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주 특별한 열세번째 취미이야기_폴댄스
조명 아래, 날렵한 은색 폴이 빛나고 곧이어 댄서들이 등장합니다. 가느다란 폴에 다리를 걸치고 빙빙 도는 매혹적인 춤사위에, 관중들은 그저 경탄할 뿐입니다. 몸을 휙 뒤집어 폴에 거꾸로 매달렸다 하면, 다시 날렵하게 비상해서 폴을 빙빙 도는 등, 중력을 완전히 무시한 듯이 자유롭게 폴을 누비는 모습에는, 시종일관 우아함이 배어 있습니다. 제목에서 폴댄스를 “백조의 스포츠”라고 표현한 한 가지 이유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백조의 이면에 있습니다. 백조는 수면 위에서는 우아해 보이지만, 수면 밑에서는 격렬하게 발을 젓고 있습니다. 폴댄스도 마찬가지로, 우아하고 가벼워 보이는 춤사위 뒤에는 격렬한 노력과 땀이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잘 몰랐던 백조의 스포츠, 폴댄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요.
많은 사람들이 폴댄스,하면 스트립클럽 혹은 나이트클럽에서 댄서들이 선정적인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을 먼저 떠올리실 텐데요, 많은 현대인들이 폴댄스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영화 혹은 공연에서 본 스트립클럽의 댄서들을 통해서인 것은 맞지만, 사실 폴댄스의 기원을 논하자면 보다 더 옛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운동을 목적으로 봉을 사용한 역사는 800여 년 전의 인도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말라캄브 (Mallakhamb)라고 하는 전통 인도 스포츠에서는 오늘날 폴댄스에서 쓰는 봉보다 조금 더 넓은 나무 봉을 사용해서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중국이나 아프리카, 유럽 등 다양한 역사 기록에서 폴댄스의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이후, 폴댄스가 자주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는 1920년대의 서커스에서였습니다. 1920년대는 아직 TV가 대중화되지 않았고,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던 서커스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당시 폴댄스는 유랑 서커스에서 자주 볼 수 있던 공연이었습니다. 서커스 공연이 펼쳐지는 텐트 중앙에서 폴을 돌며 춤추는 폴댄서들을 볼 수 있었지요. 시간이 흘러 폴댄스의 무대는 서커스에서 바(bar)로 옮겨가게 되었고, 1980년대부터 캐나다, 미국 등지를 중심으로 스트립댄스와 결합되어 널리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폴댄스는 크게 재조명받게 됩니다. 스트리퍼들이 추는 선정적인 여흥거리 댄스가 아닌, 건강과 피트니스 목적을 위한 운동이자, 많은 선수들이 진지하게 기술을 갈고 닦으며 정진하는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거죠. 현재는 수많은 폴 댄스 챔피언 대회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며,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며 오늘날까지 발전해 온 폴댄스를, 저도 언젠가 꼭 한 번 배워보고 싶었는데요, 아쉽게도 시간과 몸의 한계와 소심함으로 인해 시도해 보지 못했었습니다. 폴댄스를 직접 취미로 즐기는 사람의 경험담만큼 취미로서의 폴댄스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이야기는 없지요. 그래서 이번 편에도 본인의 취미 이야기를 공유해 주실 스페셜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바로 제 현 직장동료 J 양입니다. J양은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1년째 폴댄스를 즐기고 있고, 현재는 폴댄스 전문가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폴댄스 마니아인데요, 논문을 쓰랴, 출근하랴, 친구 만나랴 이것저것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꼭 폴댄스를 즐긴다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 폴댄스를 소개하고 싶다는 제 부탁에, 너무나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습니다. 고마워요, J양! (물론 이번에도 저는 공물로 스무디를 바쳤습니다.)
탐 : 취재에 응해줘서 고맙습니다, J 양!
J : 뭘요. 호호.
탐 :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J양이 매주 퇴근 후 폴댄스를 하러 가는 걸 보고 언젠가 한 번 꼭 글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드디어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네요.
J : 몇 주 전부터 어찌나 인터뷰를 해달라고 독촉하던지… 휴가 중에도 카톡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몇 번이나 연락이 왔었지요… (아련)
탐 : 허허허;;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꼭 인터뷰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 이제 안 그럴게요. 몇 번이나 시간이 엇갈린 끝에 어렵게 잡은 인터뷰인 만큼 오늘 뽕을 뽑겠어요!
J : 좋습니다. 질문을 시작하시죠!
