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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Jul 12. 2016

번역, 자유롭게 언어의 뜰을 노니다

#23 아주 특별한 스물세번째 취미이야기_번역 

    

갓 내린 블랙 커피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안경을 쓴 채 어지럽게 적혀 있는 외국어 원본을 보며 미간에는 살짝 주름을 잡은 채 타자를 두드리는 모습은 제 로망속의 이지적인 번역가의 모습이랍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짙게 내려온 다크써클과 과부하된 뇌를 굴리며 세상 모든 언어를 저주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하는 이들은 참 멋집니다. 요즘 말하는 뇌섹남, 뇌섹녀의 위엄이 풍긴달까요. 글로벌 시대를 맞아 다양한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외국어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는 오늘날, 이국의 언어를 읽고 해석할 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우리가 익숙한 언어로 멋드러지게 옮겨 오는 번역이라는 행위는 외국어로 인해 고통 받는 많은 이들의 로망입니다. 언어라는 광대한 뜰을 자유롭게 노니는 번역에는,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치환하는 것 이상의 매력과 의미가 있습니다.      



번역, 제 2의 창작  


흔히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고들 합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단어는 “창작” 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번역을 단순히 외국어로 적힌 문장을 그대로 한국어로, 혹은 그 반대로 옮기는 기계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랍니다. 오히려 번역은 경우에 따라 오히려 순수 창작보다도 더 많은 고뇌를 거쳐 번역가 고유의 방식으로 원문 텍스트를 해석하고, 이를 새로운 언어로 재해석 해내는, 번역가의 가치관과 철학이 반영되는 작업이랍니다. 


외국어를 배워 보신 분은 모두 동감하시겠지만, 서로 다른 두 언어 간의 차이란 생각 외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관습, 가치관과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타국에서 생활한지 몇 년이 지나도, 나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문화에 완전히 스며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전혀 다른 체계, 표현, 발음을 가진 외국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흔히 배우는 영어만 해도, 발음과 문자는 둘째 치고, 같은 상황을 표현할 때도 전혀 다른 체계와 가치관에 따르지요. 단어 하나만 가지고 보더라도, “순둥순둥하다” 라는 말에 완벽하게 해당되는 외국어를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영어로 불투명하다는 뜻의 “opaque,” 일본어로 귀엽다는 뜻의 “可愛い 카와이,” 중국어로 즐겁다는 뜻의 “ 콰이러” 등 단어들은 일단 번역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단어가 담고 있는 세심한 문화적 맥락까지 완벽히 포착해서 치환하기는 어렵습니다. 


번역이란 바로 이런 차이를 최대한 극복하고, 서로 다른 두 문화권 사이에 가장 편안한 다리를 놓는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참된 번역을 위해서는 단순히 외국어를 연마할 뿐만 아니라, 외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 또한 이해하기 위해 끊임 없는 노력을 기울어야 합니다. 원문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파악한 뒤에야, 이를 전혀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3초 만에 끝낼 수 있는 번역도 있는가 하면, 문화적 맥락을 읽어내는 게 관건인 문학작품의 경우, 몇 년을 고뇌한 후에야 내놓는 번역작품도 있습니다. 또한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이해 또한 커야 함은 물론이겠지요. 


번역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직역과 의역인데요, 직역은 외국어로 쓰여진 내용을 다른 언어로 원문 그대로의 의미를 살려 정확하게 옮기는 데에 중점을 둔 번역 방식이고, 의역은 그 뜻을 세밀하게 옮기기 보다는 우리나라 언어로 표현했을 때 조금 더 매끄러운 느낌이 들고, 전체적인 맥락에도 더 잘 맞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둔 번역 방식입니다. 조원미 저의 <번역, 이럴 땐 이렇게> 라는 서적에 나온 예를 들자면, “You can’t find anything wrong with him.”은 직역하면 ‘너는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찾을 수 없다.’입니다. 하지만 의역을 하면 “그는 털어서 먼지 날 게 없는 사람이다.” 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요. 전혀 다른 표현이지만 의미는 비슷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어떤 방식으로 번역을 할 지는, 그 때 그 때의 맥락과 번역가 개인의 판단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번역을 하는 우리가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입니다. 우리의 판단에 따라 가장 아름답게, 혹은 정확하게 구절을 표현하는 게 번역이니까요. 


번역, 언어를 사랑하는 이들의 까탈스런 취미 


“위 글을 읽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데, 대체 이걸 왜 취미로 하는 거야?” 라는 질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레가 그렇듯이, 수많은 규율과 절제 안에서 완벽을 찾는 모든 과정에는 결벽함이 느껴질 정도의 숭고함, 스스로에게 제약을 가하며 느끼는 성취감, 그리고 깐깐하고 까탈스럽게 완벽을 추구하면서 은밀하게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답니다. 번역도 마찬가지에요. 


