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특별한 첫번째 이야기_ 라틴어 공부
과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고대 로마 제국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패권국이었습니다. 현 이탈리아 반도 및 유럽,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 이집트까지 지배하였던 로마는 고대 최대의 제국으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철학과 역사,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으며 수많은 인문 고전서의 배경이 된 고대 그리스의 명맥을 이은 제국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저), 안토니우스, 스파르타쿠스, 네로 황제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활동했던 나라이기도 하지요. 비록 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서구 문명은 로마의 명맥을 굳건히 이어와 로마 제국의 사상과 문화, 제도는 현대의 서양문명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서양문명의 많은 나라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고대 로마 제국의 후예임을 주장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상징이었던 독수리를 현재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바로 라틴어입니다.
라틴어는 현재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죽은 언어, 사어(死語)입니다. 현재는 고대 라틴어 문명 및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들 및 크리스천 사제들이 주로 사용하며,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라틴어로 대화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라틴어의 위용은 대단했습니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라틴어는 상류층들의 언어로 자리 잡아 국제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중세 시대, 상류 엘리트 층의 교육에서 라틴어는 필수 중의 필수였습니다. 로마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사상과 역사는 주로 라틴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지도층들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여진 그리스 로마 인문고전을 읽고 배우며 토론하는 방식으로 견해를 넓혔으며, 라틴어는 각 나라의 지도층들이 만나 외교적인 대화를 나눌 때 사용되는 주 언어였습니다. 소료 후유미의 만화 “파괴의 창조자-체자레”라는 만화에 보면, 15세기, 차기 교황 후보를 아버지로 둔 체자레 보르지아가 피렌체의 학교로 떠나면서 동생 루크레치아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도회도 좋지만 라틴어도 완벽하게 익히도록 해. 외교에는 라틴어가 필수다.
참고로 체자레 보르지아는 그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이상적인 군주로 꼽은 인물입니다. 이처럼 라틴어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지식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언어이자, 몇몇 유럽 국가의 공식 언어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크로아티아 의회에서는 13세기에서 19세기까지 라틴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해왔죠. 폴란드에서도 라틴어는 귀족들의 제2외국어 및 외교어로 18세기까지 널리 사용되었을 정도로 라틴어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대까지도 활발히 사용돼 왔습니다.
저는 대학교 강의로 라틴어를 배웠습니다. 라틴어를 배우는 것은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로망이었는데, 마침 대학에서 라틴어 1 강의가 열렸기에 얼른 교양으로 채택해서 들었죠. 친구들은 모두 왜 라틴어처럼 딱히 "쓸모가 없는" 언어를 배우냐며 갸웃했지만 제 만족도는 100%였습니다. 비록 기대했던 A 학점은 못 받았지만, 라틴어 강의를 듣는 시간은 제가 취미도 즐기면서 학점도 따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즐거웠어요. 기말고사 때 공부를 열심히 할걸... 하고 몰래 한숨 쉬는 건 비밀입니다...
제가 라틴어를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먼저 진부한 말 같지만,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의 사상과 숨결을 배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허용되지요. 그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제게 있어서, 라틴어를 배운다는 것은 서구 문명의 기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로마 제국의 숨결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던 신비한 행위였습니다. 또한 이미 멸망했다고는 하지만, 역사에서 찬란히 빛났던 라틴어라는 언어를 어떠한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라, 감상하고 이해하려는 목적 그 자체를 위해 공부한다는 행위가 제게는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라틴어를 배운다고 제가 퍽이나 고상해진 건 아니지만, 느낌이 그렇다고요, 느낌이…
조용한 밤, 일부러 방안 등을 끄고 책상 위에 촛불을 키고 앉아 라틴어 단어를 사각사각 써 내려가며 외우고 있자면, 마치 중세 시대, 내일 있을 토론을 준비하는 귀족의 자제나 이후 서양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꿈에도 모른 채 라틴어로 한자 한자 책을 써 내려가는 고대 로마의 어느 유명한 학자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묘하게 벅차 올랐습니다.
