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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Oct 09. 2015

가을, 특별한 취미에 빠지다

#12 아주 특별한  열두번째 취미이야기_가을특집

매년 그랬듯이, 올해 여름도 어느 때보다 무덥고 길었습니다. '정말로 가을이란 계절이  존재하던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올해 여름이, 세상에, 어느새 끝나가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초록빛으로 무성하던 가로수 잎 끝에는 조금씩 빨갛고 노란 물이 들고 있고, 거리에는 하나둘씩 낙엽이 떨어집니다.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도 제법 쌀쌀해서 저는 얼마 전에 약한 감기에 걸렸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여름이 딱 가버리고 가을이 오다니, 작년도 이랬던가 가물가물합니다. 문득, 허무하게 보내버린 긴 여름을 생각하니, 이 가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년 그랬듯이, 올해 가을도 어느 때보다 가슴 설레는 가을이니까요. 이번 글에서는 가을을 사계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제가 사심을 가득 담아, 가을을 맞아 개인적으로 꼭 즐기고 싶은 아주 특별한 취미를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가을특집이라고나 할까요! 이 특별한 가을을 더욱 특별하게 채울 수 있는 취미들을, 이제부터 소개해 보겠습니다.   




 

가을, 책에 빠지다

"에게, 고작  독서?"라고 생각하셨던 분들, 반성하세요. 모름지기 가을은 독서의 계절, 독서의 계절은 가을! 가을에 즐기는 독서는 다른 때에 즐기는 독서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활짝 피어나는 봄, 무성히 아우성치는 여름, 고요히 잠든 겨울과 달리, 가을은 풋풋했던 것들이 잔잔히 스러지고, 동시에 탐스런 열매가 드디어 맺히는, 바야흐로 화려한 변화의 계절입니다. 자연의 섭리가 변화하리라고 조용히 속삭여 오는 이 계절, 우리도 이 변화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절로 손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책을 향합니다.


소설, 에세이, 사회과학, 시, 고전 어떤 책이든 좋습니다. 책을 하나 집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벤치에 앉아, 또는 돗자리를 펴고 누워 지혜의 향연을 즐겨보는 거예요. 옆에 햇살을 가려줄 큰 나무가 하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바스락, 하는 낙엽 소리에 내 안에서도 바스락, 깨달음이 구릅니다. 책을 덮고 일어났을 때, 우리는 책을 펴기 전과는 다른 우리가 되어있습니다. 저도 이번 가을, 미뤄두고 미뤄두었던 책들을 모두 읽어버릴 생각입니다. 패기롭게 샀던 플라톤의 <국가>에서부터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람세스> 전집까지. 한 장 한 장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즐기며, 집 앞 은행나무 아래에서 독서의 바다에 빠져 보고자 합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네요.


가을, 숲에 빠지다

가을 하면 꼭 가야 할 장소로는 숲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숲은 화려한 단풍과 향긋한 낙엽 향기를 가장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사방의 나무들이 고요하게 성숙하여 각종 열매를 맺고, 곧 다가올 잠시 동안의 죽음을 아름답게 준비하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단풍나무 사이로 흙길을 자박자박 걸어 가다 보면 수만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다시 부서집니다. 가을 숲 산책은 사고를 마음껏 풀어나가기 위한 최적의 장소인 것 같아요.

 

어느새 생각이 끊기고, 그저 걷기만 하는 게 지루해지셨다면, 사진기를 꺼내 이 찰나의 가을을 프레임에 담아 보세요. 올해 가을, 제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도 바로 나만의 인생 가을 사진을 하나 건지는 거랍니다. 성공하면 당당히 브런치에 게시하리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까진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역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프레임 안에 담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느낀 감동을 조금이라도 더 프레임에 담기 위해 사진기를 이리저리 들이대는 과정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주위를 더욱 주의 깊게 둘러보며, 가을의 아름다움을 더 세심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요. 언젠간 향긋한 낙엽 향기가 느껴지는 사진을 꼭 찍어 보이겠어요! 독자 분들도 각자 DSLR,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등 다양한 카메라로 이번 가을을 사진으로 남겨, 좋은 추억을 기록하세요.


보다 특별한 방법으로 가을을 기록하고 싶다면, 보이는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도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습니다. 멀리서 본 전체적인 가을 풍경을 그려봐도 좋고, 우리 주위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가을을 그려보아도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식물을 하나 골라 자세히 그리는 걸 참 좋아했는데요, 들판의 꽃을 한 송이 꺾어 책 속에 넣어 말린 다음 그 모습을 조심조심 그리거나, 은행잎의 모양, 열매, 줄기, 나무의 결 등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스케치북에 슥슥 그려보고는 했습니다. 아래 그림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물론 저는 저렇게 잘 그리지 못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을 그려낸 관찰력이 뛰어납니다. 이런 그림들을 그릴 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드로잉 실력 보다는, 세심한 관찰력인 것 같아요. 이렇게 나만의 그림으로 가을을 기록하는 것 또한 낭만적이지 않나요?





