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소매치기를 당하는 곳

둘이서 핸드폰 하나로 런던과 아일랜드를 여행했다.

by 모단걸




포토벨로 마켓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덜렁대는 것으로 국가대표급인 내가 아니라 경찰인 동생이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에서 말이다. 내가 당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포토벨로 마켓에 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은 동생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설픈 위로를 건넸다가 욕을 먹을까, 왜 제대로 챙기지 않았냐고 질책을 했다가 노팅힐에서 머리끄댕이라도 잡힐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우리가 이동했던 동선을 되짚어가며 동생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수밖에. 아무래도 빠에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섰던 그때 없어진 것 같았다. 둘 다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도 빠에야를 사기 위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누군가가 동생 주머니에 있던 아이폰 xs를 가져간 것이었다. 이제 런던에 온 지 3일째인데 벌써 이번 여행은 망했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아. 이제 어쩌지. 핸드폰 하나로 우리는 아일랜드까지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그나마 내 핸드폰은 도둑맞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소매치기를 당한 동생의 아이폰 xs와 함께 내 멘탈도 누군가 가져간 것 같았다.

예상외로 동생은 무덤덤해 보였다. 대신 내가 정신을 놓았다. 잃어버린 내 정신을 되찾기 위해 들어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야. 그 새끼는 지가 가져간 핸드폰 주인이 한국 경찰이라는 거 알긴 알까?” 경찰이 된 지 십 년이 되었는데 영국에 와서 핸드폰을 털리다니. 생각할수록 이 상황이 황당해서 웃음이 났다. 하기야 요즘 한국에서는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경험담을 쉽사리 들어볼 수가 없으니 경찰인 동생도 생각조차 못했겠지. 결국 우리는 핸드폰 하나로 여행을 해야 했다. 우선 내 핸드폰으로 동생 핸드폰의 내 아이폰 찾기 설정을 해두었다. 이렇게 해두면 도둑놈이 핸드폰을 쓸 수 없을 테니까. 동생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하면 내가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나 내심 정말 신고를 한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영국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영어울렁증이 있는 내가 경찰서에서 제대로 신고를 할 수 있을까, 동생은 나만 믿고 있을 텐데 그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을까. 마침내 동생이 신고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내가 런던 여행에서 가장 원했던 것은 포토벨로 마켓에서 예쁜 찻잔을 구매하는 것이었는데 찻잔을 사겠다고 포토벨로 마켓을 더 뒤지고 다니자고 했다간 욕을 먹을 게 뻔했다. 아이폰 xs를 잃어버린 채로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그러나 그렇게 길지 않은 여행 중 소중한 하루를 핸드폰을 도둑맞았다고 망치기는 아쉬웠다. 우리는 숙소에 들러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런던 중심가로 향했다. 런던의 상징 중 하나인 빨간 2층 버스를 타고, 그것도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채로 동영상을 찍어가며 억지로 즐거운 척을 하던 와중에 내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동생의 핸드폰이 켜졌다는 것! 동생이 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동생 계정으로 로그인을 했다. 계속해서 나침반이 돌아갔다. 한참 동안 위치확인을 위해 접속했지만 나침반이 돌아가기만 하고 위치가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유럽의 느린 인터넷 속도를 탓하며 계속해서 로그인을 했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위치가 잡히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가서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그날 밤, 동생이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와이파이를 잡고 다시 시도를 해도 나침반만 계속해서 돌아가고 핸드폰 위치는 잡히지 않았다. 동생이 오랜 시간 검색을 하더니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그거 피싱문자래. 그때 접속하면 안 된대” 헐. 결국 경찰인 동생은 소매치기를 당한 것으로 모자라 피싱문자에도 당한 것이었다. 동생이 핸드폰에 접속해서 위치를 추적하는 사이에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동생의 계정은 해제되었고 그렇게 아침까지는 동생이 소유하던 아이폰 xs는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것이었다.

결국 포토벨로 마켓에서 내가 원했던 예쁜 찻잔을 사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일요일이 있었다. 일요일 아침 동생을 꼬드겨 브릭레인 마켓으로 향했다. 그곳도 런던에서는 유명한 주말 벼룩시장이었으니까. 그곳엔 내가 찾는 예쁜 찻잔이 있을 것만 같았다. 브릭레인 마켓도 포토벨로 마켓처럼 사람이 붐볐다. 어제 포토벨로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경험 때문인지 우리는 잔뜩 경계하면서 구경을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경계했기 때문일까. 찻잔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이곳은 예쁘고 질 좋은 구제 옷들이 많다고 하니 버버리 트렌치 코트라도 싸게 구매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멋진 빈티지 샵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한 가게에서 옷 구경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내가 메고 있던 크로스백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내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옷을 구경하는 척, 손에 들고 있던 옷으로 앞을 가린 후 내 가방을 잡으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가방을 확 잡아챘다. 그리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내 옆에 서 있던 여자를 찾았는데 잠깐 사이에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브릭레인 마켓에도 소매치기가 기성을 부린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그곳을 떠났다.

