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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Oct 05. 2015

오늘은 흥얼흥얼 곡을 써야지

#11 아주 특별한 열한 번째 취미이야기_ 작곡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오래 전 일입니다. 지인으로부터 피아노 콘서트 티켓을 받아 나름 격식있게 차려입고 문을 나섰지만, 길을 헤매다 지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안내에 따라 아무도 없는 웅장한 콘서트 홀 로비를 허둥지둥 걷고 있자니, 가뜩이나 지각한데다가 장소에 맞지 않는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까지 들어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 닫힌 문 사이로 첫 번째 곡이 시작했습니다. 바이올린 현이 활에 긁히는 섬광같은 소리가 귀를 때렸고, 뒤이어 흐르는 멜로디의 떨리는 듯한 높낮이, 그 주위를 맴도는 긴장감 도는 하모니가 몸을 관통했을때, 전율이 흘렀습니다. 순식간에, 기가 죽을 정도로 차갑고 커 보였던 공간이, 샹들리에가 반짝반짝 웃음 짓고, 마론 빛깔의 음표가 가득 찬 유쾌한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날, 콘서트를 나오면서 제 가슴은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서 집에 가서 곡을 써야지!"




나만의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망은 이렇게 불쑥불쑥 솟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전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 자기 표현과 창작의 열정이 불쑥 우리를 덮칩니다. 저의 경우, 이는 나의 삶, 사상, 감정, 철학, 경험, 즉 한 단어로 말하면 내 영혼의 일부를 소름끼칠 정도로 들여다 본 듯 한 작품과 마주쳤을 때 일어나게 됩니다. 소설을 읽다가도, 내 감정이나 생각을 저자가 그대로 옮겨 말한 듯한 인상적인 구절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혹은 인생 전반에서, 그 구절이 머릿속에서 맴돌게 되지요. 영화나 그림, 연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영혼의 일부를 이해하고 있는 듯한 작품들과 만나게 되면, 우리의 뇌는 환호의 스파크를 튀기며, 기쁨과 감동으로 불타오릅니다. 이 외로운 세상, 알지 못했던 타인이 나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나를 이해하는, 나를 담은 작품과의 조우는 늘 충격적인 설렘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이어 자연스럽게, 우리는 똑같은 경험을 세상과 공유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정에 휩싸입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이런 강렬한 열정에 휩싸이게 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내게 전율을 준 작품처럼, 나도 나의 영혼을 담은 작품을 창조하여 세상에 전달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누군가가 내가 받은 전율과 감동을 똑같이 느끼고 치유받는다면, 그처럼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또 두번째 이유로는, 꼭 타인이 보지 않아도, 내게 감명을 준 작품의 저자들이 자신들의 영혼을 작품에 담아 강렬하게 표현한 것처럼, 나도 내 영혼을 담아 작품으로 소리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를 표현하고, 내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은, 언제나 긴장되지만 황홀한 순간입니다.


여러 가지 작품들 중, 특히 우리가 많은 영향을 받는 장르는 음악입니다. 나의 소울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감명깊은 음악과  적이 있다면, 구든 한번쯤 나를 표현할  있는 악을 쓰고 싶다는 열망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신 적이 있을 거에요. 현대인들은 음악으로 꽉 찬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배우던 동요부터 학교 음악 시간에 듣던 클래식 음악,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잔잔히 들려오는 음악까지, 도처에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데는 별다른 자격이 필요 없습니다. 음악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음악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쉽게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위로를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불타는 열정으로 펜을 손에 쥐었을때, 어떻게 작곡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  있습니다. 음악적 기본기가 없으시거나, 작곡을 해 본 경험이 없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신 분들이 특히 그러실 거에요. 먼저, 음악적 기본기가 없는 분들은 기초를 탄탄히 다지시는 게 우선입니다. 음표를 읽을 줄 알고, 다양한 음악 전문 용어를 알아야 이 도구들을 가지고 자유롭게 음악을 작곡할 수 있거든요. 따라서 이런 분들은 작곡을 시작하기 전, 먼저 음악책으로 악보를 보는 법과, 기본적인 음악 용어를 익히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그 다음으로, 음악적 기본기는 있지만, 막상 작곡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신 분들을 위해 작곡 시작하는 기본적인 단계를 쉽게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저도 처음 작곡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 같은게 작곡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지레 겁을 먹었지만, 학교에서 작곡 수업을 듣고, 의외로 작곡은 얼마든지 쉽고 즐거울 수 있는 작업이란 걸 깨닫게 되었답니다. 따라서 아래 설명에서는 세세하거나 전문적인 용어 및 음악적 설명은 가능한 생략하고, 작곡의 순서를 간단하게 설명하며 제목처럼 흥얼흥얼 즐겁게 곡을 쓸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드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수업에서 직접 배운 내용을 토대로 간단한 설명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작곡, 시작해 볼까?

