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운틴을 듣습니다.
요즘 내가 푹 빠진 팟캐스트가 있다. 바로 영화감독 장항준 감독님과 코미디언이자 콘텐츠 제작자인 송은이님이 함께 진행하는 ‘씨네마운틴’이다. 나는 재밌는 사람, 유머가 있는 사람, 웃긴 사람에 대한 호감이 큰 편인데, 유독 장항준 감독의 유머를 좋아한다.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지만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송은이 대표에 대한 호감도 큰 편인데, 여성 코미디언들이 하나 둘, 설자리를 잃어가자 그들이 할 수 있는 무대로 팟캐스트를 활용했다는 이야기에 반해버렸다. 그러니 내가 호감을 느끼는 인물 두 사람이 하는 팟캐스트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더해,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비록 영화는 잘 보지 않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된 소설을 써보고 싶은 사람이니, 영화 이야기라면 환장을 하지 않는가.
나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극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극장에 가지 않기때문에 화제가 되는 영화를 놓치기 일쑤인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요즘엔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넷플릭스니, 왓챠니 하는 다양한 플랫폼이 생겨나서 오히려 집안에서 편안히 영화를 접하기가 더욱 쉬운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 영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주말에 몰아서 잠을 자는 나에게 일요일 아침은 분주하다. 토요일은 허리가 아플때까지 침대에서 뒹굴지만 일요일은 ‘동물농장’이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잠을 깬다. ‘동물농장’이 끝나면 나는 당연하게 ‘방구석1열’을 본다. 그리고 틈틈이 채널을 돌리며 ‘출발 비디오여행’, ‘접속 무비월드’, ‘영화가 좋다’ 같은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본다. 영화 소개프로그램에서 해주는 간추린 영화 이야기에는 넋을 놓고 빠져들면서 나는 쉽게 영화를 보지 못한다.
초등학생이던 90년대에, 우리 동네에서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유일한 곳은 교회였다. 시골 교회의 전도사님은 주말 예배가 끝나면 코흘리개 아이들을 모아놓고 ‘영구와 땡칠이’ ‘홍콩 할매 귀신’ 등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우리들은 그 달콤한 시간을 위해 지루한 예배를 견뎌냈다. 전도사님은 동네 아이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고, 우리는 설교 말씀보다 영구와 땡칠이를 보기위해 주말마다 교회로 향했더랬다. 드디어 우리 집에서 비디오 플레이어가 생겼고, 엄마는 자주 봉화읍내에 있는 비디오가게에서 우리가 볼 만한 비디오를 빌려주었다. 세상에는 책을 통해서 상상해왔던 세계보다 더욱 화려하고, 다채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당시 나는 홍콩영화에 빠졌다. 장국영, 여명 등 내가 좋아하는 홍콩 영화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했다. 낯선 도시의 모습과, 낯선 언어를 말하는, 낯선 영상 속의 영화는 나의 상상의 세계를 더욱 넓혀주었다.
한창 연애중이던 이십대에 남자친구와 함께 학교 앞 영화관에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볼 때였다. 배우들의 우는 연기가 한창이던 와중에 나는 왜인지 웃음이 났는데 고개를 돌려 남자친구를 보니 그는 꺼이 꺼이 울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물이 낯설었다. 그는 이 슬픈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무척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보며 깨달았다. 같은 장면을 보며 모두가 같은 감정일 수는 없다. 서로의 다름을 영화를 함께 보며 확인하자 나는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러자 영화관에서 타인과 함께 영화를 보는 일도 이내 불편해졌다. 더군다나 영화관 앞자리에 앉은 사람때문에 스크린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뒷사람이 연신 내 의자를 발로 차는 것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의 영화 예찬, 이를테면 나는 아주 형편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영화를 극찬한다거나, 나는 무척 인상깊게 본 영화를 누군가는 어떻게 그런 영화를 찍은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한껏 움추러들었다. 더군다나 이 세상에 봐야하는 영화는 차고 넘쳤다. 내가 ‘시네마 천국’을 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그 영화를 보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서둘러 ‘시네마 천국’을 찾아 보고나면 ‘사운드 오브 뮤직’을 안본 나에게 또다시 어떻게 그 영화도 보지 않고 영화를 봤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 날아들었다. 세상에 필독서를 안 읽은 사람은 차고 넘쳤고,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주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쩜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이 너무도 쉽게 던져졌다. 그래서 나는 굳이 영화를 찾아보지 않기로 했다. 이럴바에야 누군가가 해주는 영화이야기를 듣는 편이 나았다. 나는 아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지 않았다. 언젠가는 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영화 기생충 이야기를 하면 나는 자신있게 말한다. 아직 보지 않았지만 곧 볼 예정이라고. 그러면 상대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며 이야기를 멈추는 것이다.
내가 ‘시네마운틴’을 즐겨듣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장항준 감독은 영화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본인의 에피소드를 하나 둘 펼쳐 놓는다. 엄마와 이모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반장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소년 장항준의 이야기를 비롯해 대학 입시 시험장 앞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소리친 아버지의 일화를 비롯해 일면 영화 이야기와 상관없어보이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영화라는 산을 정복하기 위한 등반길에 샛길도 있음을 알려준다. 왜인지 그 샛길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힘든 등산길 중 잠시 쉬며 마시는 물한모금 같다. 장항준 감독과 송은이 대표는 쉼없이 씨네 마운틴을 오른다. 잠시 길을 잃더라도 이내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나는 영화를 볼때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하는 지 씨네 마운틴을 통해서 혹은 각종 영화 소개프로그램을 길잡이로 삼는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재밌게 소개한 영화들을 직접 보고 난 이후, 정말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읽을때면 종종 작가와 대화하는 기분을 느낀다. 영화를 볼때면 감독이 의도한 바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읽어야하는데 활자에 익숙한 나에게 영상을 통한 감정 전달은 쉽지 않다. 대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장면을 연출한 것인지, 이 장면에는 어떤 뒷 이야기가 숨어있는지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읽어야하는 바를, 내가 알아야하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영화를 자주 보진 않지만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다.
이미지출처: Contents Lab VI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