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단걸 Jan 31. 2021

나는 차였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용기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일까? 특히 사랑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용기를 내는 사람일까. 나의 과거 행적을 되짚어보면 ‘다소 그런 편’이라고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고백을 해보고 안되면 안 보면 되니까라는 생각으로 이제껏 연애를 시작했었다. 상대방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진 채로 내 마음을 속여가며 친구로, 아는 여자로 그 사람의 곁을 맴돌고 싶지 않다는 마음. 만약 상대방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깨끗이 지운채로 새로운 마음을 맞이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나는 친구인 그에게, 아는 남자인 그 사람에게 먼저 고백해왔다. 이 사람이 아니어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다는 것, 그중 한두 명쯤은 나를 좋아하리라는 것,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데 상대방의 고백으로 끌려가듯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가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던 이유다. 물론 그 용기를 내는 것이 절대 쉽지 않았다. 그의 앞에 서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야 했다. 나의 용기는. 힘겹게 용기를 낸 만큼 상대방에게 거절을 당하는 그 순간은 무척 부끄러웠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낸다.


십여 년 전, 나는 경주에 살았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황성동이었는데 관광지와 좀 떨어진 곳으로 황성공원을 앞에 둔 아담한 동네였다. 관광지와 거리가 있던 우리 동네에는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없었다. 관광객이 찾지 않는 동네에, 동네 주민의 인구도 그리 많지 않은 곳에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머지않아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엔제리너스가 가장 먼저 생겼다. 평소 엔제리너스의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작은 동네에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라니! 나와 동생은 자주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곳은 소란스러웠고, 커피맛에 점점 질려갈 무렵 우리 아파트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할리스 커피가 들어왔다. 나는 주말이면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할리스 커피에 가서 인터넷 서핑도 하고, 책도 읽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와도 그 카페에 자주 들렀더랬다.


아주 짧았던 연애가 싱겁게 끝난 후에도 나는 주말이면 1층 카운터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2층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일상을 이어갔다. 그런 일상이 켜켜이 쌓여가던 날 중 카페의 직원이 바뀌었다. 그는 키가 훤칠했고, 목소리가 무척 좋았다. 이제 나는 평일 저녁에도 매일같이 카페를 찾게 되었다. 물론 전적으로 그 때문에 일상의 풍경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카운터에서 음료 주문을 받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랬다. 나는 그에게 반한 것이다. 연애 상대방의 외모도 중요하더라는 내 말을 들으면 누구든 코웃음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과거 남자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외모가 출중했던 인물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속물 취급을 받는대도 나에게는 상대방의 외모가 중요하다. 물론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외모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니까. 내 전 남자 친구들의 외모를 시니컬하게 평가했던 내 동생도 그가 훤칠하다는 내 말에 동의했다. 나는 그의 이름도, 나이도, 성격도, 사는 곳도 몰랐지만 아무렴 어때. 마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 것을.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떨리는 것을.


결국 나는 그에게 차였다. 그에게 나는 수많은 손님 중 한 명일 뿐이었고, 그도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내 이름도, 내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몰랐다. 내가 그의 목소리와 훤칠한 외모에 반한 것에 반해 그는 나의 외모와 목소리에 반하지 않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손님과의 연애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 때문일 수도, 혹은 그가 연애 중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그의 앞에 서서 전화번호 좀 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당황한 그는 짧은 고민 후 내 핸드폰에 그의 전화번호를 찍어 주었다. 그의 전화번호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꺄악 소리를 지르고 약간의 춤을 추었더랬다. 얼마나 떨렸던지, 어찌나 행복했던지 나는 벌써 그와의 연애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한참이 지나 그에게 문자가 왔다.

‘전화번호를 물어봐줘서 고맙습니다. 지금은 누구를 만날 생각이 없습니다. 좀 전에는 가게에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조용히 따로 연락을 드려 제 사정을 말씀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 전화번호를 드렸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조금 전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던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이 녀석. 거절하는 것도 젠틀하다니!

나는 조금 많이 부끄러웠지만 괜찮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카페를 그만두었다. 동생은 나 때문에 괜한 사람 하나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며 나를 자주 놀렸다. 설마 그래서 그가 카페를 그만둔 것은 아닐 테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던 그 순간을, 그때 내가 용기를 내어서 그의 눈을 바라보았던 그때를 후회하지 않는다. 이미 지난 일에 ‘만약’이라는 가정에는 힘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에게 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에게 보기 좋게 차였지만 나의 용기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 후에도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먼저 고백을 하곤 했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이 될 뿐이니까. 그저 내가 가진 마음의 크기를 알려주어, 나와 같은 크기가 아니더라도 나를 향한 마음이 있다면 새로운 연인이 되는 것. 그게 아니라면 내 마음을 접는 용기를 내는 것. 누군가를 좋아할 때, 누군가에 반할 때마다 내가 용기를 내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가 카페를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동생은 더 이상 할리스 커피에 가지 않게 되었다. 드디어 황성동에도 스타벅스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머지않아 나에게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