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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an 27. 2021

층간소음 유발자가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출근해서 일을 하던 와중에 관리사무소에 전화가 왔다.

“혹시 지금 댁에 계시나요?"

“아니요. 지금 집에 아무도 없는데요?”

“아, 그러시구나. 티브이 소리가 너무 크다고 민원이 들어와서요. 댁에 안 계시면 다른 집인가 보네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나참, 대체 어느 집에서 티브이 소리를 얼마나 크게 틀었길래 민원이 들어오나 하며 다시 업무를 재개했다. 한참을 일하다가 불현듯 만약 우리 집이면 어떡하나? 꽃님이는 리모컨을 잘 물고 노니까 혹시 내가 출근하고 난 후, 리모컨을 물고 놀다가 티브이를 켰고, 실수로 볼륨 버튼을 눌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화장실로 가서 홈 시시티브이를 켰다. 소름이 돋았다. 내가 라디오를 켜놓고 출근했던 것이다. 젠장!


내가 처음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원룸이나 투룸이라 불리는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공동주택에 산 지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층간소음으로 민원이 들어온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 항상 슬리퍼를 신고 다니고, 티브이 볼륨도 크게 올려 본 적이 없었다. 몇 달 전, 부동산에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에서 층간소음으로 민원을 받은 적이 있냐는 문의였다. 그 집에서 2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층간소음으로 민원을 받은 적이 없었고 심지어 아래층 사람들을 본 적도 없었다.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으로는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아래층의 지속적인 민원으로 혹시 아래층 사람들이 상습적으로 층간소음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인가 궁금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도 민원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정말로 의아했던 것이다.


경기도로 이사를 오기 전에 동생과 구미에 있는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우리 집 위층 사람들은 대단했다. 아이들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층간소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주말 이른 아침부터 쿵쿵거리는 소리와, 평일에도 밤 10시, 11시가 넘어서까지 벽에 못질하는 소리를 비롯한 각종 소음이 온전히 아래층인 우리 집으로 전해져 왔다. 어떤 날은 손님을 초대했던지 새벽까지 시끄럽게 했고, 날씨가 좋은 주말에 창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있으면 이내 위층에서 이불을 털었다. 먼지가 그대로 바람을 타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다 함께 사는 아파트인데,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관리사무소 측에 이런 사항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민한 동생은 10시가 넘어서까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경비실에 전화를 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뭘 경비실에 전화까지 해”

라고 내가 말하면 동생은 성질을 부리며 말했다.

“내가 어디 하루 이틀 참고 사는 거야? 맨날 저렇게 쿵쿵거리는 거는 아니잖아! 지금 시간이 몇 시냐고!”

불 끄려다 불을 붙인 나는 서둘러 동생을 진정시키곤 했다. 이렇듯 나도 층간소음을 겪어봤기 때문에 라디오 소리 때문에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건 위층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라디오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고, 출근 전에 당연히 전원을 끄고 오는데 오늘은 급히 나오느라 전원 버튼이 제대로 안 눌린 것 같았다. 전원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은 대신 볼륨 다이얼이 돌아가면서 볼륨 업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 대역죄인이 된 것 같았다. 퇴근 후, 서둘러 집에 도착하니 현관에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라디오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내용이었다. 불쾌한 내용이 없이 사실만 적힌 그 쪽지를 보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관리사무소에 전화하셨을 윗집에 사과를 해야 했다. 나는 정성스레 손편지를 썼다.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면서 이웃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저의 부주의로 많이 불편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나 코로나로 인해 이렇게 편지로 사과를 드릴수밖에 없어서 더욱 죄송합니다.’ 대략 이런 내용의 손편지를 쓰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소정의 선물을 종이봉투에 넣어 윗집 현관 손잡이에 걸어두고 내려왔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층간소음 문제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나는 자신했다. 내가 층간소음을 일으킬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혼자 살고 있는 데다, 강아지들도 짖음이 거의 없고, 혹시나 모를 강아지들 짖음에 대비해 현관에 중문까지 설치했으니까 내가 층간소음 때문에 사과를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정말 사람일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내가 이웃집에 이토록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될 줄이야. 최근 불거진 방송인 이휘재 씨 가족의 층간소음에 대한 사과글을 보면서 나로 인해서 공동주택에 사는 다른 누군가가 힘들어한다면 변명보다는 진정한 사과와 더불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나는 단 한 번의 민원에도 이토록 미안하고 부끄러워졌는데 말이다. 변명의 여지없이 나는 아직도 윗집에 죄송하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으니,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은 헛소리다. 층간소음을 겪어보았기에, 내가 층간소음을 유발했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럽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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