탐 : 넵. 우선 첫 번째 질문입니다. 처음 폴댄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J : 제가 원래 운동하는 걸 참 좋아해요. 고등학교 때 축구도 했고, 라틴댄스도 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운동을 했었죠. 그러다가 대학생 시절에는 이것저것 바빠서 한동안 운동을 거의 쉬었었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해볼 만한 운동을 이것저것 찾아봤어요. 제가 축구를 하던 중 발목을 다쳐서, 우선 발목에 무리가 많이 가는 운동은 어려웠고, 또 제가 헬스장에 가서 혼자서 단순한 운동을 계속 반복하는 건 싫어해서… 즐겁게 할 수 있고, 운동효과도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눈에 띈 게 바로 폴댄스예요. 그 이후 작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1년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폴댄스를 취미로 하고 있네요.
탐 : 스스로 이것저것 운동을 알아보고, 좋은 취미로 계발했다는 게 참 보기 좋네요. 학원에서 배우신 거죠?
J : 네. 학원 수업에 등록해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웠어요. 지금은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고 있어요.
탐 : 학원에서 폴댄스를 같이 즐기시는 분들은 보통 나이대가 어리겠죠?
J : 그럴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에요. 제가 지금 이십 대 중후반인데, 우리 반에서 어린 측에 들어요. 연령대는 정말 다양해요. 18살부터 5,60대까지, 정말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폴댄스를 즐기고 있어요. 저보다 앞서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신 분이 계신데, 그분은 군대 갔다 온 아들이 2명이나 있으시답니다. 남자 분들도 계세요.
탐 : 다들 대단하시네요. 수업은 주로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J : 학원마다 많이 다르긴 한데,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먼저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웜업(warm-up) 운동부터 시작해요. 요가나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을 풀어주고,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한 동작, 복근을 단련하기 위한 간단한 근육운동을 해요. 그다음에는 폴댄스 기술이나 동작을 배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스트레칭을 해서 근육을 풀어주면 수업이 끝납니다.
탐 : 언뜻 듣기만 해도 운동이 정말 많이 되겠네요. 폴댄스 기술이나 동작은 배울 게 많나요?
J : 굉장히 많아요. 폴댄스의 자세나 동작은 정말 다양하거든요. 크게 봉을 잡고 공중에서 동작을 하는 자세와, 플로어라고 해서, 바닥에서 동작을 하는 자세로 나눌 수 있어요. 공중에서 동작을 하는 것도 머리가 하늘을 향한 채 하는 동작과 머리가 바닥에 가도록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 하는 동작으로 나누어져요.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 하는 동작은 초급자들에게는 어렵고요, 중고급자들부터 가능한 동작이에요.
탐 : 으아, 육지에서도 어려운데, 봉을 잡고 공중에서 거꾸로 몸을 뒤집는다니, 저한텐 불가능한 일 같아요.
J : 아니에요,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는 처음 몸을 뒤집을 수 있게 되기까지 반년 넘게 걸렸는데, 그동안 꾸준히 근력을 키웠죠. 코어, 즉 복부의 힘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업에서 자주 물구나무 서기 연습도 했고요. 차근차근 근력을 키워나가다 보면 누구든지 가능해요.
탐 : 오, 노력의 결과라니. 멋져요.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이것저것 힘든 게 많겠죠? 저번에 다리에 든 멍도 보여줬잖아요.
J : 어우, 힘들어요. 폴에 거꾸로 매달려 있으면 피가 머리에 쏠려요. 게다가 폴댄스를 하다 보면 피부가 어쩔 수 없이 쓸려서 아파요. 폴댄서들이 피부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댄스를 하는 게, 결코 섹시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피부가 폴에 닿아서 마찰해야 폴에서 미끄러지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 피부가 쓸리죠. 폴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멍이나 피멍이 드는 일도 다반사고요.
탐 : 아프겠다…
J : 그런데 저는 이 멍이 참 좋아요. 대부분의 폴댄서들도 다 그럴걸요? 내 열정의 증거라고나 할까요. 멍이 생긴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는 얘기고, 그만큼 많이 발전한다는 얘기니까요. 전 자랑스러워요. 또 반복하다 보면 피부도 익숙해지고, 실수도 적어지니까 점차 멍도 덜 들고요.