앞서 “번역은 원문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파악한 뒤에야, 이를 전혀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언어로 재창조해 내는 것” 이라고 서술했는 데요, 이 말대로 번역을 하면 귀중한 지식과 감성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까탈스러울 정도로 파고 드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위트 있는 문장에는 놀라울 정도로 수 많은 지혜가 압축되어 있어서, 향과 색과 맛을 곰곰히 음미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와인처럼, 입 안으로 문장의 의미를 다시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문장 속에 알알이 박혀 있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번역은 또한 언어로써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취미입니다. 번역을 하는 내내, 우리는 머릿 속으로 치열하게 내가 이해한 개념과 가장 알맞은 단어와 가장 알맞은 문장은 어떤 것인지 고뇌하며 스파크를 튀깁니다. 마침내 가장 적합한 재료를 찾아, 나의 심미안에 맞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간결한 모양으로 빚어 마지막으로 다듬어 내 놓을 때의 기쁨이란, 공들여 빚은 조각상을 내놓는 기쁨과도 닮아 있습니다. 


최근에는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번역을 함께 취미로 병행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이 또한 좋은 생각입니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이 외국어와 모국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요, 두 언어를 읽고 뜯고 맛보고 씹는 모든 까탈스러운 과정을 거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표현력도 풍부해지고, 문장의 핵심 의미를 파악하는 이해력, 그리고 이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는 과정에서 논리력 또한 훈련할 수 있지요. 막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경우에는 번역을 시작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외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이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번역을 취미로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마지막으로 번역은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봉사자의 기쁨 또한 선사합니다. 번역 자체가 주는 즐거움 외에도, 내가 번역한 작업물을 본 누군가가, 혼자서는 알 수 없었던 지식과 정보를 알고 기뻐할 때, 번역 작업은 취미 그 이상의 보람찬 의미로 가슴에 남게 됩니다.     

 

번역, 특별하게 즐기다 


번역 실력을 높이기 위한 팁 

모국어가 한국어인 사람들에게,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보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당연히 더 까다롭고 어렵습니다.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잘 할 수 있는 팁에 대해서는 다양한 제안이 있지만, 많은 숙련된 번역전문가 분들은 우선 외국어 원문을 읽을 때, 그저 의미를 이해하는 선에서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원문에서 사용한 표현과 문장 구조를 습득하는 데 집중하라고 충고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보의 습득에서 나아가, 표현까지도 습득을 해야 이를 내 것으로 만들어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표현들은 연습장에 정리해서 반복해서 연습하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합니다. 이 외에도 번역이 잘 된 외국어와 한국어 텍스트를 나란히 놓고, 두 표현 방식을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도 번역 실력을 늘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자격증 

번역능력인정시험 (TCT) (http://www.kst-tct.org/index.php)

: 한국 번역가 협회 주관하는 번역 자격증 시험으로, 매년 3,7,11월에 개최되며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총 7개 국어에 한해 실시합니다. 시험급수는 1급에서 3급까지 있으며, 급수 별로 다른 시험에 응시해야 합니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경제경영,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번역 능력을 시험합니다. 

Interpretation Translation Test (ITT)

 : 국제통역번역협회에서 주관하는 번역 자격증 시험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베트남어, 필리핀어 총 11개 국어에 한해 실시합니다. 전문번역 1,2급 자격증, 비즈니스 번역 1,2급 자격증 그리고 비즈니스 번역 3급 자격증 시험이 따로 있으며, 전문 번역 1,2급 자격증과 비즈니스 번역 1,2급 자격증의 경우 공통된 시험을 본 성적에 따라 1,2 급이 나누어집니다. 인문사회, 경제경영, 과학기술, 기업직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번역 능력을 시험합니다. 


아르바이트 

번역은 수요가 많은 능력이기도 합니다.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 정해진 데드라인 내에서 내가 편한 시간에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해가며 장소에도 제약 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되니 취미도 즐기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장 흔한 방법으로는 인맥을 통해 구하는 방법 외에도 알바몬과 알바천국 등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 번역 관련 아르바이트에 지원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용무에서부터 회사 법인의 일까지, 다양한 일들이 많고 보수도 천차 만별이랍니다. 이력서를 올리기 전 팁은, 공식적으로 일을 받아 번역해 본 경험이 없다고 해서 무작정 번역 경험이 없다고 적지 말고, 몇 번이라도 스스로 기사 및 서적 번역 작업을 해보고 이 사항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번역 작업을 완수해 보면서 실력을 늘리고 경험을 쌓기에도 좋고, 고용주 입장에서도 한 번이라도 더 번역 경험을 많이 한 사람에게 신뢰가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매 번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는 데 소진되는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아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번역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번역 에이전시에는 번역을 필요로 하는 서류가 수리되면 자율적으로 소속 번역가들에게 분배해주니, 다음 아르바이트를 찾을 걱정을 할 필요 없이 일이 들어온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번역 에이전시에서 프리랜서 번역가를 모집하는 공고가 뜨는 경우도 비정규적이고, 어느 정도 번역에 숙달된 사람들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자체 시험 또한 보는 경우가 있으니 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언어와 문화에 각별한 흥미가 있거나, 외국어 실력을 갈고 닦는 데 큰 관심이 있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번역에 흥미를 느끼셨다면, 내가 좋아하는 짧은 구문부터 번역을 시작해 보세요!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를 감동시킨 아름다운 문장을 타인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그 마음이 있다면 번역은 당신에게 최고의 취미가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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