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건반 사이에서

by MiA

지난주 금요일 추석연휴를 맞아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오랑주리 오르세미술관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얼마나 기다렸던 연휴였던지, 10일간의 연휴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르누아르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것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르누아르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그림이 주는 따뜻함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물론 이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르누아르의 부드러운 붓질과 따뜻한 색채가 주는 안정감은 그 자체로 위로라 생각한다.



KakaoTalk_20251011_000209259_03.jpg 예술의 전당 근처 카페에서 먹은 맛있는 샌드위치


그날의 행복은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예술의전당 근처 카페에서 친구와 샌드위치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던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조잘조잘 재미있게 밀린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즐겼다.



KakaoTalk_20251011_000209259_05.jpg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해둔 티켓을 받아 전시장에 들어섰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이 처음으로 국내에 작품을 대여해준 전시인 만큼

앞으로도 국내에서 쉽게 보기 어려울 귀한 작품들이라 그런지, 이른 시간임에도 인파가 가득했다.


그래서 더욱이 명화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붐비는 관람객 상황을 고려해

쾌적한 전시 관람을 위해서 인지 전시장 안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사진을 남기지 못한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작품을 관람하며

친구와 나는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더 알고 싶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며 감상을 나누고 있었다.


전시장을 절반 쯤 돌았을 때, 나는 한쪽 벽에 걸린 작은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르누아르의〈피아노 연주를 하는 이본과 크리스틴 르롤>
익숙한 화풍인데, 어딘가 달랐다.

분명 르누아르의 작품인데도, 내가 기억하던 그 부드럽고 따뜻한 르누아르의 세계와는 전혀 달랐다.




바로 옆에서는 관람객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이게 그 유명한 그림이잖아, 〈피아노 치는 소녀들〉!”


그림1.png Pierre-Auguste Renoir, Jeunes filles au piano (피아노 치는 소녀들), 1892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한눈에 ‘르누아르답다’는 말이 떠올랐다.
온화한 파스텔톤, 황금빛 머리카락, 부드러움과 따뜻함, 낭만적인 가정의 온기가 그림 전체를 감쌌다.


"와, 진짜 예쁘다"


나도, 친구도 이렇게 말했다.

'예쁘다'는 말 안에 우리가 본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따뜻함을 담은 작품이었다.


예쁜 색감, 부드러운 긴 금색 머리를 늘어뜨린 채 한 손은 건반 위를,

다른 한 손은 악보를 가볍게 터치하고 있는 피아노 치는 소녀,

그리고 그 옆에서 악보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한 명의 소녀.




그림2.png Pierre-Auguste Renoir, Yvonne et Christine Lerolle au piano (피아노 연주를 하는 이본과 크리스틴 르롤), 1897


그런데 나는 다시 이본과 크리스틴의 그림 앞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이본과 크리스틴 르롤〉

이 그림 속의 두 여인은 소녀가 아니라 성숙한 여성이었다.


명확한 선으로 드러난 몸의 실루엣이나 오똑한 콧날,

단단해 보이는 짙은 갈색의 올림 머리,

특히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크리스틴이 한 손으로 악보를 가리키며

다른 한 손은 의자를 감싸고 있는 모습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림 속의 두 여성은 부드럽기 보다는 다소 차가워 보였다.


지금 이 상황에 깊게 몰두해 보이는 이들의 표정 또한 견고해 보였다.

마치 이들이 있는 방의 창문 밖으로 비가 쏟아지고 있다고 해도

이에 전혀 방해 받지 않고 오롯이 지금 이 순간 피아노를 치고 악보를 보고 있는

이본과 크리스틴의 모습이 느껴졌다.


피아노를 치는 이본은 살포시 건반 위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어 누르는 것 같았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윤곽과 대조가 주는 명확성이 좋았다.

색 대비가 조금 더 선명하고, 밝은 색과 어두운 부분 사이의 대비가 더 잘 보이는

성숙한 여성들의 표현이 나의 마음을 더 사로잡았다.


이 작품에서 르누아르를 떠올릴 만한 요소는 부드러움을 연상시킬만한

올리브나 다홍색의 색상 말고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르누아르의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들과 모든 요소가 정 반대였다.


르누아르 특유의 부드러움 대신, 묘한 견고함이 있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더 ‘날 것’ 같아서.




그림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가공되지 않았던 시절의 나 - 어리숙하지만 솔직했고, 충동적이지만 단도직입적이었던 그때 그 시절의 나.


실수도 많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느끼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가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 사이의 거리와 조심스러움을 배웠다.

관계를 위해, 안정감을 위해, 혹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점점

내 안의 결을 다듬어 보이는 법을 익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한번 체에 걸려져 곱게 표현이 되는 나.

그게 ‘성숙’이라 믿지만, 가끔은 진짜 나를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늘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처럼, 온화하고,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남기는,

그런 ‘소녀 같은 사람’.


하지만 내 안에는 늘 다른 결이 존재한다.

날이 서 있고, 생각이 깊고, 감정이 단단한 나.


피아노를 두드리는 손끝, 중심을 세운 시선, 스스로에 대한 자각

마냥 부드럽고 따뜻하지 만은 않은, 열정과 날 것으로 두른 나.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 부합하지 않아도 나에게 솔직한 나.

그게 나의 본모습이다.


어쩌면 나는 평생 두 건반 사이를 오가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세상 속에서는 부드럽게 빛나지만, 동시에 나의 ‘날 것’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빛나고 싶다.

앞으로 나만의 울림에 더욱 귀 기울이고 싶다.

진짜 나를 잃지 않도록.


이번 전시가 나에게 준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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