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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Sep 21. 2015

얼후, 우아한 애절함을 켜다

#2 아주 특별한 두 번째 취미 이야기 – 얼후

늦은 밤, 하루를 마치고 어떠한 이유로든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사색에 잠길 때, 흔히들 감성이 터진다고 표현하는 이 시간엔, 머릿속을 마구 두드리는 듯한 경쾌하고 현란한 음악보다는, 조용하고 깊게 터진 감성을 휘감는, 왠지 모를 애절함이 묻어 있는 음악이 더 마음을 울립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에서처럼, 우리는 낮엔 사람들을 만나며 내 안의 슬픔을 알게 모르게 억누르고 있는 힘껏 명랑하게 웃다가도, 온전히 나만 홀로 있는 듯한 밤이 되면 결국 꽁꽁 감춰두었던 슬픔이 빼꼼히 머리를 내밀어 더욱 ‘애절함’ 이란감정에 끌리는 게 아닐까요. 슬픔이란 기쁨과 마찬가지로 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요, 기쁨과 마찬가지로 마음껏 발산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가장 간편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슬프고 애절한 음악에 취해 보는 거죠. 오늘은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 전, 음악 한 곡을 추천해 드립니다. Jia Peng Fang 의 Cherry Blossoms 라는 곡인데요, 글을 읽어 내려 가시기 전, 이 음악을 감상하시며 조용히 내 안의 슬픔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어떤가요?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멜로디의 아련한 떨림 하나하나에 취하게 되지 않나요? 이 음악은 오늘 얘기할 두 번째 취미 이야기인 얼후로 연주한  곡입니다. 세상엔 슬픔을 표현한 다양한 음악이 있지만, 제가 들은 중 가장 우아하게 애절함을 노래한 음악은 바로 얼후의 연주소리였습니다. 얼후라는 단어가 생소하신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얼후란 중국의 전통악기로, 우리 나라의 해금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현과 울림통이 있는 몸체를 활로 수직으로 긁어 소리를 내는 연주모습 또한 비슷합니다. 하지만 해금은 현이 명주실이라 특유의 탁하고 감칠맛 나는 소리를 내는 데 비해, 얼후의 현은 철사로 만들어져 보다 얇고 낭랑한 소리를 낸답니다. 얼후는 동양의 바이올린이라고도 불리는 데요, 그 별명대로 바이올린 연주법과도 연주법이 정말 닮아있습니다. 현에 손가락을 살짝 얹어 활을 켜서 각기 다른 높낮이의 음을 자아내는 거죠. 다만 4개의 현을 가진 바이올린과는 달리, 얼후의 줄은 2개입니다. 


중국의 전통악기, 얼후

제가 앞서 얼후를 “우아한 애절함” 을 노래하는 악기라고 표현했는데요, 얼후는 정말 여러 방면에서 우아한 악기랍니다. 먼저,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얼후는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있습니다. 마치 보석상자처럼 생긴 각이 진 가죽 울림통 위로 가느다란 지지대가 곧게 뻗어나가다 절묘한 길이에서 우아하게 휘어집니다. 두 줄의 현을 고정하는 고정대는 멀리서 보면 마치 여인이 머리에 꽂은 비녀와 같은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팽팽하게 긴장된 두 현 사이를 노니는 활은 특유의 유연함을 자랑합니다. 얼후를 어떤 나무로 만들었냐에 따라 악기의 가격도 천차만별인데요, 저는 홍목으로 만든 얼후를 약 8만원 정도의 가격에 구입했습니다. 중국에서 워낙 대중화된 악기라 나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어요. 후후.



