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합니다.
지난달, 수술 후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휴가를 내고 회복기간을 가졌다. 언제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때 수월할 수 있을까, 방수 패드 없이 샤워할 수 있을까, 단지 내 짧은 산책이 아닌 근처 공원에서 내 강아지들이 만족할 만한 산책은 언제쯤 가능할까,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원했던 것만큼 회복은 매일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느 정도 걷고, 씻고, 앉아있는 일에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될 즈음 나의 휴가는 끝이 났다. 휴가의 마지막 날, 나는 회사 복귀가 무척 걱정이 되었다. 내가 없는 동안 두배로 고생하셨을 팀장님도 걱정이었지만 그것보다 그동안 나의 라이프 사이클은 제멋대로 엉켜버렸는데, 이를테면 나는 어느 정도 앉는 것에 불편함이 없자 새벽 두세 시까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아침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일어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출근 전날 엄마와 통화하며 그 걱정을 했더랬다.
“엄마, 나 요즘에 10시 넘어서 일어나는데 내일 여섯 시 반에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야.”
“야야, 걱정하지 마라. 엄마가 내일 여섯 시 반에 깨워줄 테니까 걱정 말고 푹 자라이.”
“진짜야? 엄마, 꼭 깨워야 해! 안 그럼 나 회사 못가!”
“그래! 엄마가 꼭 깨워줄 테니까 잠이나 푹 자그라”
나는 엄마를 믿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여섯 시 이십 분,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엄마가 모닝콜을 해주기로 한 시간까지 십 분이 남았으니 조금 더 잘까 고민했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려면 원두를 갈아야 했기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 강아지들 아침을 챙겨주고,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여섯 시 반이 지났는데 엄마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는데도 엄마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출근하는 일곱 시 반에도 내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출근해서 직원들과 간단한 인사 후, 밀린 업무를 시작한 여덟 시 반에도 엄마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업무에 떠밀려 엄마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 건, 내가 깨워달라고 한 여섯 시 반에서 정확히 세 시간이 지난 아홉 시 반이었다.
“하이고, 야야. 내가 깜빡했다. 니 제대로 일나서 회사 갔나? 아직 집은 아이제?”
“어. 엄마 나 회사야.”
“야야. 미안하다. 우에노. 그래가 아침은 먹고 왔나?”
엄마는 정말로 미안해했다. 어젯밤, 엄마가 깨워줄 테니 푹 자라며 큰소리를 쳤던지라 더 미안했을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아침까지 다 챙겨 먹고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엄마와 통화를 끝냈다.
그날 저녁, 엄마는 다시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알람을 저녁 여섯 시 반으로 맞춰놨드라. 아니, 조금 전에 알람이 울려가지고 이게 왜 이러노 하면서 보니까 내가 니 깨울라고 알람을 맞췄는데 아침으로 안 해놓고 저녁으로 해놨드라. 아이고 야야 내가 얼마나 우습든동.”
역시, 우리 엄마다웠다. 엄마와 나는 오랜만에 큰소리로 배를 잡고 웃었다. 출근 첫날부터 업무가 밀려들어와 무척 피곤했던 터라 엄마에게 내일 아침은 꼭 깨워줘야 한다고 다시 부탁했다. 내일은 반드시 깨워줄 테니 진짜 푹 자라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엄마는 그 전날처럼 나를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이후로 지금껏 엄마는 매일 아침 여섯 시 반이면 내게 전화를 한다.
“여섯 시 반이다. 일나라. 일나서 아침 꼭 챙겨 먹고 회사 가래이.”
나는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깨울 때는 지금처럼 나긋나긋하지 않았다. 깨웠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자고 있으면 파리채로 이불을 때리거나, 그도 아니면 이불을 거칠게 걷고 내 등짝을 때리곤 했다.
엄마에게 모닝콜을 부탁하면서 나는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강아지들 근황 등 시시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을 한다. 실은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엄마에게 모닝콜을 부탁한 후로는 매일 통화를 하며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해도 엄마는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준다. 그리고 엄마는 꼭 전화를 끊기 전에 나에게 물어본다.
"내일도 엄마가 깨워주면 되나?”
“응! 엄마! 내일도 꼭 깨워줘야 해!”
엄마도 아침마다 다 큰 딸을 깨워주는 이 일이 즐거운 모양이다. 설 연휴에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강아지들과 나흘간의 연휴를 보낸 오늘도 나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끊기 전에 언제까지 아침에 깨워줘야 하는 거냐며 웃으며 푸념했다.
“몰라? 맨날? 엄마 핸드폰 내가 사준 거니까 맨날 나를 깨워줘야 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평소의 엄마라면 ‘이 가시나 또 까부네’라며 욕을 했을 텐데 엄마는 내 농담 섞인 대답에 웃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엄마가 맨날 깨워줄게. 푹자라이”
38년 전, 나는 엄마의 몸을 통과해 이 세상에 왔다.
나는 이제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아침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