탐 : 머.. 멋있어요. 멍자국도 사랑할 만큼의 폴댄스를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데요, 이렇게 큰 애정을 품을 만큼 강렬한 폴댄스의 장점이나 매력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J : 우선 운동이 진짜 많이 돼요.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이 모두 되는 전신 운동이거든요. 폴댄스를 하려면, 특히 몸의 중심 부위인 코어 근육이 가장 중요한데 폴댄스를 하면 이 부분의 근육을 중점으로 전신의 근육이 고루고루 단련돼서 몸매가 정말 예뻐져요. 저는 폴댄스를 시작하고 근육량이 20% 가량 늘었답니다. 체력도 엄청 좋아져요. 또 성취감이 정말 굉장하죠. 동작 하나하나를 터득해서 내 걸로 만들 때마다, 노력의 결실을 얻는 그 쾌감이란…. 제가 발전했다는 걸 바로바로 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계속 열심히 하고 싶은 자극이 팍팍 들어요. 마지막으로, 아름답고 독특한, 진짜 재밌는 운동이라는 점? 끊임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몇 백개의 동작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니까, 늘 새로워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폴을 타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인해지는 느낌이랄까. 자신감도 굉장히 많이 향상됬어요.
탐 : 큰일 났네요, 하고 싶어 졌어요. 이 이상 일을 벌이면 안되는데… 쩝.
J :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봐요! 할까 말까 주저하는 분들께 꼭 해드리고 싶었던 말이, 폴댄스는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거예요. 처음엔 “세상에, 내 몸으로 어떻게 저런 운동을….” 이라던가 “저는 체력이 없어요… 절대 못해요”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저도 다 처음에 가졌던 생각이에요. 일단 시작해보면 너무너무 재미있는 스포츠랍니다. 처음엔 봉에도 못 매달리던 분들도, 나중엔 휙휙 공중에서 몸을 뒤집고 묘기를 부리세요.
탐 : 용기가 생기네요. 그럼 혹시 폴댄스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입문자들이 알아야 할 팁이 있을까요?
J : 좋은 학원을 선택하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어차피 폴댄스는 독학하기에는 이것저것 무리가 있고, 학원에 가서 강사님들께 배우고 연습을 해야 할 텐데, 이 때 잘 알아보고 등록해야 돼요. 우선 꼭 살펴봐야 할 것은 그 학원에 설치된 폴이 전문가용 엑스폴인가에 요. 가끔 가짜 폴을 가져와 설치해 놓은 학원들이 있는데, 그런 폴을 타면 피부에 검은 자국이 나요. 광고만 보고 속단하지 말고, 꼭 직접 전화로 물어보거나, 학원에 직접 가셔서 엑스폴인지 물어보세요. 또, 폴 밑에 개인 매트가 깔려 있는지, 수업 시 1인당 1개의 폴을 쓸 수 있는지도 정말 중요한 점이고요. 폴 밑에 개인 매트가 없으면, 폴을 타다 떨어졌을 때, 안전 상 정말 위험하답니다. 매트가 있는지 꼭 확인해 봐야 해요. 그리고 수업 시간에 한 개의 폴을 여러 명이 사용하게 되면, 주어진 시간 안에 마음껏 폴을 타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요. 학원에 등록하기 전에, 직접 꼭 방문하셔서 이런 점들을 미리 살펴보신 후 등록하시는 걸 추천해요.
탐 : 좋은 충고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폴댄스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요?
J : 폴댄스에 대한 편견에 대해 꼭 얘기하고 싶어요. 어떤 분들은 아직도 가끔 폴댄스를 뭐랄까... 성적인 춤으로만 인식하고 계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폴댄스를 성적 어필을 하는 스트리퍼들이 추는 춤으로만 보시고, 폴댄서 들을 약간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시는 경우가 있는데, 21세기 현재, 폴댄스는 엄연한 스포츠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폴댄스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진지하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기술을 연마하세요. 전문적으로 폴댄스를 연마하시는 분들을 보면 매일 연습하다 온몸에 피멍이 드는 일은 다반사고, 근육주사를 맞거나, 디스크의 아픔까지 견뎌가며 자신의 극한과 싸워 가장 아름다운 동작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세요. 스트립댄스로 자주 공연된다고 해서, 폴댄스와 폴댄서들의 매력과 노력이 자주 비하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편견은 한 켠에 두고, 서로서로 Respect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탐 : 마지막에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참 와 닿네요.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J!
J : 뭘요, 저도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폴댄스와, 폴댄스를 즐기는 J양이 새삼 달라 보였습니다. 저 역시도 폴댄스를 유연성과 근력을 이미 갖춘 사람들이 가볍게 하는 운동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진지하게 도전하고, 꾸준히 연마하는 스포츠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폴댄서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요. 그리고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육체와 폴을 사용하여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몇 번이고 연습하는 그 모습에서, 진정한 가치와 열정이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멋진 백조처럼 폴을 누비실 모든 분들을 응원하며, 이만 이번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