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은 전 세계 여성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암이자, 여전히 정복하기 어려운 복잡한 질병입니다. 치료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재발과 약물 내성은 큰 숙제로 남아있는데요.
오늘은 유방암의 종류와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열쇠로 떠오르고 있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과 '에피드러그(Epidrug)'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해 드립니다.
유방암이 치료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암세포가 모두 똑같지 않고 매우 다양하기 때문입니다(이질성). 유방암은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뉩니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HR+): 에스트로겐(ER)이나 프로게스테론(PR)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 호르몬을 먹고 자라는 암입니다. 호르몬 차단제로 치료 효과가 좋은 편입니다.
HER2 양성(HER2+): 특정 성장 인자(HER2)가 과도하게 많아 암이 빠르게 자라고 공격적입니다.
삼중 음성 유방암(TNBC):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HER2 수용체가 모두 없는 암입니다. 공격할 표적(수용체)이 없어 기존의 호르몬 치료나 표적 치료가 잘 듣지 않는 가장 까다로운 유형입니다.
현재는 수술, 방사선, 항암제 등을 섞어서 치료합니다. 생존율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심한 부작용
다제 내성: 암세포가 약물에 버티는 힘을 가짐
전이: 다른 장기로 암이 퍼짐
도대체 왜 암세포는 죽지 않고 내성을 가질까요? 암세포가 단순히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만이 아니라, '유전자 스위치'가 고장 났기 때문(후성유전학적 변화)입니다.
유전자의 염기서열(DNA) 자체가 변하지 않아도,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스위치(메틸화, 히스톤 변형 등)가 잘못되면 암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고장 난 스위치'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는 약물이 바로 에피드러그(Epidrug)입니다. 이미 혈액암 치료에는 쓰이고 있는데, 이제 유방암 같은 고형암 치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에피드러그가 기대되는 이유:
내성 극복: 약발이 듣지 않던 암세포를 다시 치료제에 반응하도록 민감하게 만듭니다.
암 줄기세포(CSC) 사멸: 암의 재발과 전이의 씨앗이 되는 '암 줄기세포'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유전성 유방암(BRCA 변이 등)은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며 , 나머지 대다수는 DNA 염기서열 자체가 아닌 유전자의 작동 방식이 변하는 '후성유전학적 변형'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컴퓨터 하드웨어(DNA)는 멀쩡한데 소프트웨어(유전자 발현 조절)에 오류가 생겨 엉뚱한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아서, DNA 메틸화나 히스톤 변형 등을 통해 세포의 성장과 분화 조절을 망가뜨리고 암을 유발합니다.
다행히 이러한 변화는 암 초기 단계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조기 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로 활용되거나, 고장 난 소프트웨어를 고치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핵심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DNA 메틸화는 유방암의 발병 및 진행에 있어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암세포는 생존과 증식을 위해 유전체 내 위치(Locus)와 기능에 따라 메틸화 패턴을 정교하게 변화시키며, 그 기준은 주로 '프로모터 영역의 억제(과메틸화)'와 '유전체 전반 및 반복 서열의 불안정화(저메틸화)'로 나뉩니다.
암세포에서 과메틸화가 발생하는 주요 기준은 유전자 프로모터(Promoter) 영역, 특히 CpG 섬(CpG Islands)입니다.
기전 (Mechanism): DNA 메틸전이효소(DNMTs)가 프로모터 서열의 시토신(Cytosine) 5번 탄소 위치에 메틸기를 공유 결합시킵니다. 이 메틸화는 전사 인자(Transcription Factor)가 DNA에 결합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방해하여 유전자 발현을 차단(Silencing)합니다. 구체적 사례: 에스트로겐 수용체(ERα)의 발현 억제 과정에서, ZEB1/DNMT3B/HDAC1 복합체가 ESR1 프로모터에 결합하여 과메틸화를 유도하고 전사를 억제하는 기전이 밝혀졌습니다.
