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BJ, 블로거에 이은 스타 여행가이드가 탄생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아는 "스타" 란 대부분 매스미디어에 방영되는 가수, 배우, MC, 개그맨 등 연예인 및 운동선수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지겹게 들어왔듯이, 시대는 빠르게 바뀌었고, 그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건 각종 SNS 및 플랫폼의 발달입니다.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문화권력은 점차 TV, 신문, 잡지로 대표되던 매스미디어에서 개인 크리에이터들에게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하루에 3천만원도 번다는 아프리카 스타 BJ들, 유튜버들, 블로거들은 개별화된 채널을 통해 사용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공략해 연예인 못지 않은, 혹은 연예인보다 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요. 그 컨텐츠의 종류도 점점 매우 세분화되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스타 BJ, 스타 인스타그래머, 스타 블로거는 많은데, 가까운 미래에 스타 여행가이드도 탄생하지 않을까?
스타 여행가이드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건, 단순한 우연이었습니다.
얼마 전 퇴사를 하고 빈둥대던 중, 직장 생활의 로망이었던 여행이 문득 하고 싶더랬죠.
하지만 식상한 패키지 여행이나 그저 그런 먹방 여행은 싫었습니다. 오로지 SNS에 자랑할 좋은 사진을 건지는 걸 목적으로 하는 유적 발찍기는 애초에 논외였고요.
퇴사를 기념하며 평생의 기억에 남을 그런 추억을 만들고 싶었고, 유튜버와 네이버 블로그의 수많은 여행리뷰들을 이잡듯이 뒤지며 어떤 경로를 짜볼까 고민하며 행복한 시간을 지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위에 다들 바빠서 홀로 잉여인 저는 쓸쓸히 여행계획을 접고 집에서 차를 홀짝이고 있지만, 이게 중요한게 아니에욧.
온라인 여행관련 컨텐츠를 찾으면서 느낀 점은, 한국인들, 특히 젊은 20-30세대에게 있어 여행은 더 이상 일생에 몇 번 없는 특별한 기회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어찌나 사람들이 여행에 관심이 많고, 많이 다녔는지, 우리가 들어본 관광지 별로 이미 어떤 리조트가 좋은지, 어떤 음식점이 좋은지,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는 검색만 해봐도 줄줄 나올정도로 리뷰와 컨텐츠가 넘쳐나고, 정보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여행 컨텐츠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크리에이터 및 플랫폼도 늘어나는 추세고요. (저는 딩고트레블, 여행에 미치다, 금요일 밤에 떠나는 남자를 애정합니다.)
이제 20-30대에겐, 단순히 해외의 어딘가를 갔다온 것만으로는 남들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습니다. 다들 한 번씩은 경험해 본, 흔한 이야기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일본의 교토를 다녀 왔다고 얘기했을 때, 많은 직장인 분들은 "아~ 여기 여기 갔다왔어? 아하"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미 대다수가 다녀왔거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어딜 갔는지만 들어도 대강 어떤 경험을 했을지 견적이 나오거든요.
여행이 보편화 된 지금, 이제 많은 20-30대들은 보다 특별한, 본인의 개성이 반영된 스토리가 있는 여행을 원합니다. 하지만 이 점은 아직까지 충족되지 않고 있단 느낌입니다. 기존의 획일화된 패키징 여행은 이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고, 내 입맛에 맞게 자유여행을 기획하려 해도 나름의 어려움은 여전히 있습니다. 가령, 제 경우 미술과 음악에 흥미가 많고, 조용한 거리 및 카페를 좋아해서 여행을 가도 이런 장소를 위주로 동선을 짜고는 하는데, 수많은 리뷰에서, 제가 원하는 미술관, 음악관, 및 조용한 카페에 대한 정보를 뽑아내고 경로를 짜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가이드북의 경우 조금 더 다양한 정보가 있지만, 원체 들어 있는 정보의 양이 많은 지라 한 장소에 대해 제가 만족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얻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런 정보의 부족을 휼륭히 해결해주면서, 여행에 특별한 이야기까지 얹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여행계획을 짜주고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평범한 여행가이드보다 더 돈을 주고서라도 고용하고 싶다면? 이런 경험이 쌓여서 그 사람이 유명해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과 하루 여행을 하기 위해 경쟁하고 싶다면? 그 날이 바로 스타 여행가이드가 탄생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요.
아래는 제가 상상해 본, 가까운 미래에 탄생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가이드의 특징입니다.