1. 먼저, 내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생각해 보세요.

무작정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넣기 전, 내가 나의 무엇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오늘 아침에 출근하며 들었던 새소리일 수도 있고, 어제 봤던 영화 속의 한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추상적인 감정도 괜찮습니다. 어느 날 홀로 밤에 깨어 있을 때 느꼈던 어찌할 수 없이 깊은 우울함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혹은 신나는 왈츠 음악을 들었을 때의 경쾌함, 등등 주제는 가벼워도, 무거워도 되고, 구체적이어도, 추상적이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찾는 일입니다. 저는 중간고사가 끝난 후의 허무함과 슬픔, 그 안에 느껴지는 묘한 자유로움 및 고전 영화를 보고 감명받은 단조 왈츠 등의 주제를 생각했답니다. 결국 채택된 건 <중간고사가 끝난 후의 감정> 이었습니다... 당시 중간고사를 본 직후라 마음이 아팠거든요...흑.


2. 그 다음, 주 멜로디와 곡 전체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렵고, 또 가장 즐거운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창작이 시작되는 단계이자 그 곡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단계거든요. 멜로디는 리듬, 하모니와 더불어 음악의 기본 3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를때 "따라라라라라라" 하는 선율이 바로 멜로디이지요. 내가 생각한 주제를 잘 표현하는, 인상적인 멜로디를 작성해 주세요. 2마디여도, 4마디여도 되고, 단조여도, 장조여도 됩니다. 주 멜로디를 만드셨다면, 곡 전체의 분위기를 생각해 주세요. 전체적으로 느릴지 빠를지, 장조일지 단조일지, 어떤 박자일지, 웅장할지 가벼울지, 곡 길이는 어떻게 할지, 어떤 느낌으로 전개될지 곰곰히 생각하고 결정해 주세요. 제 경우에는 중간고사가 끝난 후의 자유로우면서도 허전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가벼운 단조의 멜로디가 계속해서 변주되며 반복되는 곡을 구상했답니다.


장조 멜로디의 예시


3. 생각한 곡 분위기에 따라, 전체 멜로디를 완성해 주세요.

이제 주 멜로디를 잘 받쳐 줄, 전체 멜로디를 완성해 주세요. 처음 시작하신다면, 처음부터 너무 많은 멜로디를 작곡하시는 건 많이 부담이 될거에요. 가볍게 16마디에 멜로디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시다 보면, 점점 능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실 거에요. 잔잔하게 서론을 시작했다가,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절정의 멜로디를 부르짖어도 좋고요, 처음부터 주 멜로디를 강하게 새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이 외에도 멜로디를 전개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주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멜로디를 쌓아간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완성할 수 있을 거에요. 제 경우, 주 멜로디의 계속되는 변주 반복이 포인트였기 때문에, 어떻게 주 멜로디를 변주할 지에 초점을 두어서 멜로디를 완성했습니다.


4. 이제 하모니를 쌓아 주세요!

천신만고 끝에 멜로디를 완성했다면, 이제 음악의 하이라이트, 하모니를 쌓을 시간이에요. 멜로디가 예쁜 빛깔의 실이라면, 하모니는 이 실들을 다양하게 엮어 예쁜 무늬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모니에도 기본적인 타입이 있는 데요, C코드니, G 코드니, 1도 화음이니 3도 화음이니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설명하려면 음악적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아쉽게도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작곡을 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하모니입니다. 화음이나 코드 등, 음악적 기본기가 어느 정도 있으신 분들에게 있어서도 약간 어려운 개념일 수 있기 때문에, 잘 모르시는 분들은 시작하시기 전 인터넷 및 서적으로 기본적인 화음의 종류와 대체화음 등에 대해 확실히 배우시고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화음을 정한 후에도, 음표를 어떻게 분배할 지 고민이 되는데요, 초심자의 경우, 피아노 곡이라고 했을 때 오른손은 멜로디, 왼손은 화음을 넣기 위한 반주로 구성하는 게 쉽고 간편합니다.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조금 내공이 쌓였다면, 오른손과 왼손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다양한 하모니를 시도해 볼 수 있겠지요.

