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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Aug 05. 2016

모든 물건은 누군가의 보물이다

#아주 특별한 스물네번째 취미이야기_수집

어렸을 때, 누구나 저마다의 보물상자가 있었을 거에요. 제 보물상자 안에는 선생님 몰래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돌려 쓰던 쪽지와, 예쁜 구슬, 쉬는 시간에 딴 전리품 딱지와 포켓몬 빵을 먹으면 모을 수 있는 스티커로 가득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물건들이었지만, 어렸을 때의 제게는 소중한 보물이었고, 이 보물들을 차곡차곡 모은 상자를 볼 때마다 뿌듯함에 미소 짓고는 했습니다. 훌쩍 커버린 지금은 더 이상 물건을 모으지 않는데, 이전에는 성인이 된 증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수집을 즐기는 수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이유는 물건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에 있는 그대로 감탄하고 즐거워하던 순수한 마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글에서는 물건을 모으고 사랑하는 취미, 수집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수집, 물건의 아름다움을 보다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모으는 물건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입니다. 양철로봇, 코카콜라 리미티드 에디션 병, 우표, 미니어쳐 모델, 영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피규어 등 우리가 평소에 자주 볼 수 없었던 신기한 소품에서부터 맥주 병뚜껑, 연필, 청첩장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보고 넘겼던 흔한 소품들도 있습니다. 교수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영태 작가님은 그의 저서 <수집 미학> 에서 그 동안 자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귀이개, 안경, 카메라, 립밤, 책갈피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용품들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임을 밝힙니다. 책에서 그는 각 물건과 처음 만나게 된 경위와, 그 물건과 얽힌 자신만의 추억을 회상하며, 물건 하나에 담긴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합니다. 별 것 아닌 일상의 용품도 경이롭게 감상하며 소중히 하는 그의 자세에서 우리는 수집이란 어떤 특별한 물건을 모아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닌, 내게 특별한 울림을 주는 어떤 물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본질로 하는 순수한 취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민예운동의 창시자이자 예술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의 저서 <수집 이야기> 에서 수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수집이란 심리적으로는 흥미요, 생리적으로는 성벽이다” 라고 규정하며,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능이라고 재미 있게 표현합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아름다운 대상을 사랑하는 행위에서 우리 본래의 진면목을 찾아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수집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 중에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빼고는 대부분을 수집에 쏟아 부어 남들이 즐기는 것들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며 비웃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집으로 인해 빈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자기 자신 이상으로 자신을 몰입하게 하는 것을 찾았다는 증거이며,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물건일지라도 그 물건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야나기 무네요시는 단호히 말합니다. 



수집, 새로운 경험으로의 창문이 되다 


수집을 하는 행위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름의 미학적 가치를 지닌 행위입니다. 이는 수집을 취미로 하는 수집가들에게도 기쁜 평가이겠지만, 모든 취미가 그렇듯이, 수집가들이 어떤 물건에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모으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재미있고, 성취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수집을 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여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쳐가는, 나만이 발견할 수 있는 보물을 찾아 비밀스러운 여행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스타벅스 텀블러를 모으는 제 사촌언니와 일본 도쿄로 여행을 갔을 때, 사촌언니는 스타벅스만 들어가면 피곤한 일정에 지쳐 있던 와중에도 깜짝 놀랄 만큼 신이 나서 일본에만 있다는 텀블러를 구경하기 위해 매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활기차게 재잘대었습니다. 저에게는 그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잠시 들렀던 평범한 장소가, 사촌 언니에게는 그야 말로 보물창고였던 셈이지요. 같은 길을 걷더라도 아끼고 소중한 것들을 찾아 떠나는 수집가들의 발걸음에는 보물을 찾아 나서는 자 특유의 설렘과 쾌활함이 묻어납니다. 


