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엄마와 실컷 말다툼 한 날은 문을 쾅 닫고 불 꺼진 방에 들어왔다.
그런 날은 이불과 뒤엉켜 울며 드라마에 나오는 식사 장면이나,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의 입장을 헤아리며 타이르는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런 집의 둘째 딸로 태어나 이런 마음고생을 하는지 하늘에 대고 원망을 하기도 했었다.
그 무렵 나는 가족에게 고마운 일이 있어도 애꿎은 발 끝을 바닥에 콩콩 찧으며 목 끝까지 올라오는 말들을 삼켜버렸었다. 타인에게는 어렵지 않은 고맙다는 말이 가족에게는 왜 그렇게 간지럽고 어색했을까.
왜 가족에게는 쉽게 기대하면서 고마워하는건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하루 중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곳은 결국 가족이 있는 집이었다.
그곳에서 만큼은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알게 모르게 느꼈던 심리적인 긴장에서 벗어났다.
편안하고 싶었고 부족하더라도 이해받고 싶었다.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가족이 주는 익숙함에 젖어있던 그때의 나에게는 퍽 새삼스럽고 대단한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 가장 처음 관계를 맺는 가족에게 무의식적으로 어떤 기대를 하곤 한다. 각자가 상상 속에 이상적인 부모, 배우자, 아들, 딸, 형제, 자매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무리한 기대와 이상은
익숙함, 편안함과 만나
가족을 너무 쉽게 대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만든다
누구나 맹목적인 신뢰와 사랑을 주고받는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면 부모의 세상과 분리된 자신만의 세상을 갖게 된다. 그렇게 갖게 된 각자의 세상을 건강하게 지키면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 개개인의 가치관을 존중하려 노력하고, 타인에게 그러하듯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대학교에 진학하여 본가에서 떨어져 지내게 된 후 완벽한 슈퍼 히어로이기를 바랐던 어린 시절 나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부모님을 보았다.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만든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인해 스스로 괴로워졌음을 느꼈다.
결국 어떻게 보면 가족 관계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고, 살면서 만났던 그 누구에게도 가족에게 바라는 것 같은 이상적인 모습을 강요한 적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서로의 태도가 한 번에 바뀌기는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를 새로이 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필요하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할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하는 만큼의 노력을 가족에게 기울인 적이 있었을까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보다 자주 말하고 직설적으로 화내기는 타인에게 그렇듯이 조금 더 조심스럽기를 바래본다. 비록 완벽하고 이상적이지 못하지만 그런대로 멋진 나의, 그리고 당신의 가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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