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도 카페 문화가 번져가고 있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중 문자 메시지가 왔다.
‘14,400원(일시불) 이디야커피 ‘
몇 년 전, 엄마에게 건네준 내 신용카드 사용 알림이었다. 소문난 짠돌이인 아빠는 본인의 술값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엄마가 미용실에 간다거나 옷을 산다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 쓰는 비용은 무척이나 아까워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답답함을 토로했고, 그 답답함을 듣던 나는 더 답답한 마음에 내 신용카드 한 장을 엄마에게 주었다. 미용실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 흥청망청 써도 된다며 약간의 허세를 섞어 엄마에게 이야길 했었다. 이왕 건네줄 거면 그 정도 허세를 섞어서 건네주어야 엄마도 기분 좋고, 나도 기분이 좋을 테니까. 여하튼, 처음에 엄마는 내 카드 사용할 때면 전화를 걸어 구구절절 내 카드를 사용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 나는 아, 그냥 써~라고 짜증을 약간 섞어 대답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될수록 엄마는 전화를 하지 않았고, 음식 사진을 보낸다거나, 머리 스타일 사진을 보내면서 사후 보고를 했다. 최근에는 사후 보고도 하지 않았는데, 보통 카드 알림이 뜨는 곳은 농협 하나로 마트 등 읍내 마트가 아니면 음식점들이었다. 그러나 이디야 커피는 처음이었다. 혹시 동생이 내 카드를 사용한 건 아닐까 해서 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어디야?”
“응~ 우리 딸. 엄마 지금 부부모임으로 저녁 먹고 후식 먹을라고 카페왔지이~”
“어? 카페 갔어? 뭐야? 그래서 뭐 주문했어?”
“아빠들은 달달한 커피 마시고, 엄마들은 그냥 차 마셔”
“아~ 알았어. 재밌게 놀아”
부모님은 이제 부부동반 모임을 하거나, 농민회 모임 등을 하고 나면 카페에 간다. 아빠도 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그렇게 술을 마시던 젊은 몸이 아니거니와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을 마시지 않아서 더욱 풍부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장소들이 하나 둘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처음으로 스타벅스를 간 것이 약 6,7년 전 부산에서였다. 동생과 나, 부모님 이렇게 넷이서 함께였다. 부모님께서는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평소 아빠가 즐겨 마시던 커피 스타일을 반영해서 캐러멜 마키아또를 주문해드렸다. 먼저 한 모금을 드신 아빠는 우리를 번갈아보며 이야기했다.
“야! 이거 맛이 좋네. 야들이 지들만 맛있는 거 사 먹고 있었네~”
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었다. 동생이 장난스레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이거 6천 원 넘어”
그 말에 아빠는 화들짝 놀라서
“아이고 이게 짜장면보다 더 비싸다고? 너네 돈 벌어가지고 여다 다 쓰는 거 아이라? 아이고 야들아~”
연신 가격에 놀라움을 표하면서도 아빠 앞에 놓인 음료는 금세 바닥이 났다. 그 이후 부모님과 밖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우리는 카페에 가서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후식으로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만큼이나 그들도 카페에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한 번은 안동시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서 집에 갔을 때 아빠가 말했다. 지난번, 영주에서 농업 관련 교육을 받기 위해 친구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시간이 남아 아빠가 친구들을 이끌고 커피숍으로 갔었을 때의 일이었다. 전에 한번 부모님과 영주시내에 있는 카페를 갔었는데 그때 느낌이 좋았던지 육십 대의 남자들이 아빠의 주도하에 우르르 몰려 카페 문을 호기롭게 열고 들어갔다. 그러나 항상 카페에 가면 우리들이 부모님의 취향에 맞춰 커피를 주문했는데, 아뿔싸 그때 우리가 어떤 음료를 주문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아빠와 아빠 친구분들은 메뉴판에 적힌 분명 한글로 쓰였지만 영어로 된 커피 메뉴에 일차로 당황했다. 술을 마실 때도 맥주는 비싸고 배만 부르다며 싼 소주만 마시던 분들은 가격에 이차로 당황하시고는 항상 그랬듯이 가장 싼 메뉴를 주문했다. 아마 아메리카노였으리라. 분명 우리가 사주던 커피는 달달했는데 쓴맛이 진한 아메리카노에 삼차로 당황하셨더란다. 아빠는 나에게 물었다.
“너들이 사주든 거는 달달하던데 이건 우에 그래 씨겁든동 먹지도 모할드라. 그때 먹은 게 머로?”(너희가 사준 커피는 달아서 먹을만했는데, 그거는 너무 써서 먹지를 못하겠더라. 그때 내가 맛있다고 했던 메뉴가 뭐니?)
우리들은 한약같이 쓰기만 했다며 너희는 어떻게 그런 거를 마시냐고 의아해하던 아빠의 표정에 배를 잡고 웃었다. 모여서 술만 마시러 다니시던 분들이 처음으로 카페를 가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그 쓴 맛에 치를 떨고 서로 컵을 멀찍이 밀어두었을 그분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아빠, 앞으로는 주문할 때 달달한 거 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줄 거야.”
봉화읍내에 이디야 커피 프랜차이즈가 생겼을 때, 가족들 모두 총출동해서 커피도 마시고 재밌게 수다도 떨었다. 우리는 다방문화만 즐비할 것 같은 작은 시골의 읍내에 커피 전문점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며 곧 망하지는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명절이나, 주말 저녁에 봉화 읍내에 나가면 이디야는 그야말로 장사진이다. 시골사람들이 커피맛을 알기나 할까 하며 무시했던 지난날의 우리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깡촌 시골이지만 커피 맛에, 그 문화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나는 이런 변화가 무척 반갑다. 매번 모임에 가면 술을 드시는 아빠 때문에 또 대리 운전하러 가야 한다고 툴툴거리던 엄마는 요즘 툴툴거리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또 성격상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던 엄마는 여성 농민회 모임이나 친한 주변분들과 교류를 할 때 이렇게 카페에서 만나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보통 시골에서 모임이 있으면 남자분들은 당연한 것처럼 술을 마시고, 여자분들은 누군가의 집에서 누군가의 가사노동으로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면 이제는 가사노동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생겨서 부담 없이 모여 친분을 나누는 문화가 퍼지는 것이 늦었지만 다행이다.
다음번에 부모님 집에 가게 되면 두 분을 모시고 경치도 좋고 인테리어도 예쁜 카페를 찾아가야지. 그땐 부모님께 나에게 어울릴 만한 커피 한잔을 추전 해달라고 해야겠다. 설마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추천해주진 않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