코드, 화음 예시

5. 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 장치를 더한 후 제목을 정하고, 완성된 곡을 연주해 보세요.

모든 음이 완성되었다면, 중간중간에 곡의 흐름과 느낌을 살리기 위한 장치를 더해주세요. 경쾌하게 톡톡 튀기는 느낌의 스타카토, 빠른 템포의 알레그로, 이음표 등 다양한 음악적인 장치를 더하면 곡의 세세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답니다. 여기까지 완성하셨다면, 이제 곡 자체는 완성하셨다고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완성된 곡에 이름을 붙여줄 차례입니다. 사실, 곡의 제목은 꼭 마지막에 정할 필요는 없답니다. 굳이 마지막 순서에 언급한 이유는, 곡을 써내려가다 보면 중간에 주제나 멜로디, 전개 방식이 바뀌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처음에, 혹은 곡을 쓰는 중간에 제목을 정해야지 일관성 있는 곡 전개가 가능하다 하시는 분들은 편하실 때에 제목을 정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제 곡의 제목은 <자유로운 허무> 였습니다. 심오하죠. 허허. 써 놓고 보니 굉장히 부끄럽네요. 여러분들은 좋은 제목을 지으시길 바래요. 이제 완성하셨다면, 자부심을 가지고 나만의 곡을 연주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취향에 따라 가사를 붙이시는 것도 좋은 생각이에요!


위에서 설명드린 순서는 작곡을 이제 막 시작하시는 초보자 분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작곡 연습을 거듭하실 수록, 자신만의 순서와 틀이 잡히실 거에요. 예를 들어, 저는 위에서는 멜로디를 먼저 구상한 뒤 코드를 구상하라고 설명했는데요, 작곡을 하다 보니 코드를 먼저 잡은 후 멜로디를 구상하는 게 더 편하고 좋다 하시는 분은 그렇게 하시는 경우도 많답니다. 또, 작곡을 할 때는 내가 익숙한 악기를 곁에 두고 진행하시는 게 좋아요. 내가 구상한 곡이 실제로는 어떤 소리를 낼지, 중간중간 확인하는 작업에서 꼭 필요하거든요.


또, 위 4번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모니는 사실 별도의 공부를 하시지 않은 분들은 처음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C에서 B에 이르는 코드부터, 다양한 화음, 나아가 증4도니 감5도니 하는 변형화음에서 서로 대체가능한 화음의 종류까지... 음악의 기본기가 어느 정도 있는 분들도 처음 봐서는 헷갈리고 어려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도 수업 시간, 주로 이 하모니에 대해 공부했다지요. 하모니를 공부하시려면, 천천히 차근차근 독학하시거나 학원, 학교의 수업을 활용하는 방법을 적극 권해드립니다. 빠른 시간안에 혼자서 공부해서 습득하기에는 내용이 약간 복잡하고, 쉽게 질리실 확률이 높아요. 그보다는, 첫 작곡은 아주 기본적인 하모니를 숙지하는 정도로 시작하시고, 그 다음부터는 그날그날의 목표를 정해두고, 하모니를 공부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마다, 그때그때 배운 하모니 지식을 활용해 곡을 쓴다면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실 수 있을 거에요.



이것 저것 익히고, 생각해야 할 점이 많긴 하지만, 위 설명처럼 작곡은 결코 그 과정 자체가 막연하고 복잡하지 않습니다. 작곡과 음악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보다 깊어질 수록, 보다 다양한 시도와 표현을 위해 습득해야 하는 것이 많아질 뿐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어떤 곡이든 작곡을 시작하는 일입니다. 음악으로 나를 그리는 일에 익숙해지고,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뒤는 내가 알아서 더 좋은 곡을 쓰고 싶은 욕심에 이것저것 공부하고 시도하게 됩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게 영혼이 흔들린듯한 감동을 받았다면, 당장 펜을 잡고 흥얼흥얼 가볍게 곡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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