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러 가자.

별을 보지 않고 살지만 여전히 별에 둘러 쌓여 살고 있다.

by 모단걸



나의 고향은 별이 쏟아져내리는 곳이다. 집 앞 가로등이 우리 동네를 밝히는 단 하나의 등불이던 시절, 여름밤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똥별 한두 개는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믿던 그때,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라치면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소원을 빌기도 전에 별똥별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아쉽지 않았다. 오늘 밤에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지 못했지만 내일은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되니까.


초승달이 걸린 밤하늘 아래를 걸어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내가 걷는 길 위로 은하수가 길게 펼쳐진 모습은 일상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의 머리 위에는, 나의 밤에는 항상 별들이 걸려있었다. 유난히 달빛이 밝은 날에도,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의 하늘에도 고개를 들면 별이 있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도 구름 속에는 별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내 고향 마을의 밤이었다.


매일 무심코 지나치던 밤하늘에,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별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올려다보는 별은 이전과 달랐다. 북두칠성의 국자 부분으로부터 다섯 걸음의 자리에 위치한 북극성을 찾았을 때 어찌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길 잃은 자들의 별'이라고 불린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는 밤이면 집 앞 공터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북두칠성을 찾고, 이내 북극성을 찾았다. 언젠가 내가 길을 잃는다면 나는 북두칠성을 이용해 북극성을 찾을 수 있으니 길을 잃을지라도 이내 나의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북극성을 찾아내면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별자리를 찾았다.


저 멀리 밤하늘에 걸린 별에, 그 별에 걸린 이야기를 알게 되자 산골동네의 밤하늘은 특별해졌다. 나는 자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별자리를 찾아내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수천 년 전 이야기를 품고 있는 별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어렵사리 찾아낸 별자리가 의미하는 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을 때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찾아내어, 책에서처럼 카시오페이아 여왕의 모습을 눈으로 그려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갈매기 모양의 별자리는 쉽게 여왕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큰 곰자리니, 작은 곰자리니, 전갈자리니 하는 별자리도 마찬가지였다.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나에게는 곰이나 전갈이 그려지지 않았다. 어째서 고대의 사람들은 전혀 닮지 않은 모습으로 별을 연결해서 이야기를 만든 것일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별자리는 단연코 오리온자리였다. 찾기 쉽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였다. 세 개의 별이 나란히 있는 별자리, 대표적인 겨울철 별자리, 전갈자리와 상극인 별자리, 오리온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짧은 여름이 곧 끝나고 기나긴 겨울이 오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별자리. 산골에서의 겨울은 길고 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겨울밤에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집 앞으로 나가 오리온자리를 찾았다. 오리온자리가 겨울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이 겨울이 곧 끝나고 따뜻한 봄이 온다는 의미이었므로 겨울 밤하늘에 걸린 오리온자리가 반가웠다.


이제 도시에서는 누구도 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별자리를 노래하지 않는다. 지상의 빛이 하늘의 빛을 삼킨 도시의 밤하늘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별 중 그 어느 하나도 볼 수 없다. 대신 인공적으로 켜 놓은 도시의 별이 거리를 밝힐 뿐이다. 밤 비행기를 타고 도시의 공항으로 사뿐히 내려올 때, 지상에는 밤하늘의 별보다 밝은 별들이 나를 반겨준다. 저 멀리 있는 밤하늘의 별보다 손 닿을 거리에 있는 도시의 별들이. 나는 이제 별을 보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별에 둘러 쌓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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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photos taken by my little br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