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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보다 몸이 먼저다.

감정과 몸의 신호: 트라우마와 신체 반응

by Mia 이미아

나는 몸의 신호를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바로 ‘감정-신체 기록법’이다.
이 기록법은 트라우마로 인한 신체 반응을 관찰하고, 감정과 몸의 변화를 연결해 이해하는 과정이다.




한국 사회에는 오랫동안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구호가 자리해 왔다. 군사 정권 시절, 이 말은 효율적인 사회 통제의 장치로 쓰였다. 신체적 강인함이 곧 도덕성과 애국심의 증거로 여겨졌고, 그 결과 신체적 약자는 노력 부족으로 낙인찍혔다. 정신 건강 문제는 터부시되었으며, 약자 혐오와 자기 탓하기가 문화 속에 뿌리내렸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다”는 전혀 다른 의미다. 이는 정신보다 신체를 우위에 두자는 구호가 아니라, 트라우마 상황에서 실제로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즉, 육체가 정신의 선행 조건이라는 국가적 통제 논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생존 위기 상황에서는 몸이 본능적으로 먼저 반응한다는 생리적 진실을 말한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쪽은 약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했지만, 다른 한쪽은 약자의 경험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한다. 트라우마는 단지 마음속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몸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기고, 때로는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신호를 보낸다.


나르시시스트 양육자의 가족 안에서 자란 내 몸은 늘 경계 상태였다. 가슴이 이유 없이 두근거리고, 갑작스러운 소리에 온몸이 굳어버리거나, 작은 자극에도 숨이 가빠졌다. 때로는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고, 몸 전체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반응은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뇌와 자율신경계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생존 반응이었다.


이 반응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감정-신체 기록법’을 만들었다. 하루를 돌아보며 특정 감정을 느낀 순간과 그때의 신체 반응을 간단히 기록하는 것이다. 감정과 몸의 변화를 나란히 적다 보면, 내 몸이 감정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기록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고 회복하는 출발점이었다. ‘내 몸이 왜 이런 반응을 하는지’를 알게 되면 불필요한 자책이 줄고, 대응 방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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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신체 기록을 꾸준히 이어가는 방법


1. 시간대를 나누어 기록하기: 하루를 아침, 낮, 저녁으로 나누어 각 시간대의 대표 감정과 신체 반응을 기록한다. 하루 세 번, 부담 없이 적을 수 있다.


2. 선택형으로 단순화: 감정은 불안·분노·억울함·무기력 등에서 하나를 고르고, 신체 반응은 두통·어지럼·피로·근육통 등 12개 중 선택한다. 강도는 0~10 숫자로 기록한다.


3. 한 줄 메모 추가: 감정과 신체 반응을 촉발한 상황을 간단히 적는다. 예: “회의 중 상사의 부정적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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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가족에게서 벗어난 가스라이팅 생존자. 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나가는 과정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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