표적 및 영향: 주로 BRCA1, APC, CDH1(E-cadherin), CCND2, CTNNB1과 같은 종양 억제 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s)가 타깃이 되어 불활성화됩니다. 예를 들어, CDH1의 과메틸화는 E-cadherin 발현을 감소시켜 상피-간엽 전이(EMT)와 암세포의 침습성을 촉진합니다.
저메틸화의 기준은 특정 유전자보다는 유전체 전반(Global genome) 또는 정상 세포에서 억제되어야 할 반복 서열(Repetitive sequences)에 집중됩니다.
기전 (Mechanism): 유방암 조직은 정상 조직 대비 5-메틸시토신(5-methylcytosine) 함량이 최대 50%까지 감소하는 전역적 저메틸화 현상을 보입니다. 메틸기 제거는 염색체 구조를 느슨하게 만들어, 평소에는 침묵되어야 할 이동성 유전 인자(Transposable elements)나 암 유발 유전자의 전사를 활성화시킵니다.
표적 및 영향: 반복 서열: LINEs(Long Interspersed Nuclear Elements)와 같은 레트로트랜스포존이나 위성 DNA(Sat2, Sat α)의 저메틸화는 유전체 불안정성을 야기합니다. 암 유발 유전자 (Oncogenes): uPA(전이 관련), SNCG, MDR1(다제 내성 유전자) 등의 프로모터가 저메틸화되어 과발현됨으로써 암의 진행과 약물 내성을 유도합니다. 또한 SHH 유전자의 저메틸화는 Hedgehog 신호 경로를 활성화하여 암 줄기세포의 자가 재생을 돕습니다.
또 다른 핵심적인 후성유전학적 기전은 유전체의 약 62~75%를 구성하는 비암호화 RNA(ncRNA)의 기능입니다.
중요한 ncRNA 중 하나인 miRNA의 조절 장애는 유방암을 포함한 다인자 질환의 발생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 miRNA는 표적 mRNA에 부착하여 번역을 제한하는 짧은(18~22 뉴클레오타이드) 내인성 단일 가닥 RNA 분자입니다.
비정상적인 miRNA 활동은 유방암의 발병 및 진행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 전이성 유방암은 miR-21과 miR-155의 과발현과 관련이 있습니다.
2) 마찬가지로, miR-1307-3p, miR-940, miR-340-3p의 발현 수준이 높은 환자들은 전체 생존율이 감소하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3) 또한, miR-497은 사이클린 E1(cyclin E1)의 발현을 억제함으로써 유방암 세포의 성장과 침습을 조절합니다.
200 뉴클레오타이드에서 100 킬로베이스 길이에 이르는 또 다른 중요한 비암호화 RNA 종류인 lncRNA는 DNA, RNA, 단백질과 상호작용하여 다양한 수준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
lncRNA 조절 활동의 장애는 유방암의 발달과 확산을 촉진합니다.
예를 들어, 1) 성장 정지 특이적 5(GAS5)는 유방암에서 매우 하향 조절되어 있으며 여러 종양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합니다.
2) GAS5는 미토콘드리아 신호 전달 경로 및 세포 사멸 수용체와 같은 다양한 경로를 이용하여 유방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PI3K/AKT/mTOR, NF-κB, Wnt/β-catenin 경로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 또 다른 중요한 lncRNA인 전이 연관 폐 선암종 전사체 1(MALAT1)은 여러 유형의 유방암에서 비정상적으로 발현되어 전이와 불량한 예후를 강화합니다.
히스톤은 필수적인 DNA 포장 단백질로서 크로마틴 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히스톤 단백질(H2A, H2B, H3, H4)은 147bp의 DNA 주위에 옥타머를 감싸 뉴클레오솜을 생성하는 것을 돕습니다. 히스톤의 번역 후 변형(PTM)은 크로마틴 상태의 변화를 일으켜 결과적으로 유전자 발현 조절로 이어집니다.
히스톤 꼬리의 아미노 말단과 카르복시 말단의 특정 잔기는 아세틸화, 인산화, 메틸화, 수모일화, 유비퀴틴화, ADP-리보실화, 당화, 카르보닐화를 포함한 여러 변형을 겪습니다. 히스톤 아세틸기전이효소(HATs), 히스톤 탈아세틸화효소(HDACs), 히스톤 메틸기전이효소(HMTs), 히스톤 탈메틸화효소(HDMs)와 같은 다양한 효소가 이러한 변형을 촉매합니다.
