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Tarlov Cyst
척수 낭종이라는 진단명을 처음 들었을 때, 의료진은 “보통 증상이 없기 때문에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거나 “증상과 꼭 연결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게는 오래전부터 통증, 어지럼, 저림 같은 신호들이 반복적으로 찾아왔고, 그것이 단순한 예민함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MRI 화면 속 낯선 하얀 그림자를 가리키며 의사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증상이 없으면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나는 걷기 힘들 정도의 통증을 호소했지만, 내 말은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내가 잘못 전달한 걸까, 내가 과민한 걸까. 버릇처럼 자책이 이어졌지만 내 골반과 다리에 퍼지는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힘든 통증은 결코 예민함이 아니었다. 의사의 말과 내 몸의 경험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때부터 나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상들과 함께 살아왔다. 윗몸일으키기를 단 몇 회만 해도 척추를 따라 허리가 타들어 가듯 뜨거웠고, 정형외과적 문제가 없었는데도 허리와 골반, 다리에 통증이 퍼졌다. 발끝이 감각을 잃은 듯 무뎌질 때도 있었고, 발목 통증으로 절뚝거릴 때도 많았다. 지금은 서 있거나 걷는 시간이 5~10분을 넘기기 어렵다. 앉아 있는 것도 한 시간이 한계다. 그 이상이 되면 허리 통증과 함께 배뇨·배변 신호가 잦아져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한다.
MRI 결과를 받았을 때, 퍼즐 조각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은 듯했지만 동시에 “증상이 낭종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사의 한마디는 모든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그렇다면 이 고통은 무엇 때문이란 말일까? 정작 거기에 대한 답은 없었다.
어느 대학병원의 척추 전문의는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진 작은 화면의 내 MRI 사진 한 장을 흘끗 본 뒤 말했다.
“척수낭종은 대부분 증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 년이 넘게 너무 아프고, 걷기가 힘들어서…”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그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진료해야 할 ‘환자’가 아니라 ‘증상 목록에서 제외된 귀찮은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진료실 문을 나서며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고통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이 없다고 단정 지어지는 순간의 모멸감은 내 안에 차갑고 아프게 박혔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기록자가 되었다. 단순히 “아프다”라는 말로는 내 몸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인 기록 방식을 만들었다. 통증을 수치화하고, 발생한 상황과 함께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 기상 직후 통증 부위와 정도, 체온·혈압 측정.
낮: 1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통증 강도와 저림 기록.
저녁: 활동량이 많았던 날엔 통증이 가라앉는 데 걸린 시간 기록.
특히 체위 변화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는 혈압이 130대였지만, 일어나 화장대 앞에서 단 3분을 버티면 150 가까이 뛰었다(이는 자율신경계 이상을 시사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내 몸이 보내는 명확한 언어였고, 나의 몸이 내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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