가을, 시에 빠지다 

가을은 감성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가을을 탄다" 고 심심찮게 표현하고는 하는데, 그 말 그대로 가을만 되면, 사람들이 왠지 말이 없어지고, 우수에 차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감성으로 꼭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시를 읽는 일이지요. 아래에 가을과 어울리는 시를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이 시를 읽고, 저는 진한 감동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겸손하고, 아름다운 언어라니! 누군가를 마구마구 사랑하고 싶은 감정이 들게 하는 시예요.


유명한 소설가, 공지영 작가님도 딸에게 쓰는 편지에서, "시는 천재들의  영역"이라고 말한 바가 있을 정도로, 후세에 길이 남은 시들을 보면 그 표현이 얼마나 기발한지, 그 운율과 심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그 안에 담긴 지혜와 삶은 얼마나 넓은지 그저 감탄만 하게 됩니다. 길이가 짧다고 해서 시를 쓰는 일을 쉽고 간단한 일이라고 호락호락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길게 술술 풀어나가는 장편에세이보다도 더 많은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시지요. 수백 번의 고민을 거쳐 나온 시는, 그래서 그만큼의 압축된 무게로 읽는 자들의 가슴에 꾹 눌러져 오는  듯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시를, 가을이 한껏 불러일으킨 감성으로 나도 펜을 손에 쥐고 종이에 사각사각 써 내려가 보는 건 어떨까요? 앞서 시를 쓰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언급했지만, 내가 느끼는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답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자유롭게, 나름의 고민을 담아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내가 쓰는 시 속에 물들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시인으로 유명한 최대호 시인의 시처럼, 다양한 형태와 감성의 시가 많으니, 처음 시를 쓰시는 분들은 너무 큰 부담을 가지시지 말고 본인의 현재 생각과 감성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즐거운 고뇌에 풍덩 빠지시기 바랍니다.


가을, 맛에 빠지다 

드디어 기다리던 마지막 취미입니다. 두뇌를 자극하며 감성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미각을 즐겁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가을은 그야말로 풍성한 음식의 계절입니다. 햇살을 받아 통통하게 잘 여문 햅쌀, 햇밤, 햇사과, 햇고구마, 밤, 호박 등 각종 과일, 야채, 곡식들이 황홀한 자태를 뽐냅니다. 사진의 자르르 흐르는 윤기만 봐도 침이 넘어가네요. 제철을 맞아 한껏 싱싱한 맛을 뽐내는 식재료들로, 각종 다양한 요리를 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각 식재료들의 있는 그대로의 맛을 즐기는 것도 맛있고 건강에 좋은 방법이지만, 모름지기 요리란 각종 식재료의 완벽한 조화를 창조하는 일련의 예술과도 같은 과정이 아니겠어요. 고구마라테, 사과 파이, 호박죽, 밤밥에서부터, 잘 익은 호박 안을 파내고 밤, 갈비, 대추를 넣은 갈비찜, 사과와 감을 썰어 넣고 새콤한 소스를 올린 가을 과일 샐러드, 햅쌀과 햇고구마 위에 치즈를 올려 구워낸 쫀득 쫀득한 그라탱까지... 그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습니다.


농익은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가을 식재료들로, 매일매일 나만의 요리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담담하게 칼질을 하고 으깨고 볶을 때, 치밀한 계산과 감각으로 요리를 완성했을 때, 그리고 이렇게 만든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볼 때, 소소한 행복이 이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채웁니다. (설거지는 별개예요.) 저도 오늘부터 매일매일 아주 특별한 가을 요리 계획을 짜보려고 합니다.





매해 반복되어 왔던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늘 새로운 가을에 설레고, 특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아마 가을이 여름에서 겨울로, 삶에서 잠으로, 한 해의 절정에서 한 해의 끝으로 넘어가는 변화의 계절인 것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늘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변화를 경험해 왔지만, 새로운 변화는 늘 특별해 보이는 것처럼, 언제나처럼의 반복되는 가을이지만, 새로 다시 맞은 가을은 늘 특별한 듯 싶습니다. 이번 가을,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가을을 기억하고 싶다면, 새로운 가을취미에 빠져보는 게 어떨까요? 늘 그랬듯이 아차 하는 사이 훌쩍 겨울이 다가오겠지만, 가을에 푹 빠졌다 나왔다면, 후회는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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