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단걸 Feb 27. 2021

엄마가 보낸 부적의 비밀

 몇 년 간 나를 속여오다니! 부들부들



해가 바뀌었다. 1월 1일은  두 달 전이었고, 설 연휴가 끝난 지도 이 주일이 지났다. 이미 2021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나는 크게 체감하지 하지 못했다. 엄마의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설 연휴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내게 부적을 보냈다는 전화를 했다. 그제야 나는 아, 벌써 부적을 바꿔야 할 때인가, 정말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 되긴 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매년 설 연휴가 지나면 가족들이 한 해동안 지니고 다닐 부적을 받아온다. 어디에서 어떤 소망을 담아 부적을 받아오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엄마는 그 일을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는 아빠 몰래 부적을 받아와서 우리에게 보내고, 아빠가 지닐 부적은 아빠 몰래 어딘가에 넣어두곤 했더랬다. 그러나 이제 아빠는 엄마가 받아온 부적을 받으면 알아서 핸드폰 케이스에 끼우고 1년 내내 지니고 다니신다. 아마 부적에 어떠한 힘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부적에 담긴 엄마의 마음을 계속 지니고 있는 것이겠지. 


“야야, 오늘 부적을 보냈거등, 그거 받으면 꼭 작년에 준거는 태우고 새로 온 거를 가지고 댕겨래이. 지갑에 넣든동 핸드폰 케이스에 끼워 넣든동해서 꼭 가지고 댕겨야 한데이. 알겠제?” 하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다 보니 내 머릿속에는 ‘새 부적 수령=작년 부적 태우기’가 입력되어있는데도 엄마는 꼭 이렇게 신신당부를 한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리고 부적의 힘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이렇게 매년 어딘가에서 부적을 받아오는 일에 심드렁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엄마에게 ‘이거 다 미신이야’, ‘왜 쓸데없는데 돈을 쓰냐’고 한 적이 없었다. 그저 한 해동안 가족들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닐 뿐이다. 그 부적에 어떤 신령한 힘이 없을지라도 그 부적에는 나의 행복을 기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 동생과 통화를 하다 동생에게 엄마가 보낸 부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언니, 엄마가 언니한테 부적 보냈다는데 그거 무슨 부적인 줄 알아?”

“몰라. 궁금하지도 않은데? 아무래도 올 초에 수술도 했고 하니 건강하라는 의미 아니야?”

“푸하하하하. 언니 진짜 모르네. 그거 실은 있잖아. 남자 생기는 부적이래!”

“뭐라고? 나는 엄마가 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부적을 보내는 줄 알았어. 아 엄마한테 뒤통수 맞으니 얼얼하네.”

내가 매년 지갑에 넣고 다니며 엄마의 마음을 되새겼던 그 부적이, 실은 빨리 나에게 남자가 생기길 기원하는  그 마음을 담은 부적이었다니! 대체 엄마는 몇 년 간이나 그런 소망이 담긴 부적을 나에게 보냈을까? 뒤늦게 배신감이 들었고, 그보다 조금 더 늦게 헛웃음이 났다.  


나 없이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동생들에게 ‘너희만 연애하고 결혼하지 말고 괜찮은 남자 있으면 언니도 소개해 주라’고 하면 엄마는 정색을 하고 그러지 말라고, 그냥 놔두라고 한다. 다 지가 알아서 할 거라며 엄마는 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언한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역시, 시대를 앞서 살아가고 있는 우 여사’라며 엄마를 추켜올렸더랬다. 그런데 이렇게 나도 모르게 내 뒤통수를 치다니! 부들부들. 

부적의 비밀을 알려준 동생은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 엄마한테 내색하지 말라’고. 물론 나는 엄마에게 내색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소망하는 그것이 사랑하는 이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면 나는 그 마음을 담은 부적을 항상 지니고 다닐 것이다. 몇 년 간이나 ‘남자가 생기는 부적’을 몸에 지니고 있었지만 정작 남자가 생기지 않았으니 그 부적이 별로 용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의 행복을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진실이기에 나는 엄마가 보낸 부적을 언제나 그랬듯이 올 해도 지닐 것이다. 또 모르지 않은가. 이번에는 이 부적의 힘으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지금처럼 행복한 일상을 이어갈 수도? 


매거진의 이전글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