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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Jun 08. 2020

말을 입 안에 가둬놔야 할 때가 있다

내가 가장 상처 입은 줄 알고 살았다

가끔은 맴도는 말을 가둬놔야 한다

작가 『김미아』


말하다 관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지만 때론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있다. 마치 먹이사슬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오늘은 자기 고백의 시간이 될 예정이다. '말하다'했을 때, 누군가에게 상처 받은 게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에게 상처 준 게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지금껏 전자로 살아왔는데, 최근 나를 잠 못 들게 만드는 기억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수치스럽고, 깊은 죄의식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줄 알고 살아왔는데, 나 역시 똑같은 짓을 했다는 걸 요즘에야 느낀다. 사과도 못할 만큼 멀어진 관계가 눈에 들어온 이때에야.


우선, 조사를 잘못 사용해서 상처를 준 케이스다.

개성은 있지.

친구가 '내 얼굴이 그렇게 못생겼냐'라고 물었을 때 대답이었다. 판단이 필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적당한 위로와 재치, 유머가 필요했는데, 나는 나름 객관적인 척 대답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은'이라는 조사까지 붙여 버렸다. 마치 개성은 있지만 다른 건 없는 것처럼. 순간 굳어지는 친구의 표정을 보고 재빨리 "개성 있는 얼굴이 대세지"라고 포장해도 이미 늦었다. 어차피 변명이었고, 친구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자만과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친구의 자존감을 깎아 먹었다.


두 번째로는 순간적으로 진심이 튀어나온 경우다.

이럴 거면 조사를 왜 한 거지?

조별 과제에서 조사를 담당한 후배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밤새워서 조사하고 정리하고 내 파트의 대본까지 만들어 왔는데 위키 백과를 긁어온 게 뻔히 보이는 자료 내용을 보자 화가 울컥 치밀었다. 그래서 그만 속으로 한다는 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분위기는 당연히 싸해졌다. 그때 당시엔 미안하긴 했지만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앤 자료 조사를 대충 해왔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후배니까 모를 수 있었다. 자료조사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감이 안와 그나마 구글로 검색한 내용을 믿고 가져온 것일 수도 있었다. 모르면 알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욕하는 게 아니라. 나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밤을 새운 적이 있지 않았나. 선배에게 지식을 구하지 않았나. 그래 놓고 나는 처음부터 다 알았다는 듯이 그 애를 몰아붙였다. 그걸 졸업 후에야 알았다. 끝끝내 사과는 하지 못했고 그 애는 졸업 때까지 내 눈을 피했다.


세 번째로는 무지로 인한 잘못된 표현이다.

줄담배 피운 것 같은 목소리가 나요.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어서 목이 쉬면 자주 했던 말이 '너 줄담배 폈냐'였다. 진짜로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어서 했던 말이었고, 나름대로 유머를 섞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진짜 담배를 피는 사람 앞에서 이 말을 해버렸다. 노래방에 다녀와서 목소리가 완전히 쉰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줄담배 피운 것 같은 목소리 나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한 동료가 '나는 줄담배 펴도 그렇게 안 돼, 그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조용히 얘기했다. 아차 싶었다.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말하듯이, 우린 때때로 내가 포함되지 않은 그룹이라고 해서 너무도 쉽게 조롱하고 비하한다. 스트레스받는다고, '암 걸리겠네'라고 쉬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 또 나의 무지가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다가갈까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이기적인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미안해, 오늘 음악실 같이 못 갈 것 같아. 먼저 가.

학창 시절만큼 '함께'가 중요한 시기가 없다. 함께 있는 건 곧 생존과 연결되는 일이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아이는 모두의 호기심과 동정 어린 시선, 혹은 경멸까지 받으며 홀로 버텨내야 한다. 무리는 곧 생존이었기에 모두들 필사적으로 무리에 머무르려고 노력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각자 아는 친구 하나 없던 나와 A는 금세 무리를 이루었다. 친구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 친구는 내 얼굴을 지적하며 노는 걸 좋아했고, 나는 그걸 내색하지도 못할 만큼 소심했다. 매일 스트레스가 쌓여갈 때 즈음, 다른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초대받은 건 나뿐이었다. 나는 A에게 미안하다며, 오늘 같이 음악실을 못 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A의 표정이 요즘도 떠오른다. 이젠  번호도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 애한테 사과하고 싶었다. 그러나 뱉은 말은 더 이상 사과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그대로 나와 그 아이의 가슴에 머무른다.


위의 말들은 전부 내가 했던 말들이자, 내가 들었던 말들이다(줄담배 이야기만 빼고) 모두 안 하느니만 못했던 말들이었다. 나는 때때로 누군가에게 상처 입고, 입히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먹이 사슬의 중간쯤에 위치한 인간 같다. 누군가는 나를 먹고,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양식 삼고. 말한다는 건 그런 거다. 평생 누구에게 한 번도 상처 주지 않는 인간은 없다. 상처 입지 않는 인간도 없다. 우린 모두 서로를 상처 입히며 살아간다. 그래서 가끔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말을 입에 가두고, 조금 더 친절한 몸짓만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상처 입히면서 상처 받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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