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단골 반찬가게가 있다는 것은

나는 반찬을 사 먹는다.

by 모단걸



얼마 전 소개팅을 했다.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이라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나는 경상도,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경북 북부지역 출신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경상도 출신 남자들은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해왔다. 내가 그곳 출신임으로, 또 여성으로서 내가 실제 겪은 경험에 그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 여성들은 남성들과 다른 상에 대충 차려 먹거나, 남자들이 먹고 난 후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들이 남긴 음식으로 식사를 급히 마쳐야 했다. 급히 식사를 마쳐야 했던 이유는 남자들의 술상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상을 세 개 정도 붙여서 모두 다 함께 식사를 하지만 여전히 남자들은 상을 차릴 때부터 상석에 앉아있고 여성들만 바삐 수저를 놓고, 음식을 나르고, 겨우 앉아서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남자들이 다 먹은 반찬들을 다시 채워와야 한다. 우리 집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경상도 출신 남자들이 있다고 치자. 과연 그럴까?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하나도 없을까? 그래서 나는 경상도 남자들에게는 디폴드 값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자란 남자들에게는 본인은 의식하지 못해도 어딘가에 남녀차별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개팅 상대방이 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했을 때부터 내키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가 내가 주장하던 그 경상도 남자들의 디폴트 값을 표현하자 나는 역시 그랬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있었고, 나 또한 그랬기에 대화는 자연히 혼자 생활하는 것으로 흘렀다. 식사는 어떻게 하냐는 그의 말에 내가 말했다. “반찬은 동네 반찬가게에서 사 먹어요. 밥만 해서 차려먹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요리를 잘 못하기도 하고,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더라도 꼭 남아서 버리게 되니까, 반찬은 사 먹는 게 더 싼 것 같아요” 그가 대답했다. “아, 그게 편하긴 하죠. 앞으로 요리는 배우면 되니까요.”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아뇨. 배울 생각은 없어요. 사 먹으면 안 되나요?” 왜 내가 요리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할까? 내가 요리를 못하는 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소개팅 자리에 나오는 여성의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것인가. 우리의 소개팅은 그렇게 끝났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1인분만 배달하는 집은 많지 않았고, 2인분을 배달해서 남은 음식을 데워먹으면 갓 시킨 음식 맛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남은 음식들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음식물 쓰레기통은 자주 찼고, 플라스틱 배달용기도 쌓여갔다. 내 몸도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건강을 위해 동네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고 밤에 미리 예약 취사를 해놓고 갓 지은 밥으로 아침을 차려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주에 세 번 정도는 반찬가게 간다. 두부조림, 감자볶음, 감자조림, 도라지볶음, 마늘종, 미역국, 황탯국 등 그날그날 정성껏 만든 음식들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 요리하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 내가 만든 맛없는 음식들을, 양 조절을 하지 못해 버려야만 하는 음식들이 없다는 것이 내가 반찬가게에 갈 때마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부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나는 반찬가게에서 갖가지 반찬들을 사 온다. 처음에는 꺼림칙하게 생각하셨던 부모님들은 (반찬을 사 먹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분들이므로) 이제는 너 혼자 살기 편하긴 하겠다며 불만의 말없이 함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신다. 부모님이 오실 때마다 식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일도 줄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맛있고 정성이 가득한 반찬이 있는 반찬가게 있다는 것이 이 동네를 조금 더 좋아지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먹으면서 한 가지 단점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많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 번에 반찬을 4가지, 국 하나를 구매하는데 2주에 세 번 정도 가니까 한 달이면 서른 개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게 된다. 그래서 얼마 전에 사장님께 부탁을 드렸다. 내가 반찬통을 가져다 두고 전화를 드리면 내 반찬통에 반찬들을 싸주실 수 있는지. 플라스틱을 좀 줄이고 싶다는 이유와 함께. 좀 귀찮은 부탁일 수 있지만 사장님께서는 흔쾌히 그렇게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유리로 된 반찬통을 반찬가게에 가져다 두고, 반찬이 떨어지면 아침에 전화를 드린다.(오후에 전화를 드리게 되면 이미 포장 완료되어 오히려 번거로울 수 있으므로) 퇴근 후 반찬가게에서 사장님께서 미리 싸놓은 반찬을 받아온다. 얼마 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꽃값이 많이 떨어졌다는 기사를 보고 회사 근처 꽃집에 달려가 튤립 한 단을 만원에 사 왔다. 그러면서 반찬가게 사장님께 드릴 라넌큘러스 한송이도 샀다. 그날 반찬을 받아오며 라넌큘러스 한송이를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귀찮은 나의 부탁을 들어주신 마음에 감사해하며 고작 꽃 한 송이를 드렸는데 말이다.


토요일 아침, 강아지와 산책길에 씻어놓은 반찬통을 반찬가게에 가져다 드리려 들렀다. 그리고 잠시 후 사장님께서 다시 잠깐 들리라는 전화를 주셨고, 내가 건넨 반찬통이 깨진 건가 싶어서 가게에 갔더니 오늘이 대보름이라며 대보름 나물과 오곡밥을 함께 챙겨주셨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장님께 감사하다며 문자를 드렸다. 잊고 지나갈 뻔한 대보름도 동네에 있는 단골 반찬가게 덕분에 챙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요리를 못한다고, 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나를 여성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시선을 보내던 소개팅 상대방에게 묻고 싶다. ‘그쪽은 대보름 나물과 오곡밥은 먹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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