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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an 29. 2021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별점 다섯 개를 드립니다.



수술 후, 담당의사는 나에게 3주간은 운전을 하지 말라고 했다. 2주일의 휴가가 끝나면 출근을 해야 하는데 3주간 운전을 하지 말라는 말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버스로 회사에 출근할 수도 있지만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은 이 곳에서는 어쨌든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퇴원 후 일주일 뒤 외래진료가 예정되어있었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이 사실인 듯 나는 생활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수술 부위가 가렵긴 했지만 책상에 오래 앉아있어도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외래진료를 위해 운전을 해볼까 고민했더랬다. 생활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몸으로 1시간이 넘게 버스로 병원까지 가는 것은 무리였기에 내 차가 아니라면 나에게는 택시밖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택시가 불편했다. 그렇지 않은 기사님도 많으시겠지만 이제껏 택시를 이용하면서 택시기사님이 편했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아침 일찍 기차를 타기 위해 택시 승강장으로 갔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빨간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택시 승강장에 세워진 여러 대의 택시 중 어느 하나도 나를 태워주지 않았다. 기차역까지 간다는 내 말에 택시 기사들은 지금은 운행을 하지 않는다며 다른 택시를 타라고 했다. 기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난감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에게 한 택시 기사가 선심 쓰듯이 타라고 했다. 나는 냉큼 택시에 올라탔는데, 운전을 하며 택시 기사가 말했다. 왜 택시 기사들이 아가씨를 태워주지 않는지 아느냐며 첫 운행을 안경 쓴 여자를 태우는 것으로 시작하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아가씨를 태워주는 것을 고마워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썅, 안경 쓴 여자를 태워서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는 통계자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지랄도 풍년이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외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새벽에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기 위해 택시를 이용해야 했던 날이었다. 그날은 안경을 쓰지 않고 렌즈를 착용했다. 아침부터 안경 쓴 여자가 재수가 없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경을 쓰지 않더라도 새벽에 여자인 내가 택시를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추위 속에 떨다가 택시 한 대를 잡았다. 딱 봐도 나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이는 기사는 나에게 왜 이 새벽에 기차역에 가느냐며 물었다.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가려고 한다는 내 이야기에 택시 기사는 언제 내려올 거냐고 다시 물었고 나는 오늘 밤에 내려올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기차역이 다 와갈 즈음 그가 말했다. 어차피 밤에도 택시 잡기가 힘들 텐데 자기가 데리러 오겠으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나는 말씀은 감사하지만 정말 괜찮다고 대답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무척 불쾌했다. 그러나 나는 택시 안에서 불쾌함을 표시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남자였고, 나는 어리숙한 스물두 살의 여대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나는 분기마다 한 번씩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과 이태원과 홍대에있는 클럽을 자주 갔더랬다. 시골의 작은 도시의 아주 작은 내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그도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작은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는 게 일상이던 나에게 서울 클럽에서의 밤은 신세계였다. 그날 서울엔 눈이 왔다. 새벽 세시까지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놀던 나와 친구는 택시를 잡아 타고 친구의 집으로 이동하던 와중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눈길에서 과속을 하던 택시가 결국 미끄러져서 연석에 부딪혔다. 술기운이 불콰하게 올라왔던 나와 친구는 많이 놀랐고, 택시 기사는 욕을 했다. 마치 우리 때문에 차가 미끄러진 것처럼. 욕을 하는 택시 기사 뒤에 앉은 나와 친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네 집 앞에 우리를 내려준 택시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추가 요금 2만 원을 요구했다. 이곳에 오다가 눈길에 미끄러졌으니 당연히 너희가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차 안에서 그가 내뱉은 욕설을 떠올리며, 술에 취한 우리 상태를 생각하며 우리는 택시요금에 그가 요구한 2만 원을 얹어서 건넬 수밖에 없었다. 


내 퇴원을 도와주기 위해 우리 집에 있던 엄마에게 택시를 불러드렸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이 동네에는 택시를 잡는 일조차 쉽지 않아서 카카오 택시 어플로 스마트 택시를 잡았다. 집에서 병원까지 오는 20분 동안 기사님은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게 참 좋더라며 서울엔 별 게 다 있다고 평가했다. 그 전 나의 수술 날, 깨어난 나와 함께 있던 엄마는 병원 앞에 세워진 택시를 이용해 집으로 돌아갔는데 계속해서 기사님이 이것저것 질문을 해서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며 차라리 아무 말 없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편이 훨씬 좋았다고 했다.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시골 아줌마조차 낯선 타인과의 대화는 불편했던 것이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서울에서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하던 와중에 택시 기사님은 계속해서 유튜브를 시청했다. 그러다가 친구에게서 전화를 오자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손님인 우리의 대화가 시끄럽다며 주행 중에 주머니에 있는 이어폰을 찾아 핸드폰에 어렵사리 꽂고는 계속 통화를 이어갔다. 물론 유튜브를 계속해서 보면서 말이다.


몇 해 전, 코미디언 이영자 씨도 그런 경험담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탄 택시기사도 아침에 여자가 택시를 타면 그날 장사가 망한다는 미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본인은 그런 거 안 믿는데 다른 분들은 다 그렇게 믿는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택시기사에 그 미신을 깨주겠다며 십만 원을 건네주었다고, 그런 잘못된 생각을 깨는데 십만 원이 아깝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나는 그녀의 대응이 무척 멋있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여성 코미디언인 이영자 씨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보통의 다른 여성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택시를 탈 일이 있다면 어플로 택시를 호출한다. 적어도 평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껏 택시를 이용하고 평가를 남겨본 적이 없다. 단 하나의 별점도 아깝다고 생각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다. 모든 택시 기사님들이 이렇지는 않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유독 불친절하고 직업의식이 없는 기사들만 만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의사 말을 잘 듣는 착한 환자이므로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이용해야만 했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고 스마트 호출로 택시를 예약했다. 인사를 하며 택시에 올라탔다. 기사님도 밝게 인사를 하셨다. 다행히 그는 내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목적지가 병원이라 그런지, 원래 운전습관이 그러한 건지, 병원으로 가는 내내 주의해서 운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택시 기사님을 만난 것이다. 나는 어플을 켜고 별점 다섯 개를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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