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듣지 못하면 어때! 이토록 신나는걸!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런던과 아일랜드 여행을 계획하면서 내가 원했던 것들 중 하나가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이었다. 거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작품을 관람하고 싶었다. 물론 외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적이 없는 내가, 회사에서 전화회의를 할 때마다 못 알아들을까 긴장하는 내가 과연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볼 수 있을까,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괜히 돈만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곳까지 와서 뮤지컬을 보지 않고 간다면 돌아가서도 계속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뮤지컬은,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하고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했던, 아직도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맘마미아’였다. 이미 영화로 보았던 터라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줄거리는 대략 알고 있으니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아바의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친숙하니 그 음악만을 즐기더라도 좋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맘마미아를 예약했다. 미리 예매를 하면 더 싸다고 했으므로 미리 예매를 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싸지 않았다. 여행 계획을 짜고도 바쁜 일상 때문에 여행이 임박해서야 겨우 예매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예매한 좌석은 앞자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시야가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서 뮤지컬을 볼 때에 음료는 반입이 되지 않았는데 이곳은 샴페인 잔을 들고 공연을 보았다. 극장 입구에 있는 바에서 음료를 팔았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보는 것에 놀랐더랬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물론 배우들의 대사 전체를 알아들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음악은 무척이나 신났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언니, 영어 대사 몇 프로나 알아들었어?” 나는 약간의 허세를 섞어 이야기했다. “음. 한 80프로는 알아듣겠는데?” 훗, 이제야 고백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알아듣지 못한들 어떠하리, 이토록 신나는 걸.
그날 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한동안 뮤지컬에 대해 이야길 나누었다. 그 이야기의 주제는 런던을 떠나기 전에 한편을 더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맘마미아의 경우 둘 다 이미 영화를 보았고, 아바의 음악이 친숙했기에 이해하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다른 뮤지컬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렇지만 이 감동을 한 번으로 남기기엔 너무 아쉽다는 것. 알아듣지 못한들 어떠하리, 이토록 신나는 걸. 우리는 고민 끝에 둘 다 내용을 잘 모르는 다른 뮤지컬 한 편을 더 보기로 했다. ‘위키드(wicked)’ 우리는 서둘러 예매를 했다. 이 진한 감동을 또 한 번 느끼고 싶었기에.
이제야 고백하자면 wicked의 단어 뜻도 몰랐다. 극장 앞에 걸린 초록색 마녀의 사진을 보고서야, 아~ 그렇군 했더랬다. 이 극장의 바에서도 여전히 샴페인, 맥주 등 음료를 팔았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음료를 마시며 뮤지컬을 관람했다. 한국에서 공연 관람 시의 에티켓이 익숙해진 탓일까, 우리는 음료를 마시면서 공연을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쨌든, 공연을 기다리면서 동생과 인터넷으로 급히 위키드의 내용을 찾아보았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착한 마녀와 사악한 마녀의 이야기, 어째서 알파바가 사악한 마녀가 되고 글린다는 착한 마녀로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는지, 그런 내용이었다. 실은 오즈의 마법사도 너무 어린 시절 보았던 터라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예약을 하고, 극장에 도착해서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알게 된 내용이 하필이면 내가 잘 모르는 오즈의 마법사와 관련된 내용이라니. 가만, 오즈의 마법사에 착한 마녀와 사악한 마녀가 나왔던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우리는 뮤지컬을 관람하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라이온 킹을 볼 것을 그랬나 시작도 전에 살짝 후회가 되었다.
시작부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공연의 스케일과 배우들의 미친 가창력에 너무 놀라버렸다. 특히 1부 엔딩곡인 ‘Defying Gravity’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1부가 끝나고 나는 영어사전을 검색했다. 계속해서 wizard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무슨 뜻인지 몰랐기 때문에 동생 몰래 검색을 했다. 이 미친 허세. 어쨌든, 우리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두 편을 봤다. 나는 가끔 애플뮤직으로 위키드의 OST를 듣는다. 들을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 그들의 목소리에 전율을 했던 그 순간들이.
만약 알아듣지 못할 것이 두려워 이번 여행에서 뮤지컬을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시간 동안 우리 둘은 다른 재미난 경험들을 쌓아왔겠지만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이번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두 편을 보고 나서 나는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목표 따위를 세우지 않게 된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운 목표가 생기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나에게 큰 의미가 되었다. 어쨌든 새로운 목표는 마흔이 되기 전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 음악과 철학적인 면을 중시하는 웨스트엔드와는 달리 화려하기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약간의 두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거침없이 실행하면 내 여행이, 내 삶의 일순간이, 나의 생각이 조금 더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어떠랴, 이토록 신나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