우선, 이 새로운 여행가이드들은 본인의 SNS 를 통해 개인적인 매력을 보여주며, 이들에게 가이드를 부탁하고 싶은 고객과 1:1 프리랜서 형태로 유동성 있게 계약을 맺을 것 같아요. 여행사에 소속되거나 계약을 맺은 기존 여행가이드와는 달리, 수익을 온전히 챙길 수 있으며, 계약 형태도 훨씬 자유롭게 협의할 수 있지요. 하지만 기존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고객들이 굳이 한 개인에게 가이드를 의뢰할 이유가 크게 없었고, 그렇기에 꾸준한 의뢰가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SNS 를 통해 강력한 본인만의 개성과 컨텐츠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 개인 여행가이드들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위해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독특하게 포지셔닝할 것인지, 개인 브랜딩을 어떤 컨셉으로 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한 가지 테마의 여행가이드를 전문으로 브랜딩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경희궁을 안내한다 해도 "경희궁 미술이야기" 를 주제로 주변 미술관도 가고, 관련 유적지도 다니면서 미술작품과 연관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술에 특화된 여행가이드가 있었으면 하네요. 그 분야는 실로 다양할 듯 한데, 미술 중에서도 특정 분야 미술만 팔 수도 있고, 먹방을 테마로 할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오락일수도 있고, 클럽일 수도 있고, 특정한 분위기를 테마로 할 수도 있겠지요. 이 외에 누군가는 미친 드립력으로 승부를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빼어난 미모 (부럽네요) 로 승부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컨셉을 정했다면, 자신의 USP (Unique Selling Point) 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탄탄한 컨텐츠를 개인 SNS 에 계속 업로드하면서 꾸준히 브랜딩을 하는 일이 스타 여행가이드들의 중요한 일과가 될 것입니다. 본인은 어떤 테마의 여행을 추천하는지 보여주는 여행컨텐츠도 올리고, 어떤 특별한 여행 플랜을 짰는지, 그간 가이드 했던 여행스토리 및 후기 등을 올려야 새로운 고객이 이를 보고 유입이 되겠지요. 고객들에게 여행 후기를 써주면 10% 할인한다는 마케팅 행사도 보편화될 것 같네요.
여행컨텐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성격 및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컨텐츠도 자주 올려야, 사람들이 보고 이 사람이 대강 어떤 취향과 성격, 특징을 지닌 사람인지 알고 친밀감과 신뢰감을 품을 수 있을 듯 합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꾸준히 리뷰한다던지, 소개한 장소에 직접 가서 특별한 미션을 수행해 본다던지, 하는 식으로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는 거지요. 만약 책을 아주 좋아하는 손님의 경우, 본인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열성적으로 리뷰해 놓은 사람을 보면 몇 배의 호감도를 느끼게 되고,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을 같이 있게 될 가이드라면 당연히 그 사람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여행컨텐츠보다 다른 주제의 컨텐츠들을 훨씬 주기적으로 올리는 것도 하나의 전략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본인의 개인 블로그나 SNS 채널은 물론이지만, 최근 굉장히 활성화된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도 활달하게 활용할 것 같습니다. 에어비앤비에서도 숙소 예약 외에 다양한 소셜 액티비티를 예약하고 즐길 수 있는 걸 아셨나요? 제 지인분은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셔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도 예약하고, 하루 동안 직접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하고 정통 이탈리아식으로 파스타를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했는데,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에도 점점 특화된 여행 프로그램이 많아질 것입니다.
온라인 브랜딩에 기반하여 여행 의뢰를 받는다면, 그 형태는 크게 개인 여행가이드들은 그 다음 가이드 플랜을 짜서 의뢰인들에게 보여주고 동의를 얻는 "맞춤형 여행 가이드" 와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짠 몇 가지 가이드 루트를 짠 패키지를 올려놓고 블로그 상으로 신청을 받는 "패키지 형태" 로 개개인간 계약이 체결될 듯 합니다. 자유롭게 상상해 보자면, "맞춤형 여행 가이드" 의 경우, 아무래도 단가가 더 비싸고, "패키지 형태" 의 경우에는 요금은 정해져 있지만, N명 이상의 인원이 신청을 해야만 시작이 될 것 같네요.
좀 더 나아가서 망상을 해보자면, 당초의 주제가 "스타 여행가이드" 였던 고로, 단순히 개인 여행가이드가 아닌, 스타 여행가이드는 또 어떤 모습일까도 생각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무리 컨텐츠가 특이해도,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주고객이 같은 한국인일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언어와 지리에 이미 익숙한 한국인들은, 정보만 알면 가이드가 필요 없죠. 그렇기에 주고객은 한국어를 못하며, 한국에 익숙하지 않고 배경지식이 많이 없는 외국인들이 대다수일 것 같습니다. 고로, 유창한 외국어 능력은 여전히 가이드의 필수항목일듯 합니다. 혹은, 한국인 가이드가 외국에 가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가이드 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요.
외국인 고객들이 계속 찾도록 매력적인 가이드로 자리매김하면, BJ 나 유명 컨텐츠 크리에이터들처럼 기업과 협찬을 맺는 것도 큰 수입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정 기업 상품과 관련한 여행 테마를 기획할 수도 있고, 협찬 가이드를 통해 해당 물품을 구입하면 더 저렴해지는 등, 협찬 방법은 굉장히 다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한 가이드가 버는 상업적 규모가 커지면, 현재 BJ 에이전시처럼 가이드 에이전시 및 전용 플랫폼이 많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네요. 이미 개성있는 몇몇 가이드 플랫폼은 여기저기 많이 보이고 있어요.
5년 후, 이름을 대면 한국에 여행을 오는 외국인들이 누구나 '앗 저 알아요' 라고 하는 스타 여행가이드가 생겨 있는 것도, 은근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상 오늘의 즐거운 뇌내망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