얼후를 연주하는 중국 미녀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얼후를 “우아하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얼후를 연주하는 모습에 있습니다. 제가 얼후를 배우기로 한 이유도 얼후를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인데요, 처음에 우연히 동영상으로 얼후를 연주하는 모습을 봤을 때, 현 위에서 부채처럼 우아하게 튕겼다 접히는 오른손의 모습과 부드럽게 움직이는 갈대처럼 활을 놀리는 왼손의 움직임에 그저 넋을 놓고 쳐다보다 바로 얼후를 배우기로 결정한 기억이 납니다. 저란 사람 참 홀리기 쉬운 사람 같아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가만히 얼후에 손을 올리고 준비하는 자세에서도 마치 신선과 같은 우아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는 특히 얼후를 연주하는 여자 분도 멋있지만, 얼후를 연주하는 남자 분이 참 멋있어요. 앞서 저희가 들은 곡인 cherry blossoms 를 연주한 지아펑팡 또한 남성으로, 중국의 대표적인 얼후 연주자입니다. 여성 연주자들이 얼후를 연주하는 모습에서는 현란하게 움직이는 나비가 연상되어 하늘하늘한 인상을 받았다면, 남성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습에는 묘한 절도와 남성 특유의 굳센 부드러움이느껴집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자세가 그저 좋게 보여지기 위해 억지로 취한 자세가 아니라, 얼후 특유의 낭랑하고 깊은 소리를 가장 아름답게 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취하게 되는 자세라는 점입니다. 얼후를 연주할 때, 양 손 모두 힘을 뺀 상태로 손목의 휘어짐과 손가락의 가벼운 감촉 만으로 연주해야 하는데, 이 때 오른손과 왼 손, 어느 손이든 힘을 너무 주게 되면 소리가 나지 않거나 소음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기본 자세를 익히는 데만 꽤 시간이 걸린답니다. 마침내 완벽하게 편하고 동시에 아름다운 자세를 취하게되었을 때, 두 개의 줄에서 튕기듯 흘러 나오는 소리는 주위 공기를 적셔 듣는 사람을 흠뻑 취하게 합니다. 


얼후의 현을 누를 때 왼손의 자세


얼후가 자아내는 소리는 중국 천 년 역사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얼후는 송나라의 해금이라는 악기에서 변화했다고 합니다. 이 해금이란악기 자체도 원래 뿌리는 중원의 한족이 아닌 호인(북방의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말)들의 악기였다고 하네요. 얼후는 수 없이 변화를 거듭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악기가 되었다가 20세기, 고대와 현대가 장렬히 부딪히던시절, 획신적인 개량을 거치며 현대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얼후가 자아내는 음색을 듣고 있다 보면 때론 음폭이 크고 화사한 서양의 색채가, 때론 담담히 한음한음의 색채를 짙게 우려내는 동양의 색채가 느껴집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후는 그때그때마다 변화하며 중국인들의 모습을 비추고, 그렇기에 중국인들의 변치 않는 사랑을 누리며 국민악기로 불리고 있지않나 생각이 듭니다. 


얼후를 배울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요즘은 한국에도 얼후가 많이 알려져서 얼후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신촌, 홍대, 강남 등지에서 따로 얼후를 가르치는 학원도 많이 있습니다. 각지에 있는 중국문화원에서도 얼후 강좌를 열 때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하고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직접 얼후를 배우러 가기 어려우신 분들은 온라인 동영상 강좌를 통해서도 얼후를 배울 수 있어요. 네이버의 “얼후랑” 이라는 카페에 방문하시면 얼후 관련 다양한 자료와 동영상 강의 및 얼후 강습 모집 공고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도 얼후 강좌 동영상이 올라와 있으니 보시고 따라 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전에 현악기를 전혀 다뤄보신 적이 없고, 중국식 악보인 “지엔푸” 에도 익숙하지 않은 분이시라면 (아마 대다수가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직접 강사님께 배우는 걸 추천드려요. 얼후는 처음 기본자세를 제대로 익히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이 자세는 혼자서 영상이나 책을 보고 익히기엔 많이 어렵거든요. 또 얼후는 중국 악기이기 때문에, 얼후용 악보 역시 중국식 악보인데요, 중국에서는 서양의 오선악보가 아닌, 음을 숫자로 표시한 “지엔푸” 라는 독자적인 악보를 함께 사용한답니다. 한 번 이해하면 굉장히 쉽지만, 처음 악보를 보시는 분들은 익숙한 4분음표와 높은음자리표 대신 숫자의 향연을 보시고 당황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문득 나른한 시간 속에 내 안의 애절함과 마주치고 싶을 때, 중국의 천 년을 품은 얼후 소리에 취해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얼후의 현을 타고 울리는 소리에 한 번 취하고, 음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며 저절로 춤추는 내 손과 몸에 다시 취하고, 어느새 얼후 소리를 타고 흐르는 내 안의 감정에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독특하고 소중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에요. 


오늘도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새로운 삶의 영감을 얻을 수 있길 기도하며, 두 번째 이야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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