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게 좋아

너무 뜨거운 것도, 너무 차가운 것도 싫어

by 모단걸




“얼음 두세 개만 띄워주세요.”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요구하는 사항이다. 너무 뜨겁지 않게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으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얼음이 더해짐으로 인해 좀 싱겁고, 너무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적당한 온도로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도 싫고, 내가 좋아하는 온도로 알맞게 식은 지점을 찾고자 여러 번 홀짝이다 보면 너무 뜨거워 다시 뱉고 싶어 진 적이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국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는 것으로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국이 팔팔 끓으면 가스레인지를 끄고 국이 알맞게 식을 동안 다시 출근 준비를 한다. 너무 뜨겁지 않은 국과 밥으로 속을 채우고 회사로 출근한다. 출근을 하면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내린다. 캡슐커피라 바로 마셔도 뜨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찬물을 조금 더한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이메일을 열어 업무를 시작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에도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 시원하고 달달한 빙수도 먹을 수가 없다. 우유를 전혀 마시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우유에 얼음이 들어가면 바로 설사를 한다. 빙수를 좋아하는 동생과 함께 빙수를 먹으러 가면 그저 맛만 보는 수준으로 먹는다. 조금만 과하게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서 쉽사리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폭풍이 몰아치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물론 그 폭풍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것도 빙수나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내가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 연탄난로인지, 석유난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난로 위에서 쇠로 된 국자에 달고나를 해주었다. 설탕과 소다를 섞어 국자에 넣고 젓가락으로 저어 가면 아궁이가 있던 옛날 부엌 곳곳에 달콤한 냄새가 덧입혀졌다. 나는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국자 속 달고나의 색갈이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잠시 밖에 나간 사이에 내가 국자와 젓가락을 잡고 엄마처럼 달고나를 저으려고 하다 국자를 엎었다. 결국 달고나는 내 오른쪽 발가락으로 떨어졌고, 나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그 사고로 인해 내 오른쪽 세 번째, 네 번째 발가락 피부는 오그라들었고, 그 상처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집안 환경 탓에 한겨울에 씻을 때면 기름보일러를 틀기보다는 아궁이에 불을 떼서 가마솥에 물을 끓여 씻었더랬다. 그날도 마당에 있는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물을 양동이에 퍼서 목욕탕으로 옮기려다 양동이가 목욕탕 문턱에 부딪혔고 조금 전까지도 가마솥에서 펄펄 끓던 물은 내 오른쪽 발등으로 쏟아졌다. 곧이어 발등에 수포가 생겼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부풀어올랐다. 너무 뜨거워서 마루를 왕복으로 계속 뛰어다니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화상치료를 받았고, 그 화상 상처는 남아있지 않지만 뜨거운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나는 차갑지만 뜨거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의 이십 대에.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침묵하지 말자 했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뜨겁게 행동하고자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생활을 한 곳이 한 공기업의 비정규직이었다. 나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던 88만 원 세대였으니까. 언젠가는 정규직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했더랬다. 정규직에겐 봄, 가을마다 회사에서 등산복이 지급되었는데 비정규직들에겐 지급이 되지 않았다. 원래 그랬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더랬다. 그러다 한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꼽냐? 꼬우면 너도 공부해서 여기 들어와” 눈물이 왈칵 났다. 무어라고 반박을 하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이 썅놈의 새끼야. 니들이 경제를 말아먹고 왜 우리에게 무능하다고 하냐’라고 욕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우느라 그 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시기를 놓쳤다. 그때 침묵했기 때문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나에게 지시했다. “여기 아르바이트생들 모두 몇 명이지? 다 좀 모이라고 해봐” 나는 그때처럼 울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사과하세요. 저나 다른 비정규직원들 모두 파트타임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게 아닙니다. 비정규직이지만 이곳 직원입니다. 그러니까 사과하세요.” 나는 차분히 말했고, 그 사람은 결국 나와 다른 비정규직원들에게 모두 사과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요구할 사항이 있으면 분명히 요구한다. 내 업무와 상관없는, 내가 수행하기로 했던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배당되는 경우에 당당히 그 업무에 대한 추가 수당을 요구한다. 혹시 누군가가 무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 무례함에 대해 지적한다. 나의 이십 대에는 사소한 모든 무례함에 대해 분노하고, 눈물을 흘렸다면 이제는 사소한 모든 무례함에 분노하지 않는다. 아마 이십 대의 뜨거웠던 내가 미지근한 온도를 지닌 사람이 되어버린 나를 만난다면 어떻게 평가할까. 지금의 나를 보며 분노할까, 체념할까.


연애도 마찬가지이다. 이십 대의 나는 불타는 연애를 꿈꾸었고, 그러한 연애를 했다고 생각한다. 오직 그 사람만이 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연애가 끝나면 항상 공허했고 서둘러 다른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온도의 연애를 한다. 물론 상대방이 나와 같은 온도가 아니라면 어딘지 모르게 피로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나의 온도보다 낮은 사람과의 연애는 나의 온도를 그 사람과 같은 온도로 함께 내려가게 했지만 나보다 높은 온도를 지닌 사람과의 연애는 내 온도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빠르게 식어가게 한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적당한 온도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너무 뜨겁지 않은, 너무 차갑지 않은 적당한 온도를 가진 사람과 함께 오랜 시간 같은 온도로 시간을 보내는 것. 뜨거운 밤을 보냈다면 함께 차가운 이성으로 각자의 일을 하는 패턴을 지닌 사람, 항상 미지근한 온도가 아닐지라도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의 온도를 섞어 미지근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말이다. 간혹 누군가는 마흔을 앞둔 지금에도 이십 대와 같은 뜨거운 삶을 꿈꾸고,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나는 너무 뜨거운 것도, 너무 차가운 것도 싫으니까. 미지근한 게 더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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