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담패설을 하고 싶지만

함께 나눌 이가 없어서 아쉽지만.

by 모단걸




며칠 전, 다른 팀의 팀장님이 옷걸이를 찾았다. 때마침 내가 옷걸이를 치웠기 때문에 위치를 알려주며 말했다. “큰 거랑 작은 거 있는데 팀장님은 큰 거 쓰시죠.” 팀장님은 바로 대꾸했다. “아녀 난 작은 게 좋아. 작은 거 쓸래” 그 말에 나는 또 “어련하시겠어요. 팀장님은 다 작잖아요!”라고 농담을 했다. 일순간 정적.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내 말에 팀장님이 ‘뭐라는 겨. 내가 뭐가 작아!’라고 하면 ‘팀장님은 속이 좁잖아요! 농담이에요!’ 그리고 다 같이 ‘하하하하하’ 웃는 것이었다. 다들 내가 한 말을 들었음에도 침묵했다. 이래서 엄마가 내가 말만 하면 주둥이를 꿰맬 거라고 하나. 왜 나는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자꾸 저런 드립을 하는 걸까. 그 팀장님이 아무 대꾸도 없었던 것은 정말 모두 다 작아서일까.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공부에 지친 나와 친구들은 개봉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썸머타임’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흥분했다. 그러나 19금 영화의 한계가 있다 보니 우리의 성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부모님의 주민번호를 외워 각종 야동 사이트에 가입했고, 십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야동을 틀어놓고 감상을 했다. “무슨 100m를 전력질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숨을 헐떡이는 거야?” “저게 그렇게 힘든 거야? 근데 왜 하는 거야?” “왜 저렇게 아프다고 남자의 등을 손톱으로 긁어대면서도 끝나면 웃는 거야? 저걸 하면 정신을 놓는 거야? 미친 거 같아”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틈틈이 야동을 보면서 분석을 했더랬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언제 경험할지 몰랐기에 저마다 궁금증을 쏟아냈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답변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며 소설책을 많이 읽었는데, 어쩌다 성에 대한 묘사가 나온 책을 발견하거나 독특한 에피소드가 있는 책을 발견하는 날은 동아리방에서 동기들에게 신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시 나는 토론동아리의 일원이었는데 밤을 새워가며 이슈가 되는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곤 했는데 그 마지막은 언제나 음담패설이었다. 동기 녀석들은 꼭 나만 끼면 심각한 이야기로 시작하더라도 끝은 항상 음담패설이라며 나를 '음담패설의 여왕'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때의 우리는 어렸고, 그 어떤 경험도 없었기에 우리가 하는 음담패설의 마지막은 언제나 궁금함이었다. 어디에선가 들은 이야기들에 상상을 덧대어 음담패설을 즐겨하던 나와 동기들의 모습에 선배 중 한 명이 말해주었다. “대구 시내에 나가면 성인영화 전문 상영관이 있어. 차라리 거길 가봐라 이 새끼들아.” 다들 웃어넘겼지만 지적 호기심이 대단했던 나는 머릿속으로 위치를 외워버렸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지적 호기심을 가진 고등학교 친구를 대구로 불렀다. 고급 정보가 있다는 미끼와 함께. 그녀와 나는 호기롭게 선배가 이야기 해준 성인 영화 전문 상영관을 찾았다. 성인영화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건물을 찾았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빨간색 카펫이 깔린 음침한 계단을 올라갈 용기가 없었더랬다. 결국 그녀와 나는 개봉 당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보러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미 1학년 때 대학 기숙사 선배 언니 덕에 포르노를 본 적이 있지만 그 영화의 내용은 우리에게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바르는 초콜릿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논의했다. 과연 그녀는 그 초콜릿을 구했을까? 나는 아직도 구하지 못했는데.


기숙사 생활을 했던 1학년 때, 나는 같은 학번의 동기와 함께 방을 썼고 나와 같은 과 친구는 1년 선배와 룸메이트였다. 같은 복도에 있는 방을 쓰던 우리 넷은 자주 모여 떡볶이도 먹고, 기숙사 매점에서 컵라면도 먹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각자의 방에 자주 놀러 갔고 우리보다 한 학년 위인 그녀에게 학교 생활 팁을 얻기도 했다. 노크만으로도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루는 그 방으로 갔는데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었다. 분명 그 친구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는데 대답이 없어서 손잡이를 돌렸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나야. 문 열어줘” 그제야 친구가 방문을 살짝 열었다. “뭐야 왜 문을 늦게 열어!” 라며 들어가려는데 그녀가 나를 제지했다. “우리가 뭘 좀 보고 있는데, 너는 감당 못할 것 같은데”라고 나를 도발했다. “뭐야 뭔데.” 내 외침에 언니가 뒤에서 말했다. “쟤도 이제 알 때가 되었으니까 들어오라고 해.” 사뭇 비장해 보이는 말이었다. 친구가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보고 말았다. 모니터를 가득 채운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을.


