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코로나 속에 피어난 온기

고립이 가르쳐준 것

by MIA

요가 매트를 어깨에 메고 아랍어 교재를 가방에 넣으며, 나는 조금씩 한국인 커뮤니티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아니, 스스로 물러났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골프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 엄마. 모임에 얼굴 비추기 어려운 사람. 어느새 나에게는 그런 꼬리표들이 하나둘 붙어 있었다. 내 뒤에서 자라나는 소문들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듣지 않으니,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척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한 듯, 평온하지 않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고요함이 나의 평온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평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함께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공항이 닫히고 학교의 문이 굳게 잠겼다. 약도 마스크도 부족한 이집트에서 '확진'은 곧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마트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사람들을 야수로 만들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사재기가 눈앞에서 펼쳐지자, 온몸이 얼어붙었다. 매대에서 설탕과 휴지가 사라지는 풍경을 목격하며 나는 생경한 공포에 몸을 떨었다. 다정하던 외국인들도, 이집션들도 한순간에 거칠어졌다.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국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안전하게 장을 보거나, 대부분 남편들이 바깥일을 맡았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다. 나는 홀로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전쟁터 같은 마트로 나가야 했다.


그러다 접촉사고를 당했다. 꽝!


긴장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있던 마음은 작은 사고 앞에서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덤덤한 척 버텨온 시간이 무색하게, 도로 한복판에서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겁에 질린 아이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섭고 서러웠던 날 저녁, 밥도 못 먹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였다.


"똑똑—"

적막을 깨는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 문밖에는 내가 그토록 거리를 두려 했던 이웃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귀한 미역국과 따뜻한 죽이 들려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아이와 내 저녁이 걱정되어 한달음에 달려온 마음이었다.

내가 '피곤한 참견'이라 치부하며 밀어냈던 그들의 '가족 같은 끈끈함'이, 가장 위태로운 순간 나를 지탱하는 구명줄이 되어 돌아왔다.

그토록 불편하게만 여겼던 '가족 같음'이, 그렇게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었다. 너무나 감사했고, 오만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정말로 나를 걱정해 주시다니.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 타인의 손길을 '간섭'으로만 정의했던 나의 편협함이 뜨거운 국물 앞에서 녹아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후 9시 이후 통금이 시작되었다. 곧 풀릴 거라 믿었던 통금은 계속 이어졌다. 그사이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민들을 송환하고 있었다. 친했던 외국인 친구들이 말도 없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묘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는 계속 남겨졌다.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두 달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가족과 함께한 인연들은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한국인 커뮤니티가 때로는 숨 막히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순간, 나를 지켜준 것은 '한국인의 정'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방패였다.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나를 잃지 않는 것. 그리고 타인에게 마음의 한 뼘쯤은 내어줄 수 있는 유연함을 갖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휘몰아치는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비로소 온기의 진짜 의미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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