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단순노동을 통해 노동의 의미를 상기하고, 공동체와 협력, 인내와 끈기의 힘을 상기할 수 있는 시집이다. 원제는 ‘Winter Recipes from the Collective’인데, ‘Collective’라는 단어가 단순히 ‘집단’으로 번역되지 않고, ‘협동 농장’으로 번역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집에 수록된 시 중 하나인,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은 해마다 겨울이 오면 노인들이 숲으로 가서 힘든 겨울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겨운 상황 속에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어떻게 이기는지, 그리고 죽음이 임박한 그들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인지, 또 삶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따라서 ‘협동’이라는 단어가 원제에 포함되어 있는 건, 아무래도 그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집단과 공동이라는 키워드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표제작을 포함하여 총 18개의 시가 실려있는 이 시집은, 겨울 끝에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면서 읽기 딱 좋다.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 함은 우리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겨울이 올 때마다 숲에서 이끼를 모으는 노인들.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속 에서 노인들은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노동을 통해 어떤 의미를 실천한다. ‘카드 위에 한자로 일의 순서가 씌어져 있었다 / 번역하자면, 같은 순서로 같은 일을 할 것’ (23) 이라며, 판매용 샌드위치를 포장하는 곳의 문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때, 여기서 ‘같은 순서로 같은 일’이란, 노인들의 단순 작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들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내 생명이 으스러지는 자리를 응시하면서도 우리는 다만 한다. 같은 일을 같은 순서로’(23) 라며, 죽기 직전까지 해야 할 일들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노인들의 노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부와 명예, 성공과 같은 기준을 향한 노동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면 노동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다. 특히나 시 속의 계절이 사계절 중 마지막 절기인 겨울인 점, 그리고 모든 생명이 잠시 잠에 들어 다가올 봄을 준비한다는 계절의 특성은 이를 더욱 부각시킨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적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해내는 노인들. 숲에서 이끼를 모으며 순서가 정해진 단순 노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했을 때, 추위와 결핍의 계절인 겨울을 비로소 버텨내고 이겨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협동농장’은 또 다른 봄을 비로소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루이즈 글릭의 또 다른 시 <눈풀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시였다. 두 시 모두 ‘겨울’이라는 척박한 조건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눈풀꽃>에서는 <협동농장의 겨울요리법>처럼 겨울의 매서운 바람, 척박한 조건이 배경으로 주어지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조건과 상황을 이겨내고 비로소 고개를 드는 눈풀꽃의 모습은 또한 회복과 삶에 대한 의미를 그려내고 있다. 절망,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우울한 생각들 속에서 눈풀꽃은 토지를 바라보면서라도 기어이 피어나는 것이다. <협동농장의 겨울요리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 시에서는 ‘협동’농장이라는 점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인들은 혼자 힘만으로 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수 없다. ‘그래도 친구 모습이 나를 지탱해주었다(26)’는 시구처럼, 함께 이 겨울을 살아내고 또 삶을 살아간 것이다.
먹을 게 없어서 먹어야만 했던 ‘고난의 빵’(19)도 ‘“상쾌한 겨울 샌드위치”’(19)라 불리는 곳. 노동을 통해 외로움과 고통을 잊는 그 곳. 작은 나무들을 잘 돌보면서 스스로를 잘 돌보아야 하는 곳. 협동 농장은 그런 곳이다. 그리고 시인은 우리에게도 노동이 갖는 의미, 그리고 생존을 가능케 하는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참을성’을 가지고 매일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는 ‘노인들의 노동’은 그래서 의미있다. ‘어둠의 달’(19)이기도 한 12월이 회복과 초월의 힘을 상징하게 되기 떄문이다. 그리고 시의 말처럼 ‘인생이 어려운 때. 봄에는, / 누구나 근사한 식사를 만들 수 있다.’ (19)
머리로는 알고 이야기인데 마음으로 실천하기 어렵다면, 마음을 움직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 부모님에게 잔소리 듣는 것들, 모두 중요한 이야기인데 우리가 마음을 닫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이야기들을 속삭여주는 일.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고, 영혼에 저장하는 일 말이다. 그래서 힘이 들 때마다 이 시가 내게 떠올랐으면 좋겠다. 겨울 요리법 책처럼 겨울이 될 때마다 들여다볼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