라틴어를 배우는 행위에만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틴어는 그 자체로도 정말 아름다운 언어랍니다. 라틴어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영어 등 서구 언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언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를 배우면 이들 언어를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라틴어는 간단히 배울 수 있는 언어는 아닙니다. 라틴어는 3개의 성, 7개의 명사형, 4개의 동사 형태, 6개의 시제, 3개의 인칭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처음 라틴어를 접하는 분들은 이 모든 문법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요. 하지만 라틴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그 정교함과 치밀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문법이 복잡한 만큼, 표현은 세련되고 섬세해지며, 어느 자리에 어떤 단어가 어떤 형태로 올지도 정교한 문법 규칙에 따라 달라지게 되죠. 이렇게 완성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라틴어의 아름다움은 극에 달합니다. 간단한 문장을 예로 들어 읽어볼까요?
Puer puellas vident ; eas vocant
푸에리 푸엘라스 비덴트 ; 에아스 보칸트
소년들이 소녀들을 본다. 그녀들을 부른다.
간단한 문장임에도 그 소리가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나요? 제가 사실 라틴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가 그 소리랍니다. 우연히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마치 노래하는 듯이 아름다운 소리가 났거든요. 그리고 라틴어를 읽을 때는 어떤 발음이 정확한 발음인지 크게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실제로 생활에서 사용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별로 상관이 없거든요. 라틴어를 배우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이죠. 후후.
그렇다면 이 특별한 취미를 즐길 수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저는 독학은 그다지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라틴어를 아는 사람도 워낙 소수인데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없다 보니, 혼자서 공부하다가 막히거나 궁금한 점이 생겨도 인터넷으로 그때그때 검색하거나 책을 통해 궁금한 점을 해결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듭니다. 라틴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라틴어 강사분들께 도움을 받아 공부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만약 대학생이시라면, 본인의 학교 혹은 타 학교 강좌를 적극 이용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라틴어가 교양 강의로 개설되는 대학교라면 학점도 따고 취미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 학점을 원한다면, 열심히 공부해야겠죠…학점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청강을 추천합니다. 우리 학교에 열려 있지 않다고 해도 타 학교와의 학점교환제도 등을 이용한다면 라틴어 강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학생이 아니시라면 청강을 요청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요, 요즘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져서 곳곳의 아카데미에서 따로 라틴어 강좌를 개설하기도 합니다. 검색창에 “라틴어 강좌”라고 치시면 최근 수강인원을 모집 중인 강좌가 뜰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라틴어에 해박하신 분들은 철학, 신학, 언어학 등 쪽에 종사하고 계시던 학자 분들이 많으신지라, 대학 내 언어연구소 같은 기관 혹은 고전학회와 같은 학회에서도 이러한 분들을 초청하여 따로 라틴어 강좌를 일반인 대상으로 개강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곳으로는 한국 서양 고전학회에서 매 겨울마다 서양 고전어 동계 집중코스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라틴어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 혹은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오프라인 강좌에 참석하시기 어려우신 분들은 좌절하지 마시고, 독학과 스터디를 병행하시는 것을 추천드리니다. 몇몇 카페에서는 온라인과 카카오톡을 이용해서 매주 정기적으로 라틴어 스터디를 하시는 분들도 보이시더라고요. 이런 스터디 모임에 가입하면 해이해지는 내 자신도 잡을 수 있고, 모르는 점도 서로에게 물어보며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죠? 라틴어를 공부하시려는 분들은 인문학 및 서양 고전, 외국어 카페도 틈틈이 체크하셔서 스터디 공지가 올라오면 여기에 가입하시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또 라틴어 교재를 어떤 걸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야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저는 Oxford Latin Course Part 1 (Balm&Morwood, Oxford)으로 배웠습니다. 교재가 영어로 되어있어서 영어가 부담스러운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지만, 영어에 불편함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참 좋은 교재예요. 각 챕터마다 가벼운 예문과 Vocabulary, 긴 예문과 단어 설명이 추가되어 있어 실제로 라틴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익히기에는 참 좋은 책입니다. 다만 문법 설명이 뒤에 부록에 나와있어 문법을 스스로 익히기에는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된 독학용 라틴어 책도 검색해보시면 많이 나오니, 서점에 가서 보시고 알맞은 책을 찾아보세요. 이 외에도 http://www.textkit.com/ 사이트에 가시면 무료로 라틴어 독학 자료를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영어로 되어있습니다만, 무료니까요!
이 외에도 라틴어를 배울 수 있는 효과적인 루트를 아신다면 다른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제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오늘 첫 글을 통해 여러분께 라틴어를 취미로 삼는 것의 장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드렸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봬요.
참고 및 출처 :
Wikipedia
두산백과
Oxford Latin Course Part 1, Balm&Morwood, Oxf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