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의 레이스를 시작한다. 숨을 쉬고 먹는 일에서 출발해,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는 본능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의미를 찾는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내게 생존은 이러한 단계를 밟아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생존은 단지 생명이 유지되는 상태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제도 속에서,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반복해서 상처를 입으면, 생존은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과정으로 변한다. 내게 생존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억눌리고 강요된 선택의 연속이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생존을 하고 있었다. 내 몸은 늘 신호를 보냈다. 어린 시절의 잦은 통증과 피로, 이유 없는 어지럼증과 미열. 부모가 마지못해 병원에 데려가도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고, 그저 예민하다는 말로 정리되었다. 나의 몸은 설명되지 않았고, 그것은 곧 나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취약한 몸은 언제나 설명되지 않는 신호를 보냈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피로, 반복되는 통증, 일반적인 기준으로 설명되지 않을 만큼 쉽게 지치는 체력. 병원을 찾아도 뚜렷한 답은 들을 수 없었고, “예민해서 그렇다”는 말로 상황은 덮였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나의 몸은 늘 의문으로 남았다. 나는 반농반진으로 '나는 일 년 중에 360일 동안 감기에 걸린다'라고 말하곤 했다.
치료받지 못한 취약함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 약함은 내 삶에서 또 다른 통제의 빌미였다. 아프다는 말은 나의 잘못이 되었고, 아픈 아이는 더 조용히 지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졌다. 아파도 웃어야 했고, 무엇이든 잘해야 했다. 그렇게 약하다는 사실은 학대를 더 교묘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단순히 생명을 이어가는 일이 아니었다. 고통을 감추고,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아무 일 없는 듯 살아내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으로 바뀌었다. 살아 있으니 더 잘해야 하고, 아픔과 부당한 일에는 조용해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것이 나를 옥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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