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의 아침은 한국의 설날과는 무관하게 밝아온다. 조금 일찍 일어나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한 뒤,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길에 오르고, 아이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달력엔 빨간 글씨 하나 없는, 평범한 타국의 평일. 대부분 주재원 와이프들은 아침 일찍 골프장으로 향하며 일상을 지낸다. 하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엔 늘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묘한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몇몇 가족은 스스로 '명절'을 더 열심히 준비했다.
낯선 땅에서 피어난 '다정한 연대'
열 가족, 어른과 아이를 합쳐 마흔 명 남짓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아이들만 스무 명 남짓. 좁은 거실은 금세 알록달록한 한복 물결로 넘실거린다. 한국에서는 명절이라 해도 핵가족끼리 단출하게 보내는 게 익숙해진 요즘이지만, 이곳 사막 한가운데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한국적인' 공동체를 경험한다.
며칠 전부터 고기를 재우며 40인분의 잔치를 준비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진두지휘'를 자처하는 이웃들의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돌이켜보니 그것은 단순한 부지런함이 아니라, 혼자서는 버틸 수 없는 낯선 땅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자 했던 지극한 '다정함'이었다.
"Lunar New Year is one of our biggest traditional holidays in Korea”
학교 친구들에게 영어로 우리의 문화를 설명하던 그 순간, 아이들은 뭔지 모를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놀이터가 사라진 시대, 우리가 아이에게 준 선물
가장 마음이 벅찼던 건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해졌다. 하지만 그날 우리 아이들은 윷가락을 던지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언니, 오빠들과 어울려 양보와 배려를 배웠다.
외동으로 자라 형제의 정을 몰랐던 아이가 언니들의 손을 잡고 세배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 어떤 해에는 아이들을 위해 마술사를 초청해 거실을 공연장으로 만들었던일, 나일강에서 배를 타고 노을을 바라보며 맞았던 새해. 그 비현실적인 풍경들. 그 속에서 아이들은 '함께'라는 단어의 무게를 몸소 체득했다.
나의 '경력 단절' 기간은 어쩌면 아이에게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가르쳐준 가장 밀도 높은 교육의 시간이었다.
혼자 노는 법보다 함께 웃는 법을, 자신의 욕심을 누르고 상대의 눈을 맞추는 법을 가르치던 시간들. 낯선 이국땅에서 우리 가족이 서로를 겹겹이 껴안으며 만들어낸 그 촘촘한 정은, 아이가 훗날 어떤 거친 세상을 만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단단한 뿌리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과 어울려 사는 법,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 이 거대한 가르침은 결코 교과서나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나의 경력이 멈춘 그 자리에서, 아이는 우리의 사랑을 먹으며 '사람 냄새나는 어른'으로 자랄 준비를 했다.
나의 사회적 시간이 잠시 멈췄던 그 '단절'의 틈 사이로, 아이의 생애 가장 귀한 자양분이 흘러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선물한 이 '함께함의 시간'은, 훗날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투자였으리라. 나는 비록 잠시 멈춰 섰지만, 내 아이는 그 멈춤 덕분에 세상을 향해 나아갈 가장 따뜻한 엔진을 얻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시기를 공백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생애 가장 밀도 높은 몰입'이라 부르고 싶다.
다시, '정'이 그리운 당신에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지내던 시절, 가끔 창밖의 고요한 놀이터를 바라봤다. 조기 교육이 당연시되고 개인의 삶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더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때 그 사막에서 나누던 떡국 한 그릇의 온기만큼 마음이 따뜻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가족의 해체를 말하는 시대라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낯선 이방인으로 살며 우리가 서로에게 기꺼이 '가족'이 되어주었던 그 기억이 우리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를.... 그 시절 우리가 쏟았던 정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