특히 수집가들과 꼭 함께 가봐야 할 곳은 바로 수집가들이 여태까지의 업적을 전시한 그들의 성채 (주로 자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입니다. 몇 년 전, 피규어 대통령으로 불리는 조웅 씨가 블로그에 올린 <스타워즈> 시리즈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전시한 집안 사진이 한참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요. 그의 사진만 보아도, 그의 열정과 거쳐온 험난한 역사가 보이는 듯 합니다. 거의 모든 수집가들은 이처럼 수집한 물건을 전시하는 공간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수집가들은 모두 더 이상 소중한 컬렉션을 전시할 공간이 없는 문제를 모두 한 번씩 겪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결국 다른 물건을 둘 곳이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지만, 발품을 팔아 열심히 모은 수집품들을 집에 두고 틈이 날 때마다 감상하며 뿌듯함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데에 비견하면 사소한 문제입니다. 박영태 씨 역시 이때의 기쁨을 “이 자폐적인 사물과의 독대는 그것들이 발화하는 음성을 듣는 일이자 그 생김새와 색채, 질감을 편애하는 일” 이라고 감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수집은 궁극적으로 보았을 때, 세계의 가치를 높인다는, 큰 보람이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칫 묻혀져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고 사라질 뻔 했던 수많은 물건들이 수집가들의 열정 덕분에 발견되고, 세상에 알려지며, 소중히 지켜집니다. 실제로 박물관의 소장품 중에는 이렇게 개인 수집가의 열정 덕분에 보존된 귀중한 문화재가 전시되는 경우도 왕왕 있답니다. 


수집을 하며 겪는 각종 일화 또한 수집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지고 싶은 물건의 한정판이 나왔다 하면, 그 때부터 수집가들의 전쟁은 시작됩니다. 박균호 선생님이 저술하신 책 <수집의 즐거움>에 실린 일화 중 이와 관련된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축구선수 박지성 씨를 포함한 국내 외 유명인사의 1,300 여장이 넘는 청첩장을 수집한 청첩장 수집가, 문형식 씨의 이야기인데요, 그는 2000년 결혼한 축구스타 안정환의 청첩장을 너무나도 수집하고 싶었던 나머지, 실제로 결혼식장에 찾아가 그곳을 지키던 경호원에게 청첩장을 하나만 구해다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고 합니다. 결국 문형식 씨의 간절함에 경호원이 청첩장을 구해다 주었고, 이후 2002년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수가 활약을 펼칠 때마다 문형식 씨는 그 때의 사건을 떠올리며 누구보다도 기뻐했다고 합니다. 


또한 수집을 하게 되면 국내외의 수집 클럽에 포함된 다른 수집 애호가들과도 많은 교류를 하며, 다양한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주제거리 중 하나인 취미를, 그것도 아주 강하게 공유하니 금방 신나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요즘에는 SNS 의 발달로 쉽게 연락과 소식 공유가 가능해, 해외의 애호가 친구가 한국에 오면 함께 만나 이야기하거나, 애호가끼리 수집품을 교환하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수집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런 소소한 일화들은 또 다른 수집거리가 되어, 소중한 추억거리로 가슴 한 켠에 수집됩니다. 



수집, 특별하게 즐기다 


수집을 즐기다 보면, 처음에는 나 혼자의 소소한 만족을 위해 시작하게 된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먼저 수집한 품목을 나 혼자서만 즐기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블로그 등 플랫폼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다 보면 수집이라는 취미에 대한 편견도 많이 바로 잡을 수 있고, 내가 잘 아는 분야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수집가의 경우 방송이나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거나 자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수집의 특성 상, 전시회에 참석하자는 권유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여가나 수집과 관련된 전시회나, 내가 모으는 물건과 관련된 전시회가 열릴 때, 내 컬렉션을 잠시 대여해 주고, 내가 느낀 즐거움을 전시회를 관람하러 온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보람차고 짜릿한 경험입니다. 나만의 전시회를 열 수도 있습니다. 인물 피규어를 모으는 한 수집가의 경우, 집안 대대로 운영하는 음식점을 아예 하나의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손님들도 재미 있어 하며 입소문이 나 장사가 더욱 잘 되는 예상치 못한 순기능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집의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 책, 펜, 마우스에서부터 심지어 휴지까지도요. 내게 특별히 큰 의미로 다가온 물건이 있다면, 거창하게 있는 대로 다 모으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일 때마다,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사 모아 보세요. 소소한 행복을 채운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수집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컬렉션이 한 켠에 완성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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