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8.금
봄바람이 한층 따뜻한 기운을 퍼트리고 있다.
올해는 봄이 늦다. 3월 말이면 피기 시작하던 벚꽃은 오늘에서야 조금씩 꽃이 번지기 시작했다.
겨울이 유독 긴 것처럼 느껴진 건 느낌 탓이 아니라 실제로 길었던 것이다. 4월 초가 되어도 털옷을 입고 가게 안에서 움츠린 채 덜덜 떨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손님은 3월에 치워버린 난로를 찾기도 했다.
겨울에 책방을 열고, 벽걸이 난방기와 예쁘기만 하고 별로 따뜻하지 않았던 난로로 버틴 시간들. 손님이 들어차면 그래도 공기가 덥혀져서 괜찮았는데, 손님이 없어 적막한 공간은 한기가 한층 냉랭해졌다. 봄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책방에는 출입문과 기둥을 제외하고는 전면 폴딩도어로 되어있다. 폴딩도어를 포개어 열어젖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것들이 들어온다. 자동차 소리,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봄바람, 흙먼지, 무료한 오후의 햇살...
첫 손님이 오셔서 <사랑의 생애>와 <영화와 시>를 사시고 라떼를 주문하셨다. 테이블에 앉아서 책 읽기에 골몰하셨다. 책을 사서 음료를 시키고 책방에서 오랫동안 책을 보며 머물다 가시는 손님이 제일 예쁘다. 매출의 문제가 아니라 책방에서 제공하는 공간과 물건과 서비스를 온전히 누리고 활용해주시는 분이라 그렇다. 오늘 자몽에이드를 만들어야겠다고 하던 차여서, 에이드를 만들어 먹어보고, 한 잔을 더 만들어 시음하라고 드렸다. 맛을 보고 피드백을 달라고 하고선 다른 일에 몰두했다. 한참 뒤에 노트에서 뜯어낸 종이에 빼곡히 음료에 대한 평인듯, 편지인듯 그 모든 것인 그런 글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알고보니 한강 건너 하남에서 버스를 타고 놀러오신 거였다. 간혹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멀리서 오시거나 지나는 길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신다. 서울 서점들이야 흔한 일이지만, 덕소 하고도 외곽으로 나가는 끄트머리, 하고도 모퉁이에 있는 우리 가게는 그런 손님들이 신기하고 고맙다.
그 다음에 오신 손님도 차를 끌고 책방 나들이를 오신 커플이다. 음료도 시키고 책도 사시는 그런 좋은 분들.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네이버에서 책방을 검색해 책방 데이트를 오신 것 같다.
책을 주문하셨던 단골 손님들이 들러서 책을 찾아가시거나 인스타 피드에 올렸던 책을 찾아 사가시거나 그렇게 드문드문 손님이 왔다 갔다.
저녁에는 심야책방 4월 프로그램을 위한 회의가 있었다. 팟캐스트 프로인 <퇴근하고 뭐할래> 진행자 둘과 유튜부 촬영 기술 고문해줄 지인 한 명, 브라질에 주재원으로 나갔다가 들어와서 오랜만에 얼굴보러 온 남편 지인 (사실 모두 남편 지인이다) 이렇게 6명이서 모여서 1시간 가량 회의했다. 6명만 모여 앉아도 책방은 꽉 찬 느낌이다. 책방이 이렇게 모임이든, 손님이든, 지인이든 사람들로 북적댔으면 좋겠다. 책을 전시한 갤러리도 아니고, 데려갈 주인을 기다리는 책만 빼곡한 이 공간이 때론 그 역할을 다 못한다는 자괴감이 든다.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한 책방이 되길 늘 기대하고 있다.
주말에 일을 하지만 금요일은 왠지 기분이 좋다. 매출은 안 좋지만 기분은 좋다.
혼자의 시간, 한산한 책방, 이렇게 시작하자마자 망하는 걸까 하는 두려움 들을 조금씩 떨쳐내는 방법을 매일 조금씩 연마하고 있다. 책이 잘 팔리면 방심했을 것이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흡족하면서 현상유지만 하려고 했을 것이다. 손님이 별로 없는 때 책방의 정체성 만들기와 생존에 대한 모색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