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좋고도 싫지만.
나는 눈이 좋고도 싫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면 누구나 그러하듯 마음이 따스해진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새하얀 세상이 낯설지만 아름답다. 그러나 그 이후 몰려올 후폭풍, 출근은 어찌하나. 염화칼슘 때문에 강아지들 산책은 어떡하지? 아, 눈이 녹고 난 후 온통 질퍽질퍽한 길을 걸어 다니는 나를 상상하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러다가 이내 차 한잔을 우려와 가만히 서서 창 밖으로 보이는 겨울왕국의 모습을 감상한다.
내 고향마을의 겨울은 무척 추웠다. 지리적으로 강원도보다 아래에 위치해있지만 강원도보다 더 추운 곳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추운만큼 눈이 한번 내리면 잘 녹지 않았다. 밤새 눈이 소복이 내린 날 아침이면 동네 사람들은 서둘러 자기 집 마당을 쓸고, 동네 입구에 모여 경운기에 모래를 싣고 면소재지로 이어진 길 위에 모래를 흩뿌려 놓았다. 산골마을과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인 그 길을 가장 먼저 치워두어야 버스가 다닐 수 있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지런한 동네 어르신들 때문에 눈이 온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학교 가는 길에 눈을 뭉쳐서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고 싶었고, 비료포대를 들고 가서 고갯길을 올라 눈썰매를 타며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이미 길에 쌓인 눈 위에는 모래가 뿌려져서 전혀 미끄럽지 않았고, 눈을 뭉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자매들은 눈이 내리는 밤이면 털실로 짠 모자에, 장갑을 끼고 집 앞으로 뛰어나갔다. 신나게 소리치며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어 길가에 두었다. 두 볼이 빨개지도록 서로 꺄르륵 웃으며 눈싸움을 해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눈을 잘못 맞아 옷 속으로 눈이 들어가면 차갑다고 소리를 지르며 놀았다. 지금이야 내 고향마을에 그때처럼 눈이 내려도 누구 하나 뛰어놀 아이들은 없지만 그때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나와서 눈을 던지고,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다. 호호 두 손을 불어가며 한참을 뛰어놀다가 집 안으로 들어가 아궁이에 넣어둔 고구마를 꺼내와 차가워진 몸을 녹였다. 몸이 어느 정도 녹으면 우리는 또다시 집 앞으로 뛰어나갔다. 어떤 날은 옆집 아저씨가 문을 열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 마한년들아! 시끄럽닷!”
그럼 우리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겨울 방학 때 눈이 오는 날엔 만나자는 약속이 없어도 아이들은 제각기 비료포대에 짚을 한 줌씩 넣어 자기만의 썰매를 만들어 동네 어귀에 모여 썰매를 타러 갔다. 우리 동네 앞에는 경사가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 있었는데, 이 길이 우리의 주된 썰매장이었다. 모자에, 목도리에, 장갑까지 중무장을 하고 모인 아이들은 비료포대 하나에 두 명이서, 혹은 세 명이 서로의 허리를 잡은 채로 소리를 지르며 거침없이 언덕을 내려갔다. 그렇게 언덕을 내려가다 눈 속에 처박혀도 누구 하나 울지 않았다. 오히려 흘러내리는 콧물을 연신 들이마시며 벌게진 얼굴이 땀으로 가득 젖을 때까지 썰매를 탔다. 이제는 그 누구도 내 고향인, 산골마을에서 썰매를 타지 않는다.
십여 년 전쯤, 설날이었다. 어찌나 눈이 많이 왔던지, 차례를 지내고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가야 하는데 차로 이동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가족들은 할아버지 산소가 위치한, 산 중턱에 있는 우리 과수원까지 걸어가야 했다. 다들 눈길에 미끄러지면서도 조심해서 성묘를 마쳤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가족들은 눈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길에서 비료포대에 앉아 까르르 웃으며 썰매를 탔고, 삼촌들도 기꺼이 동참했다. 눈썰매를 타지 않는 가족들은 아래에 서서 눈썰매를 타는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었던 사촌동생들의 한복은 순식간에 젖었고 더럽혀졌다. 눈이 와서 이 산 중턱까지 걸어오느라 불편하다 생각했는데, 눈이 와서 우리 가족들은 각자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웠었다. 고향집 거실에는 그날 새하얀 눈을 배경으로 아빠와 우리 세 자매가 찍은 사진이 곱게 액자에 넣어진 채 놓여있다.
셋째 동생은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지내기로 하면서 부모님 집에서 회사까지 출퇴근을 한다. 요즘 아빠의 아침은 셋째 딸내미의 차에 시동을 걸어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산골마을이라 겨울이면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는 게 보통의 아침이라 혹시나 셋째 딸이 출근길에 춥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일 딸내미 차에 시동을 걸어준다. 눈이 오는 날에는 셋째가 출근 전이나, 퇴근 전에 먼저 고갯길을 넘어가 본다. 셋째가 운전해서 집으로 와도 괜찮은 길 상태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눈이 온다고 눈싸움을 하고 벌겋게 볼이 언 채로, 두 손이 언 채로 들어오는 딸들을 위해 아궁이에 고구마를 던져놓는 일은 없지만 아빠는 그 옛날, 우리가 학교에 가기 전에 동네 어귀까지 눈을 치웠던 그 마음으로 여전히 눈이 오는 날에는 동네 어귀까지 나가보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곳곳이 새하얗게 눈에 덮이면 이내 켜켜이 쌓인, 같은 구조의 집안에서 알록달록 중무장을 한 아이들이 놀이터로 쏟아져 나온다. 어린 시절의 나와 내 자매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온 아파트 단지가 울리도록 까르르 웃으며 서로에게 눈을 던지고,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든다. 나는 14층 내 거실 창가에 기대서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내려보며 잠시 그때의 우리를 생각한다. 천세대가 넘게 사는 우리 아파트에서 나처럼 창가에 기대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른들이 한 두 명은 있으리라는 것, 어떤 색깔의 어른이 되었더라도 어린 시절 하얀 눈밭에서 뛰어놀던 아이였다는 것, 그 누구라도 눈이 오는 날에 얽힌 이야기가 한두 개쯤은 있으리라는 것. 눈이 오면 내일 출근길 걱정이 가장 먼저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은 이유 없이 즐거워했던 그때의 나로 데려다준다는 것. 나는 눈이 싫고도 좋다.
All photos taken by my little br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