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사막 아래에서 자라는 뿌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멈춤은 후퇴가 아닌, 가장 뜨거운 도약의 준비

by MIA

이집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저를 지배했던 것은 '상실'의 감정이었습니다. 치열하게 쌓아온 커리어를 뒤로하고 '누구의 아내'로 불려야 하는 현실이 마치 저라는 존재가 모래바람에 풍화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낯선 땅에서의 위계질서에 지쳐 한국인들을 애써 피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저들과 달라"라는 오만함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거죠.

하지만 정작 제가 무너져 내리던 순간, 메마른 손을 잡아준 건 제가 피했던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막의 열기보다 뜨거운 이웃의 정을 마주하며, 저는 제 오만함을 씻어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요.


커리어가 끝났다고 절망했던 그 정지 화면 속에서, 역설적으로 제 아이의 삶은 가장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에 쫓겨 주말에나 겨우 나누던 짧은 대화들이, 이곳에선 매일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오늘'을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 그것은 제 경력의 공백기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생애에서 가장 밀도 높은 '황금기'였습니다.


비로소 앞만 보고 달리던 걸음을 멈추자, 잊고 살았던 '나'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졸업 후 쉼 없이 달려오느라 돌보지 못했던 몸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낯선 아랍어 단어를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며 무너졌던 자존감을 다시 세웠습니다. 몸이 건강해지니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지더군요.


사막에서도 '쓰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지금 혹시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인가요? 커리어가 멈추고,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신가요. 기억하세요. 식물들이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동안 죽은 듯 고요한 건, 땅속 깊은 곳으로 뿌리를 뻗어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비가 왔을 때 누구보다 힘차게 꽃을 피울 수 있으니까요.


당신의 지금 이 쉬는 시간은 결코 멈춤이 아닙니다. 더 크게 뛰기 위해 바닥을 힘차게 박차는 '도움닫기'일뿐입니다. 먼지 날리는 그 사막 아래에서 당신의 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더 깊고 단단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결국 꽃은 기어이 피어날 것이고, 당신의 도약은 누구보다 눈부실 것입니다.


처음 브런치에 작가 신청서를 내면서 10 화분을 기획했었고,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 좀 버겁고 어려웠지만, 10화를 마무리하니 성취감이 느껴지네요.

저는 지금 중동의 또 다른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이틀 전 포탄소리에 새벽 4시에 깨기도 했습니다. 조금 무섭지만, 지금 이 순간도 또 언젠간 제게 큰 양분이 되리라 믿으며, 잘 지나가 보겠습니다.

저는 '기어이'의 힘을 믿거든요.

우리는 모두 '기어이' 살아남아 기필코 그 다음장을 써내려 가기라 믿습니다.


다음 브런치 글들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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