쉽게 말해, DNA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 실패에 감겨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 포장이 느슨하냐 단단하냐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달라집니다.
히스톤 메틸화 효소 (EZH2 등): 유방암에서 EZH2가 과도하게 많아지면 유전자를 꽁꽁 묶어버려(전사 침묵),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이동하는 성질(EMT)을 갖게 만듭니다.
히스톤 탈메틸화 효소 (KDM4 패밀리): 유방암 유형에 따라 다르게 작동합니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에서는 KDM4B가, 삼중 음성 유방암(TNBC)에서는 KDM4C가 암의 성장과 전이를 돕습니다.
여성의 주요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생식 성숙, 뼈 성장, 에너지 항상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에스트로겐의 5가지 주요 아형은 에스트론(E1), 17β-에스트라디올(E2), 에스트리올(E3), 에스테트롤(E4), 에스트론-황산염(E1s)입니다.
이 중 E1과 E2가 체내 에스트로겐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또한, E1은 주로 에스트로겐 저장소 역할을 하며 생리적으로 더 활성 형태인 E2로 가역적으로 전환됩니다. 반면 E3와 E4는 임신 중에만 발견되며, E3가 가장 널리 분포합니다.
에스트로겐의 작용은 주로 두 가지 유형의 세포 내 에스트로겐 수용체(ER), 즉 각각 ESR1과 ESR2 유전자에 의해 암호화되는 ERα와 ERβ를 통해 촉진됩니다.
유방 종양의 약 75%를 차지하는 ERα 양성 아형은 호르몬 요법에 대한 감수성으로 인해 더 나은 예후를 보입니다. 반대로, ERα 음성 아형에서는 불량한 예후와 공격적인 종양 성장이 관찰됩니다.
ERα 프로모터의 비정상적인 메틸화를 통한 후성유전학적 침묵(silencing)은 ERα 발현 억제에 연루된 하나의 기전입니다. ESR1 프로모터에 ZEB1/DNMT3B/HDAC1 복합체가 모집되면 ESR1의 과메틸화가 촉진됩니다. 마찬가지로, 히스톤 탈아세틸화의 증가는 뉴클레오솜 구조의 응축을 유도하여 ESR1전사를 억제합니다.
E2가 결합하면 ERα 단량체의 이량체화(dimerization)가 일어나며, 이는 핵으로 이동하여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 인자로 작용합니다. E2-ERα 이량체는 ATP 의존적 크로마틴 리모델링 복합체(SWI/SNF)와 p300, p160, CREB-결합 단백질(CBP), p300/CBP-연관 인자(pCAF)를 포함한 히스톤 아세틸기전이효소(HAT)들을 에스트로겐 반응성 프로모터로 모집합니다. 결국 이는 유방암 세포 증식을 촉진하고 종양 성장을 돕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ER 발현을 억제하는 miRNA의 중요한 역할을 입증했습니다. 예를 들어, miR-221과 miR-222의 과발현은 ER$α의 전사 후 억제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miR-221과 miR-222는 PTEN, CDKN1B, CDKN1C, BIM, TIMP3, FOXO3 등 여러 종양 억제 유전자의 발현 하향 조절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에스트로겐 독립적인 무절제한 증식을 유도합니다.
어려우시죠?! 좀더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유방암 환자분들이라면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뼈 건강과 에너지 대사에 필수적이지만, 유방암세포에는 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치료의 열쇠, 에스트로겐 수용체(ER): 암세포에 이 수용체가 있으면(ER 양성), 우리는 호르몬 차단제를 써서 암을 굶겨 죽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후가 좋은 편이죠.
