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수용, 존재의 인식
오늘도 몸은 신호를 보낸다. 이유 없이 체온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은 밤과 새벽을 깨운다. 허리와 골반, 다리로 내려가는 통증은 내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때때로 어지럼이 불쑥 나를 멈춰 세운다. 병원 진료실에서는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라는 말이 반복되고, 결과지를 들고 나오는 길에 나는 늘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지금 이 통증과 고통은 누구의 언어일까.”
한때는 이 신호들을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여겼다. 붙잡히지 않는 원인을 좇으며 더 나은 설명을 기다렸다. 그러나 오래 기록하고, 다시 읽고, 내 몸의 순서를 관찰하면서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통증은 사라져야 할 적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을 증언하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외면한 순간마다 더 크게 되돌아온, 내 존재의 오래된 기록.
나는 선천적 취약함 위에 트라우마가 겹쳐진 삶을 지나왔다. 설명되지 않는 증상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졌고, ‘조용히 있어라’는 명령은 감정과 감각을 침묵 속에 가두었다.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 단절을 증명할 방법을 상상만 했을 뿐인데 심장이 쪼그라들고 식은땀이 났던 날, 나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선명하게 알았다. 폭력이 끝났어도, 몸은 끝나지 않은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몸은 아직 아프다. 그러나 오늘의 문장은 ‘여전히 아프지만’에서 멈추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까지 이어진다. 증상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정도로만 나를 판단하지 않을 때, 나는 고통과 별개로 존재한다. 회복이 하나의 상태라면, 존재는 그 상태들 사이를 이어주는 감각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나를 놓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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