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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경 May 24. 2024

딸기 따러 가자

『딸기 따러 가자』, 정은귀 지음, 마음산책, 2022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면 불안한 마음부터 들었습니다. ‘나 어떻게 살지?’라는 고민과 24시간을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꽤나 길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오며 나름대로 불안을 잠재우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마음의 크기는 줄어들었다가도 더 커졌다가 하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불안에 관한 시집, ‘딸기 따러 가자’는 제게 오래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감기약 같은 책이 되었습니다. 불안에 완전한 면역이 생길리 없겠지만 너무 마음이 아파 처방전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을 수 있게 말입니다. 작년 겨울에 처음으로 읽어보았었는데, 역시 책은 다시 읽는 묘미가 있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 읽으면서는 저는 ‘딸기 따러 가자’는 핵심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책에는 인디언 (first american)들의 열 두달이 그들의 언어와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딸기 따러 가자'는 에세이에 소개된 인디언 시 중 하나인데,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해요. 시 속에서 할머니는 종종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을 것 같을 때, 낙심하고 주저앉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는 양동이 하나 챙긴 다음,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반, 온 식구를 깨우고는 이렇게 말합니다."딸기 따러 가자"고. 


"딸기 따러 가자." 그 마법의 말에 모두 새로운 하루를 열고 새로운 길을 찾는 거지요. 제게 있어 그런 마법의 말이 뭘까 저 역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모호크 인디언 할머니의 “딸기 따러 가자”는 한 마디는 사실 루이스 하이드가 그의 책 『선물』과 같은 전제를 품고 있습니다. 하이드 역시 ‘인디언식 증여자(Indian Giver)’라는 개념을 통해 회복하고 상생하는 공동체를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집은 그래서 하이드가 제시하는 인디언식 선물의 개념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지침서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첫번째로, 여기서 딸기를 따러가는 행위의 의미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독자들 중 아무도 할머니가 가족의 부와 번영을 위해 그 구성원들이 노동하도록 독촉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딸기를 따는 상황이 ‘막막하고 길을 잃은 것 같을 때’라는 상황인 점에서, 오히려 단순 노동을 통해 이들이 절망 속에서 걸어나와 함께 땀을 흘리며 시간을 보낼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눈 앞에 있는 사소한 그 일을 해내는 것이야말로, 그리고 같이 있는 것이야말로 암울한 시간을 견디고 버텨내는 비결이 아닐까요.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포스터 출처 : https://blog.naver.com/yun020100/223265041764


  두번째로, 삶이 어떠한 형태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시집의 일 년 열 두달을 모두 읽어내고 나면 삶이라는 것이 ‘직선’의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동그랗고 반복되는 형태의 ‘원형’ 혹은 ‘곡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극복한다고 이야기하면 머릿 속에는 계단을 올라가는 이미지가 그려지고, 그 피라미드 위에 올라가는 것이 곧 ‘성취’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어쩌면 막막한 현실 앞에 부딪혔을 때, 다시 오늘 하루를 살게 하는 것은 꼭대기 위에 구름이 아니라 내 손을 잡아주는 우리 가족, 친한 친구, 어쩌면 낯선 사람의 친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넘어지기만 하는 것은 내가 아니기에, 누군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고, 혹은 딸기를 따러 가자고 그 사람을 이끌어줄 수도 있고요. 마치 하이드가 선물의 ‘소비’를 설명하면서, 선물이란 소유물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고 사용하는 데에 가치가 발생하는 재산이라고 했던 개념과 비슷한 듯 합니다. 

영화 스틸샷 출처 : https://gamerant.com/everything-everywhere-all-at-once-bagel-symbolism/

  이 시점에서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운데가 뻥 뚫린 동그란 베이글이 핵심적인 메타포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이 시집의 ‘딸기 따러 가자’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합니다. 영화에서 베이글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데요. 모든 재료가 다 들어갔다는 데에서 ‘에브리띵 베이글’이라고 불려 주인공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그 베이글 속에서 상처와 좌절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초라해보이고, 그렇게 하나씩 받은 상처들이 모여 만들어진 ‘허무의 베이글.’ 너무 많은 것들이 올라가 아무 맛도 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은 깨닫습니다. 



덜 요구하고 더 이해하는 것

비난은 느리고 용서는 빠른 것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 것

불평을 떠벌리지 않는 것

진실한 마음으로 말하는 것

의심을 멈추는 것

매일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

지금이 마지막 기회임을 아는 것      

          주니 족의 말 (68)



   주니 족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하루의 평안을 누리고, 하루치 산을 잘 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애는 계속해서 좌절과 평안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나는 부족해’, ‘나만 불행해’라는 생각에 파묻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좌절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계단을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몫의 일을 하면서,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진짜 중요한 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장 오늘 하루, 지금 여기에 있음을 알고 있다면, 오늘 하루는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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