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계속해 보자
시 마감이 다가오면 산통처럼 가진통을 겪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시를 낳기 전에 겪는 가진통의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죠. 혼자서 시를 끄적거릴 때는 이런 시간을 몹시 그리워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감이라는 손님이 찾아오니 언제 그리워했냐는 듯이 머리를 마구 흔들어댑니다. 저에게 어는점은 바로 이 순간입니다.
저는 좀처럼 끓지 않습니다. 가진통이 찾아오지만 진진통까지 가지 않고 미지근한 상태로 빨리 끝내려 합니다. 낙천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렁술렁 넘어갑니다. 일상 생활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문학을 하는 저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지요. 한동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저 자신이 한심스러워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자책만 하고 나는 왜 그럴까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시밤 6기 때 나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왜 동시를 쓰려고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내 안의 동심으로 가득한 날들 속에서 행복했던 나를 만난 것입니다.
매주 수요일 시밤 수업이 시작되고 가진통에서 진진통으로 넘어가지 못한 시들이 시밤 동무들과 선생님 앞에 보이는 순간이 옵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시를 보여주는 시간이 참 힘듭니다. 용기를 내야 하고 잘 버텨야 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이 시간이 녹는점입니다.
안희연 산문집 《단어의 집》에서 “내가 쓴 문장들이 징검다리가 될 때가 있다. 과거의 문장을 딛고 현재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현재의 문장을 딛고 미래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간신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말과 사람이 함께, 느리더라도 함께. 그러니 하던 걸 하자.”(179쪽)라고 했을 때 ‘그래 내가 하던 걸 그냥 계속해 보자.’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완성된 동시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동시를 쓰고 있고, 동시 쓰는 제가 점점 예뻐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혔던 시 흐름이 조금씩 흘러가는 기분이 들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시 하얀 백지상태가 됩니다. 시를 더 뜨겁게 다듬어봐야지 하는 생각은 금방 사라지게 되지만 다시 어는점이 찾아오고 조금씩 끓어오르고 있는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종종 미지근한 문장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고 창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