후성유전학의 훼방: 그런데 후성유전학적 변형이 이 수용체라는 '문'을 아예 없애버리기도 합니다. 수용체 숨기기 (ER 침묵): ZEB1/DNMT3B/HDAC1이라는 단백질 복합체가 유전자 프로모터에 달라붙어 과메틸화를 일으키면, 에스트로겐 수용체(ERα)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호르몬 치료제가 듣지 않는, 더 독한 암(ER 음성)이 됩니다. 나쁜 짝꿍들 (miRNA): miR-221이나 miR-222 같은 작은 RNA들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수용체 생성을 방해하고 PTEN 같은 암 억제 유전자까지 없애버려 암이 미친 듯이 자라게 만듭니다.
즉, 후성유전학적 이상은 치료가 잘 듣는 '순한 암'을 치료가 어려운 '독한 암'으로 바꾸는 스위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후성유전학 연구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암세포가 무서운 이유는 가만히 있지 않고 다른 장기로 이동(전이)하기 때문입니다. 얌전하던 암세포가 이동 능력을 갖춘 전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상피-간엽 전이(EMT)라고 부릅니다. EMT는 세포가 상피(epithelial) 형질을 잃고 간엽(mesenchymal) 특성을 획득하며 변형되는 세포 과정입니다. EMT는 상처 치유, 발달, 그리고 암의 진행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는 암세포의 이동성을 높이고 약물 내성, 줄기세포성, 재발 가능성을 부여합니다.
이 변신 과정 뒤에도 후성유전학적 조종자들이 숨어 있습니다. 다양한 성장 인자들(TGF-β, EGF, FGF, IGF, PDGF)이 신호 전달 경로를 작동시켜 EMT 전사 인자들(SNAIL, ZEB, TWIST)을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EMT를 조절합니다. 이러한 전사 인자(TF)들은 후성유전학적 조절자를 포함하여 전사 조절에 관여하는 다양한 단백질들과 조절 복합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암세포를 풀어주는 가위손 (E-cadherin 억제): 정상적인 세포는 E-cadherin이라는 접착제로 서로 단단히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암세포에서는 후성유전학적 효소인 G9a가 Snail이라는 단백질과 손을 잡고 이 접착제 유전자(CDH1)의 스위치를 꺼버립니다(메틸화). 결과적으로 암세포는 서로 떨어져 나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변신을 돕는 조력자들 (DOT1L): DOT1L이라는 효소는 c-Myc, p300 같은 단백질들과 어울려 다니며, 암세포가 변신(EMT)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의 스위치를 켜줍니다. 이는 암세포가 줄기세포처럼 강한 생명력을 갖게 만듭니다.
희망의 발견 (EMT 역전): 다행히 과학자들은 이 변신 과정을 되돌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TSA라는 약물은 히스톤 변형을 조절해 암세포의 변신을 막고 다시 얌전한 상태로 되돌립니다. BRD4 억제 또한 암세포의 공격성을 낮추는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즉, 암세포가 가면을 쓰고 변신하려 할 때, 후성유전학적 치료제(Epidrug)가 그 가면을 벗기고 전이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암 치료를 마쳤는데도 왜 암은 재발하고 전이되는 걸까요? 그 범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암 줄기세포(CSC)'입니다. 마치 벌집의 여왕벌처럼, 이들은 죽지 않고 숨어있다가 끊임없이 새로운 암세포를 만들어냅니다.
놀랍게도 후성유전학적 변형이 이 암 줄기세포를 만들고 보호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브레이크 고장 내기 (Wnt 신호): 암세포가 성장하려면 Wnt라는 신호가 필요한데, 정상 세포에는 이 신호를 적절히 끄는 브레이크(Wnt 억제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암 줄기세포에서는 이 억제 유전자들이 과메틸화되어 작동을 멈춥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암세포는 폭주하게 됩니다.
잠자는 야수 깨우기 (Hedgehog 신호): SHH라는 유전자는 암의 성장을 돕습니다. 평소에는 잠겨 있어야 할 이 유전자의 스위치가 저메틸화로 켜지면서, 암 줄기세포는 스스로를 계속 복제하는 능력(자가 재생)을 얻습니다.
작은 조종자들 (miRNA와 Notch/Hippo): miR-200이나 miR-520b 같은 작은 RNA들이 줄어들거나 늘어나면서 Notch나 Hippo 같은 줄기세포 관련 신호를 마음대로 조작합니다. 이로 인해 암세포는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항암제를 버텨냅니다.