태어나서 남자의 성기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9살 차이가 나는 막냇동생 기저귀를 갈아 줄 때 보았던 그것이 땅콩만 한 것이었다면 모니터를 통해 본 성인 남자의 것은 팔뚝 크기였다. 그랬다. 그녀들은 made in USA 포르노를 보고 있었다. 나도 바닥에 자리 잡고 앉아서 함께 관람을 했다. 호기심 많고 질문이 많은 나는 선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어떻게 저렇게 팔뚝만 한 게 들어갈 수 있죠? 저게 가능한 거예요?” 연애경험도 없고, 섹스 경험도 없는, 겨우 한 학번 위의 선배 언니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당연히 가능하다고 이야길 했다. 연이어 나는 또 물었다. “그럼 언니, 남자들은 저렇게 팔뚝만 한 것을 다 달고 다니는 거예요? 와~ 진짜 불편하겠다. 가슴 두쪽 달고 다니는 것도 이렇게 브래지어를 하느라 불편해 죽겠는데, 남자들은 그럼 팬티 속에 고정 장치가 있는 거예요?" 내 말에 선배 언니와 친구는 와하하하 웃었다. 모든 게 연기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그 포르노를 보는 내내 토할 것 같았다. 결혼하면 남자와 벌거벗고 저런 짓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국민학교 3학년 무렵인가 처음 성교육을 받았을 때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이가 만들어진다는 생물학적 내용으로 성교육을 받았던 그때, 한 친구가 용기 있게 팔을 들고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럼 정자와 난자는 어떻게 해야 만나는 거예요?” 그때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정자와 난자는 어떻게 만나는 거지? 와 진짜 궁금하다” 다들 웅성웅성 댔다. 미혼 여성이었던 선생님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그 아이를 끌어냈고 교무실로 끌고 갔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을 그날 밤 그 포르노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아~ 저렇게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구나.


그 밤 이후, 나는 변했다. 남자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당시 나와 함께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그 녀석과 나는 수업이 모두 같았고, 함께 기숙사에 살고 있었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붙어 다녔는데 그다음 날 아침 그 친구와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해 기숙사 식당 앞으로 갔는데 나를 기다리는 그 녀석을 보자마자 나의 시선은 그의 가랑이를 향했다. ‘아~ 쟤도 남자니까 팔뚝만 한 게 달려있겠구나. 엄청 불편하겠다’ 그 이후부터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남자들, 동아리 선배들, 과 동기 남자들을 볼 때마다 자꾸 가랑이 사이로 시선이 갔다. 대체 어떤 속옷을 입을까. 그 속옷에 어떤 장치가 있을까. 브래지어처럼 와이어 같은 게 있을까? 어떻게 그런 크기의 성기를 감당할까? 엄청 불편하겠지? 그러고 보면 남자들도 불쌍하다. 여자들만 브래지어를 입어서 답답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들의 걸음걸이를 분석했다. 자주 보는 남자들의 경우 뒤에서 걷는 모습만으로 누구인지 맞출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나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측은지심은 경험을 통해 실제로 남자들은 팔뚝 크기의 성기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남자들만 보면 얼굴보다 가랑이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일이 계속되게 했다. 어쨌거나 그 이후에도 나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과 기숙사에서 본 포르노를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을 섞어가며 동기들과 음담패설을 자주 했더랬다.


방학이 끝나가던 무렵 동아리방에서 96학번 선배와 마주쳤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방학임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이면 동아리방에서 책도 읽고 신문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선배와 마주친 것이다. 선배가 나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내가 지난번에 동아리방에 왔다가 뭘 봤거든. 근데 너인 것 같아서 말이야. 동아리방 쓰레기통 정리하는데 다 쓴 콘돔이 있더라” 나는 정말 황당했다. “선배 나 아니야. 왜 나라고 생각해?” 선배가 말했다. “우리 동아리 애들 중에 연애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그럼 너 아니고 누구냐.” 화가 나서 선배에게 쏘아붙였다. “선배. 나는 하고 싶으면 모텔을 가. 돈 없으면 대실을 할지언정 절대 이렇게 지저분하고 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에선 안 한다고! 난 아니라고!” 씩씩대면서 화를 냈다. 아마 내가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의심했던 것보단 매일 같이 야한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는 나라서 의심을 했으리라. 후에 그 콘돔은 나에게 포르노를 보여준 그 동기와 그녀의 남자 친구의 거친 사랑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조금 분노했지만 비밀연애를 하던 그녀의 입장을 이해했다.


이제 더 이상 나와 함께 음담패설을 나누었던 그 친구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가끔 그때 멋모르고 동기들과 음담패설로 지새웠던 그 시간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나에게 넷플릭스 드라마 한 편을 추천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야한거냐?’ 그녀가 어이없어하면서 나에게 되물었다. '너 발정 났냐?’ 글쎄. 나는 여전히 나와 함께 음담패설을 나눌 친구들을 기다리며 학습자의 마음으로 야한 영화와 야한 드라마와 성적 묘사가 가득한 책을 발견하길 바라고 있다고나 할까. 나는 언제 어디에서든 야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할 준비는 되어있지만 여전히 배경을 풍부하게 채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니까. 순전히 학습자의 마음에서 말이다. 물론 그 언젠가 내가 발정이 나는 그때에 그 학습내용들을 써먹을 수 있으니까. 정말이지 음담패설을 나누면서 배가 당길 때까지 웃던 나의 동기들은 지금 어떤 야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다들 우리가 나누었던 야한 이야기들 속 주인공이 되어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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