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에게 동거를 권했다.

왜, 왜죠?

by 모단걸





살면서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 요즘은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으니까 말이다. 80년대 초반, 외갓집 안방에서 태어난 나는 그 탓이었을까 지금 이 나이에도 병원에 가는 것이 무섭다. 어쩌다 감기에 걸리면 집에서 끙끙거리며 앓는다던가, (감기는 병원 가면 2주 만에 낫고, 병원에 가지 않으면 보름 만에 낫는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더라도 주사는 절대 맞지 않으려고 의사와 협상을 한다. 왜인지 뾰족한 것이 내 몸에 들어오는 그 느낌이 소름 끼치게 싫고 병원의 분위기와 냄새 등은 나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내가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응급실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혼자 도착해서 응급실 수납창구에서 접수를 하고(응급실은 수납창구가 별도로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간호사들의 안내를 받아 혈압을 재고, 채혈을 하고, 엑스레이와 CT까지 찍고, 링거를 꽂고 앉아있으려니 정신이 없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걱정이 되었다. ‘우리 강아지들 밥은 누가 주지?’ 며칠간 회사를 쉬어야 하는 걱정보다 재활용 쓰레기도 내다 놓아야 하고, 아침 먹고 설거지도 하지 않고 나왔는데 설거지는 어떡하나? 무엇보다 아이들 산책과 밥은 누가 주지하는 걱정이 먼저 되었다. 다행히 긴급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오며 혼자 사는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또 급작스레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고, 긴급하게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세 시간 거리에 계신 부모님께서 어찌 달려오실까? 비슷한 거리에 있거나 혹은 더 멀리 있는 동생들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요즘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아주 약간 외로웠던 내가, 그날 조금 더 많이 외로워졌다.


몇 년 전부터 엄마는 농담처럼 나에게 말했다.

“야, 괜찮은 놈 있거든 같이 살아봐. 살아보고 괜찮다 싶으면 결혼해. 아니면 말고”

보수적이라는 경상도에서, 그중에서도 더 보수적이라는 안동에서 사는 중년 여성이 본인의 딸에게 동거를 하라니.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나도 농담으로 응수했더랬다. 그런데 잊을만하면 엄마는 괜찮은 놈이 있으면 같이 살아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이 혼자 외롭게 사는 게 안쓰러웠으리라.

“엄마, 그게 딸내미한테 할 소리야? 아빠가 알면 나 죽일걸”

“야, 무턱대고 결혼해서 사네 못 사네 하는 거보다 먼저 살아보는 게 어때서. 잔말 말고 괜찮다 싶으면 같이 살자고 해. 아빠가 무슨 상관이야. 네가 아빠 모시고 살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우리 엄마는 나보다 더 시간을 앞서서 살아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응급실 소동이 있은 후 부모님께 아파서 응급실에 다녀왔노라고 이야길 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간단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예상외로 엄마는 무덤덤했다. 건강염려증 환자인 엄마가 내 이야기에 흥분해서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을 줄 알았더니. 간단하긴 하지만 수술을 하고 나면 며칠간 입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할 때 와있을 거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그때 봐서, 안 바쁘면 가지”라고 언제 차 한잔하자며 친구에게 말하듯이 이야기를 했다. 아, 이제 알겠다. 엄마가 나에게 계속해서 괜찮은 놈 운운하며 동거를 하라고 했던 것은 실은 자꾸 무슨 일만 있으면 부모님께 전화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의지하려는 내가 성가셨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떠 맡기고 싶으셔서 자꾸만 회사에 괜찮은 놈은 없냐? 네가 하는 모임에는 괜찮은 총각 없냐며 눈을 반짝이며 물었던 것이다. 아. 분해.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전혀 없다고 시큰둥하게 대꾸하면 엄마는 나를 탓했다. 네가 이쁘기를 하냐, 똑똑하기를 하냐, 착하기를 하냐, 니 주제를 알고 골라야지라며 누구보다 낮은 눈을 가진 나를 세상 눈 높은 노처녀로 묘사했다. 이 모든 게 내가 성가셔서 그랬으리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엄마가 나에게 누군가와 함께 살기를 먼저 권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가부장 사회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는 내 고향에서 더 이상 그 흔적을 이어받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작은 날갯짓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함께 사는 것이 허락되던 그런 낡은 관습을 이어받지 않아도, 남자와 여자가 원한다면 언제든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그것을 본인의 자식에게 권한다는 것은 비록 그녀는 관습에 얽매이는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녀의 딸은 그런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낡은 생각이 전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엄마는 아들인 막냇동생에게는 집안일을 시키지 않고,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달에 한번 집에 가는 나에게 설거지며, 빨래, 청소를 부탁한다. 이럴 때면 엄마가 이렇게 가사노동에서 남녀차별을 손수 실행하니 내가 괜찮은 놈을 만나도 같이 살겠냐며 구시렁거리지만 하루아침에 그녀의 생각이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어려우니까. 무엇보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변했다는 것이 큰 의미이니까.



‘그나저나 엄마, 난 눈도 낮은데 왜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괜찮은 놈들이 없을까? 엄마 말대로 내가 문제인 걸까?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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