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김혜순의 말』, 김혜순, 황인찬 인터뷰, 마음산책, 2023
문학이 이 시대의 갖는 정의는 무엇일까.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주고 받은 대화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결론적으로 문학, 예술, 글쓰기, 시에 대해 탐구하며 독자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끝까지 ‘시’가 무엇인지 정의내리지 않는다. 거진 3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의 내용 속에는 시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으로만 가득찼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주제는 더욱 뚜렷해진다. 그 정의내릴 수 없는 ‘시’라는 것이 하나의 ‘질문’이고, ‘움직임’이며, 따라서 ‘써나가는 것 자체가 ‘생성’인 장르’(121)가 된다는 결론이 확고해지는 것이다. 특히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문학의 정의가 더 잘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질문을 통해 대답, 혹은 그 대답 이상의 어떤 의미가 생성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의 가장 앞 부분에 시인 자신의 손글씨로 적혀 있듯, ‘문학은 질문이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한 챕터는, 몸과 죽음을 통해 ‘시’를 들여다본 첫번째 장이었다. 흔히 ‘시’를 떠올리면, 활자를 통해 우리의 머리로만 소화되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렇게 내 머리 위에만 둥둥 떠 있을 것 같은 시를, 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지상 위로 끌어내린다. 우리가 땅에 맨 발을 디딜 때 조그마한 돌에도 통증을 느끼듯, 혹은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마음에 통증을 느끼듯, 시인은 우리가 시를 통해 ‘감각’할 수 있다 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아프고 절절한 감각과 통증은 곧 우리가 ‘실감’을 통해 ‘타자화’를 하고, 그 타자화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83)
타자화. 그것은 나의 발견으로 다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강한 고통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실감하게 하듯이,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림으로써 나의 고통 또한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아닌지요. (86)
그는 ‘나’라는 존재가 단수이기도 하지만 복수이기도 하다(78)고 말하며, 감각을 통해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감각이 아픔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곧, 시인이 말하는 ‘죽음’이라는 주제와도 직결된다. 사실 통상적으로 나의 죽음, 타인의 죽음,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 죽음은 언제나 ‘사는 것’의 가장 대척점에 위치하여 모든 사람이 물리치고 맞서 싸워야 할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나갈 것’ (94)이라며 ‘살면서 앓는 것’(94)이라 표현한다. ‘몸의 괴로움’이라는 뜻을 가진 ‘앓다’는 표현은 곧 그가 말하는 감각을 통해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후 김혜순 시인은 모성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은유와 상징이 실은 이를 부추긴 원인이라 말한다. 어머니의 모성을 강조하며 오히려 여자들이 ‘여자처럼’ 살아야 하고, 자라서는 어머니 노릇을 해야 하고, 주부가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죄의식에 빠지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108) 그러면서 오히려 한 편의 시는 자신 안의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 있고, 그 ‘어머니하기’를 실현하는 것(111)을 강조했다. 이 부분을 언급하는 이유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문학의 정의를 개인적으로 가장 생생하게 ‘감각할 수 있었던’ 챕터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개념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문학과 예술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무디게,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들에 물음표를 한 번 던져주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