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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환 Mar 31. 2022

책방이 되고 싶다

2021.7.

우리 동네는 서울 동쪽에서 안 막히면 차로 20분, 버스로 30분, 지하철로 40분이면 오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소도시에 있다. 시라고는 하지만 산줄기가 쪼개놓은 여러개의 읍마을이 흩어져 있고 읍과 읍 사이는 산길을 꼬불꼬불 20분 이상 가야 닿을 수 있다. 우리 읍에는 인구 6만 5천명이 산다고 한다.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출퇴근시간과 주말에 도로는 항상 병목현상이 심각하다. 하지만 한강이 있고 낮은 산들이 있어 풍경 좋고 여유로운 곳이다. 큰 쇼핑몰이나 핫플레이스는 별로 없지만 한강뷰의 카페나 숨은 맛집도 있고 없는 건 없고 있을 건 다 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 없는 게 있다. 바로  동네책방이다. 중고등 학습지나 월간지, 베스트셀러 등을 파는 서점은 두 군데 정도 있다. 요즘 ‘서점’과 ‘책방’은 조금 다른 장소의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서점은 있지만 책방은 없는 우리 동네. 우리 동네에 책방을 내는 게 요즘 나의 꿈이다. 


처음에는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현실 도피처로 책방 주인이 되는 상상을 했다. 시골에 가서 손님도 없는 책방을 차려놓고 책이나 실컷 읽고 졸기도 하다가 내맘대로 문 열고 닫는 그런 상상을 자주 했다. 텃밭을 가꾸면서 자급자족하고 만날 사람도 없으니 돈 쓸 일도 별로 없을 거야. 돈을 별로 벌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시골에서 작은 출판사를 하면서 살고 계신 어느 분께 귀촌 상담을 하기도 했다. 

“시골에서 살고 싶은데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고민거리입니다.”

“우리는 먹고 사는 걱정을 제일 안 해요.”

얼른 이해되지 않는 대답이긴 했지만, 도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알 수 없는 시골살이의 방책이 있으리라 짐작만 했다. 


회사를 떠나 자유인이 되고 몇달을 놀다 보니 시골로 가지 않아도 정신적인 녹지가 많이 생겨났다. 이곳 변두리도 이미 시골 느낌이 꽤 나는 곳이기도 하고, 좀더 나이 들면 다시 귀촌을 고려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책방에 대한 꿈은 여전히 남았다. 

이곳은 행정구역 ‘읍’, ‘리’ 단위의 시골스러운 곳이지만, 아파트촌이고, 이사온지 얼마 안 된 우리는 이웃이 없다. 동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다른집 현관문을 두드릴 용기는 나지 않고, 거리두기로 인한 옆집과의 담장은 높고 견고하다. 동네 사람들은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면서도 닫힌 문 안에서 외로워하고 있다는 생각을 동네 온라인 커뮤니티나 동네 카페를 가면 느껴진다. 나의 외로움을 투사시킨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 우리 동네에 필요한 것은 바로 책방이야. 우리가 한 마을에 살고 있고,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함께 성장을 도모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방 말이다.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 있어 지나다가도 들르고, 살 게 있어서 들르고, 구경할 게 있어서 들르고, 입이 궁금해서 들르는 곳. 들러보니 아는 사람도 만나 수다가 길어지고, 모여서 쿵짝쿵짝 하다보니 그림도 그리게 되고 글도 쓰게 되고 책도 읽게 되는 신기한 곳이 동네에 생기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점점 이웃들이 좋아하는 것들도 하나 둘 덧붙여가다 보면 가장 우리 동네를 닮은 사랑방 하나가 탄생할 것 같다. 


실제로 나와 남편은 동네 산책을 하면서 임대가 나온 가게가 있으면 둘러보기도 한다.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찾아가보진 않지만, 어디쯤 위치하면 좋을지, 평수와 층수는 어떤 게 좋은지 따져보고 있다. 아직은 그리고 있는 책방의 모습이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하다. 형태가 나타날 때까지 돌을 깨고 다듬는 심정으로 구체화시켜볼 생각이다. 때마침 남편도 퇴사를 하게 되어 우리는 한 공간 안에서 각자의 꿈을 실현할 방안을 함께 찾고 있다. 

책방, 카페, 펍, 굿즈샵, 출판사, 디자인 스튜디오를 겸한 복합문화공간(멀티플렉스?)이면 좋겠는데, 너무 거창한가. 일단 시작하고 보면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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