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는 것일까?
최근 재미있게 듣고 있는 팟캐스트가 있다. 코미디언이자 제작자인 송은이 님과 장항준 감독이 함께 진행 중인 ‘시네마운틴’이 그것이다. 영화 한 편이 탄생하기까지 감독, 시나리오 작가, 배우들의 탄생부터 촬영 현장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목해야 할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를 장항준 감독 특유의 유쾌함으로 풀어나가는 팟캐스트이다. 영화의 뒷이야기도 재밌지만 거기에 더해 감초처럼 풀어놓는 장항준 감독의 에피소드들은 떡볶이의 양념장 같은 역할을 한다. 얼마 전 퇴근길에 씨네마운틴의 번외 편으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소개하는 ‘드라마운틴’을 들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어느덧 세 번째로 소개되는 드라마운틴 덕에 ‘나의 아저씨’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의 아저씨’의 명대사를 소개하는데 송은이 님이 먼저 울음을 터트렸고, 드라마를 본 적도 없는 나도 그 대사들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들, 다 죽여!”
“전 오늘 짤린다고 해도 처음으로 사람대접받아봤고,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 박동훈 부장님께 감사할 겁니다. 여기서 일했던 삼 개월이 21년 제 인생에서 가장 따듯했습니다.”
난 분명 ‘나의 아저씨’ 드라마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드라마운틴을 통해 대략적인 드라마의 줄거리를 알게 되었고, 이지은 씨가 연기한 이지안이라는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저 대사를 통해 가늠할 수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아, 내가 왜 이럴까. 왜 갑자기 눈물이 흐르는 것일까. 힘든 연애를 끝냈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당황스러웠다.
서른이 되어 오래된 연인과 헤어질 때의 나는 눈물을 숨기지 못했더랬다. 회사에서 일하던 와중에도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바람에 화장실로 달려가 눈이 벌게지도록 울었고, 붉어진 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며 일을 했었다. 밥을 먹다가도 울고, 책을 보다가도 울었고, 복길이를 안고 오열을 했었다. 그때 너무 울었기 때문일까. 그 이후 만난 연인들과 헤어질 때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사랑했던 연인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이별의 순간에도 나는 덤덤했었다. 눈물이 조금 나와주었으면, 그래서 나와 이별을 이야기하는 상대방에게 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전달할 수 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순간에도 내 눈은 어느 때보다 건조했더랬다. 그랬던 나는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일요일 아침에 ‘TV 동물농장’을 본다. 특히 유기견이나 학대를 당한 동물을 볼 때면 연신 티슈를 뽑아 코를 풀고 눈물을 닦는다. ‘TV 동물농장’이 끝나면 다음은 ‘방구석 1열’이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지 않지만 영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가 놓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그날 소개하는 영화에 조금이라도 슬픈 장면이 나오면 나는 또 눈물을 흘린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쉽게 멈추지 못한다. 내 몸 어느 한구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될 정도로 우는 날도 있다.
둘째 동생이 결혼하던 날, 결혼식에서 동생 부부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던 그 순간 내 눈 앞은 흐려졌다. 눈물이 차 올랐다. 지금 울면, 모든 친척들이 동생이 먼저 결혼해서 분한 나머지 우는 것이라 생각할 텐데 울지 말자, 제발 울지 말자 혼자 머릿속으로 나를 다독였다. 그저 반듯하게 동생을 키우신 부모님의 노고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눈물이 차 올랐던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 가족이니까. 부모님이 어떤 고생을 하시면서 우리를 키워냈는지 바로 옆에서 봤으니까. 그 후, 친구의 결혼식에서도 나는 울었다. 역시 친구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그 순서에서 나는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이번에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민망해진 내가 웃으며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요즘 괜히 결혼식만 가면 눈물이 나"라고 말하며 그녀를 보자 그녀도 나처럼 울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민망해했다.
확실히 예전보다 눈물이 많아졌다. 거기에 더해 나는 예전보다 웃음이 많아졌다. 그리고 다행히 예전보다 화가 많이 줄어들었다. 내가 표출하는 감정의 질과 양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 인지한 것은 확연히 줄어든 화의 양이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분명 화를 냈을법한 일을 그냥 넘기는 것을 알았을 때 (물론 여전히 화가 많다) 이상했다. 사회의 부조리에,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말과 행동에 자주 분노하며 거리로 나가 소리치던 내가 사라진 것 같았다. 대신 나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해 매월 당비를 납부하며 내가 원하는 사회를 위해 그들이 힘써주기를 바라며 지지를 보내고, 인권이 최우선이 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관련 NGO단체에, 동물복지가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위하는 마음에 동물보호단체에, 가난한 자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구호단체에 기부를 한다. 이렇게 표출되는 감정이 달라진 것은 단순히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떻든 나는 지금의 변화된 내가 나쁘지 않다. 슬플 때 울고, 기쁘면 함께 웃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늘어난 것이 이상하지만 좋다. 물론 때와 장소를 가려야겠지.
이제 한 달 후면 셋째 동생이 결혼을 한다. 셋째 동생이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그 순서에서 나는 둘째 동생이 결혼하던 날처럼 울지 않으리라. 정말이다. 그날, 그 순서에 아빠가 우는 지를 두고 동생들과 내기를 할 것이다. 아빠는 둘째의 결혼식이 끝나고 기쁜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었다. 강한 남자라고만 생각했던 아빠도 어느새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낯설기는 했지만 반가웠다. 나와 동생들은 아빠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셋째 딸이 결혼하는 그날 아빠가 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몇 번 나누었다. 그러니 나는 그날 울지 않으련다. 나 대신 아빠가 울 테니까. 내가 울어버리면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동생이 또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분해서 운다고 생각할 테니까.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