결국, 유방암의 재발을 막으려면 단순히 보이는 암덩어리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후성유전학적 조절을 통해 숨어있는 암 줄기세포의 생명줄(신호 경로)을 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암 환자분들에게 가장 두려운 말 중 하나는 "더 이상 약이 듣지 않습니다(내성)"일 것입니다. 잘 듣던 타목시펜이나 항암제가 왜 갑자기 효과가 없어질까요? 그 뒤에도 후성유전학적 조작이 숨어있습니다.
타목시펜이 안 듣는 이유 (호르몬 치료 내성): 타목시펜은 에스트로겐 수용체(ER)를 막아서 암을 치료합니다. 그런데 EZH2나 LAT2A 같은 효소들이 나쁜 짓을 합니다. 이들은 수용체를 도와주는 단백질(GREB1)을 없애거나, 암 억제 유전자(p53)를 약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TET2가 사라지면 수용체(ER$\alpha$) 자체가 줄어들어 약이 공격할 표적이 사라지게 됩니다.
일반 항암제가 안 듣는 이유 (화학요법 내성): LSD1과 KDM4A라는 효소는 암 줄기세포를 튼튼하게(자가 재생) 만들고, 암세포의 변신(EMT)을 도와 독한 항암제 공격에도 살아남게 만듭니다. KDM5A는 생존 신호 경로(PI3K/AKT/mTOR)를 강제로 켜서 암세포가 죽지 않게 버티게 합니다.
희망적인 소식 (내성 극복): 반대로 PAD4라는 효소가 많아지면 암세포가 다시 약물(아드리아마이신)에 약해져서 잘 죽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결국, 내성을 유발하는 나쁜 효소들을 억제하고 좋은 효소를 활성화하는 **'에피드러그'**를 함께 사용한다면, 무용지물이 되었던 항암제를 다시 강력한 무기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방암 치료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전략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암세포가 후성유전학적 조작(메틸화, 히스톤 변형 등)을 통해 끈질기게 살아남는다면, 우리에게는 이를 다시 되돌릴 무기가 필요합니다. 그 무기가 바로 '에피드러그(Epidrug)'입니다.
이 약물들은 암세포가 켜고 끈 유전자 스위치를 정상으로 '교정'하여 암을 치료합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에피드러그도 점점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5.1 에피드러그의 세대교체
1세대 (초창기 모델): 효과는 있었지만 부작용이 크고 몸에 잘 흡수되지 않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예: 초기 DNMT, HDAC 억제제)
2세대 (개량형 모델): 1세대의 단점을 보완해 약효는 오래가고(긴 반감기), 독성은 줄여 환자의 부담을 덜었습니다.
3세대 (정밀 타격 모델): 현재 가장 주목받는 단계로, 후성유전학적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나눠서 공략합니다.
5.2 유전자를 읽고, 쓰고, 지우다 (Writer, Eraser, Reader) 3세대 에피드러그는 효소의 역할에 따라 마치 문서를 편집하듯 정교하게 작용합니다.
작성자 (Writers) 표적: DNA나 히스톤에 화학적 꼬리표(메틸기, 아세틸기)를 붙이는 효소를 막습니다.
지우개 (Erasers) 표적: 붙어있는 꼬리표를 떼어내는 효소를 막습니다.
판독자 (Readers) 표적: 꼬리표를 인식하고 결합하는 과정을 방해합니다.
결국 에피드러그는 암세포가 제멋대로 쓴 '암 발생 주문서'를 수정액으로 지우거나, 아예 펜을 뺏어버리는 방식으로 암을 무력화시키는 최신 치료 전략입니다.
참고논문 Sarkar, S., Venkatesh, D., Kandasamy, T., & Ghosh, S. S. (2024). Epigenetic Modulations in Breast Cancer: An Emerging Paradigm in Therapeutic Implications. Frontiers in Bioscience-Landmark, 29(8), 287. https://doi.org/10.31083/j.fb12908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