받을 때부터 앞에 흠집이 있었는데 확인해야 하지 않느냐고. 직원은 시크하게 말했다. “우리도 알고 있어. 괜찮아. 가봐도 돼” 아일랜드에서 차를 렌트하고 반납하는 게 이리도 쉬울 수 있다니. 그러나 한국인의 촉이었을까. 나는 계속해서 찝찝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한 달 뒤, 보증금이 반납되었는데. 아뿔싸. 8만 원가량이 빈 채로 반납이 되었다. 의아해서 메일을 보냈더니 돌아온 답변은 ‘기름을 가득 채워서 반납해야 했는데 빈 채로 반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이 렌터카 계약서에 적어주었던 메모를 사진 찍어서 다시 메일을 보냈고, 이주일이 좀 지났을까. 8만 원까지 환불받을 수 있다. 휴우
그럼 그렇지. 세상에 쉬운 일이 없지.
그럼에도 또다시 아일랜드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에도 차를 렌트해서 아일랜드 시골을 다니고 싶다. 뱀이 없는 섬나라. 우리나라처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로 나뉜 나라. 게일어와 영어를 동시에 표기하는 나라. 음악의 나라. 초록의 나라. 동네마다 펍이 있는 나라. 저녁이면 펍에 모여 신나면서도 슬픈 아이리시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잔으로 이웃과 이야기 꽃을 피우는 나라. 좁은 도로 옆으로는 눈부신 초원과 그림 같은 집이 있는 나라. 무엇보다 여유로운 사람들이 있는 나라. 너무 여유로운 나머지 제한속도가 100km/h 도로에도 회전교차로가 있는 나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