내 핸드폰 하나를 둘이 함께 쓰면서 동생은 길거리에서도 한국에 있는 제부에게 보이스톡, 페이스톡을 했다. 그 말인즉슨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 데이터를 써가며 제부와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들을 공유했다. 나는 동생에게 경고했다. 그렇게 데이터를 쓰다가는 정말 중요할 때 쓰지 못할 거라고. 각자 5기가 유심칩을 한국에서 구매해서 왔는데 동생이 핸드폰을 도둑맞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나에게 남은 5기가로 일주일을 더 보내야 했다. 메가, 기가, 테라 등 데이터 용량을 세는 단위에 익숙지 않은 나는 걱정되었다. 그런 나의 걱정에 동생은 코웃음을 치며 나를 무식한 사람 취급을 했다. 5기가면 한 달도 끄떡없다며 대체 아는 게 뭐냐고 나를 무시했다. 경찰이면서 소매치기를 당하고, 피싱에 낚인 동생이 겨우 5기가를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가지고 나를 무시하는 게 더욱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래. 니 맘대로 해라.

결국 동생이 한 달은 끄떡없다며 큰소리를 치던 5기가 데이터는 아일랜드 고속도로에서 그 수명을 다 했다. 구글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멈춰버린 핸드폰 덕분에 지도를 펴가며 더블린 도심으로 진입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더블린에서 지도 한 장에 의지해 렌터카 반납 장소를 찾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나는 망할 년이라고, 저년 말을 믿은 내가 등신이라며 온갖 욕을 했다. 다시 데이터를 충전하려고 했으나 우리의 여행은 막바지였고, 가격은 예상외로 비쌌다. 어쩔 수 없이 와이파이만을 이용해 남은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지도를 다운 받아서 길을 나섰고, 목적지에 가기 위한 대중교통 정보는 미리 적어두었고, 이동 중에 변수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여행을 했다.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내셔널 갤러리 방문했을 때였다. 동생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원했고 나는 오디오 가이드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각자 관람하기로 했다. 하나뿐인 핸드폰은 동생에게 주고 나는 가이드북 하나에 의지했다. 몇 시까지 오디오 가이드 대여 장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해 두었고, 나는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안내대로 그림을 봤다. 내가 보고 싶은 그림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아날로그시계로 남은 시간을 체크하며 열심히 그림을 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꽤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요약하자면
“안녕. 너는 어떤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드니?”
“나는 터너의 그림이 너무 좋았어.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라 이번에 꼭 보고 싶었는데 정말 좋더라. 빛을 표현하는 게 정말 놀라웠어”
“그렇구나. 다음엔 어떤 그림 보러 갈거니? 나랑 같이 갈래?”
잘 생기진 않았지만 깔끔한 세미수트 차림이 괜찮았다. 시계를 보니 동생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아쉽지만 그와 함께 그림을 관람할 수 없었다.
“미안, 동생이랑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서 안될 것 같아. 즐거운 시간 보내”
그렇게 깔끔한 세미수트 차림의 남자와 헤어지고 만나기로 했던 오디오 가이드 대여 장소에 갔더니, 이년이 오질 않았다. 나쁜 년.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망할 년. 한참을 늦게 나타난 동생은 아직도 못 본 그림이 많다며 나를 그곳에 세워두고 다시 전시실로 바삐 사라졌다. 써글년.

핸드폰 하나로, 그것도 데이터를 다 쓴 핸드폰 하나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동생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제부와 함께 곧바로 핸드폰 매장으로 가서 아이폰 xs를 다시 장만했다. 우리가 여행에서 쓴 돈과 맞먹는 돈을 내고서 말이다. 경찰도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는 곳, 잠시라도 경계를 늦추면 크로스백이 움직이는 곳, 데이터 5기가로는 한 달은 고사하고 열흘도 여행하기 힘들 수 있는 곳, 그랬기에 더욱 재밌는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곳, 런던! 다음에 다시 영국에 간다면, 포토벨로 마켓에 간다면, 브릭레인에 간다면 그때는 아무것도 도둑맞지 않을 수 있으리라! 이미 나는 경찰도 알아채지 못하게 소매치기를 할 수 있는 대단한 소매치기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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