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탐구토끼 Jun 13. 2019

잘 하는 것보다, 잘 해 보이는 것

미국인이 사용하는 슬랭이 영어의 "정답"일까요? 

왜 사람들이 이토록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에 집착하는 지, 제 나름의 답을 내리기 위해 우선 저는 영어란 무엇인지를 다시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그간 영어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정리해 보고, 어떤 부분이 현실과 다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영어의 진짜 가치가 보일 것 같았으니까요. 

영어는 초중고 통틀어 3대 필수과목이었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선 필수 자격 요건이기도 하고… 영어 잘하는 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영어 면접을 보기도 하고…

영어와 관련된 경험을 이것저것 되짚고 생각하다 보니, 문득 번뜩이는 게 있었습니다. 

아,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가지는 의미는 이 한 단어로 설명될 수 있구나. 

교양. 

영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지성인의 증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진학이나 취직을 위해 서류를 제출할 때, 해당 전공이나 직무에서 영어를 활용할 일이 많지 않더라도, 영어는 당연히 요구되는데, 교양이기 때문입니다. 

있어 보이게 말하고 싶을 때, 영어를 잔뜩 집어넣은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자신의 지성을 과시하여 신뢰를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교양이기에, 특별히 필요해서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교양을 갖춘 가치 있는 인재임을 인정 받기 위해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영어를 선택한 게 아니라, 사회에서 타인에게 선택받기 위해 영어한테 멱살을 내어줘야 하는 거죠. 

그 첫번째 결과, 우리 모두가 잘 알 듯이 한국인들은 영어 독해 능력은 수준급인데 비해, 영어로 말을 하거나 쓰는 데에는 대부분 불안감을 내비칩니다. 

초중고 내내, 시험으로 출제하여 결과를 측정하기 좋은, 독해 위주의 영어를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교양을 측정해야 그에 맞게 보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흥미를 가진 건 그로 인한 또 다른 결과였습니다. 

영어가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교양이 되고 스펙이 되자, 영어를 배워서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경지는 내 개성을 살린 나다운 영어체를 계발하는 것이 아닌, 잘해 "보이는" 영어를 계발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 잘해 "보이는" 영어는, 그보다 못하다고 칭할 수 있는 영어가 있어야 성립하겠지요. 

여기에서 다시, “정답이 있는” 영어관이 태어났습니다. 

재미 있는 건 이 영어의 “정답”이란, 주로 미국인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정의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인스타그램이었는지, 유튜브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한 외국인(미국인)이 광고에 뿅 튀어나와서 누군가가 쓴 영어 표현을 보곤, ‘쯧쯧쯧’ 하고 가소롭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더니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영어는 틀렸어요! 미국에서는 요렇게 말한답니다.” 

라고 하면서, 미국인들이 자주 쓰는 슬랭 표현을 알려주더라고요.



그런데 미국인들 사이에서 유행인 슬랭이 왜 단 하나의 정답인걸까요.

미국에서도 누군가는 슬랭 표현을 쓰는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아닐 겁니다. 

거기에다 영어는 미국에서만 쓰는 언어가 아닙니다.  

우리가 영어가 쓸모 있다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에서 가장 통용될 확률이 높은 언어이기 때문이지요.

언어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합의된 최소한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 건 맞습니다. 

문법을 파괴하거나, 단어를 혼동하면 읽는 사람들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언어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광고에서 틀리다고 표현한 원래 문장은 문법적으로든 뭐든 크게 하자가 없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틀리다”라는 표현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이 하나뿐이던가요? 

표현에 답이 있다는 태도는 수많은 예술작품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로 말할 때에도 우리는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고, 그렇기에 다양한 이야기와 개성이 만들어지는 걸 텐데요. 

아래의 예를 봐주세요. 


“네가 어제 나한테 화를 낸 이유를 잘 모르겠어.”

“어제 너 왜 빡쳤어?”


이 두 문장은 모두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빡쳤다’는 말이 10대, 20대가 자주 쓰는 말이고 거친 어조를 표현한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두번째 표현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엄연히 사용자의 개성과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 표현은 나름대로의 개성과 맥락을 담고 있고, 훌륭히 언어로서 기능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표현을 영어로 번역하면, 당연히 다르게 표현될 겁니다. 


“You were so mad at me yesterday, but I still don’t know why.” 

“What pissed you off yesterday? 


이 둘 중 정답은 없습니다. 

건조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대화라면 첫번째 대사가, 캐쥬얼한 대화에는 두번째 대사가 더 잘 어울리겠지요. 

보다 세련되고 멋지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표현 또한 끊임 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위대한 문장가, 연설가, 작가들 또한 그렇게 했지요. 

다만 그 목적은 “모두가 인정하는 절대적인 정답” (그리고 그 정답은 미국인들끼리 자주 쓰는 속어)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빛나게 해주는 표현을 찾는 데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남들 보기에 제일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결점이 없어 보이는 “정답 영어”를 가르쳐 준다는 식의 태도는 오지선다 시험이라는 단순한 시스템과 논리가 비슷해 보입니다. 

사실 오히려 마음은 더 편할 수 있어요. ‘아, 그냥 저 미국인처럼 보이면 되는거구나.’ 하고 열심히 따라하면 되니까요. 

그치만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게 굴러갔으면 세상살이 차라리 쉬웠겠죠…  

나와 세상은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지보다 훨씬, 훠어어얼씬 복잡하더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표현의 가짓수처럼요. 


영어로 말하는 순간 캐릭터가 붕괴될 수 있어요

언어는 답이 정해진 수학문제가 아니라, 구성하기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생각을 벼려서 예리한 메시지를 깎아내고, 이를 다시 언어라는 실로 자아내어 사람들에게 던질 때, 나라는 개인이 표현되고 다른 누군가가 이 실을 물면서, 진정한 소통의 즐거움이 생겨나겠지요. 

영어의 고급단계에 있는 분들이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사실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도구가 있다고 흐뭇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도구를 잘 “쓰는” 방법을 고뇌하고, 

또 그 “잘 쓴다”의 기준이 “보다 있어보이게” 가 아니라, 보다 “나답고 핵심을 잘 표현하는” 것에 있도록, 예술가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공부하는 번역전문대학원에서는, 같은 문장을 두고 여러 명이 토론하며, 어떤 영어 표현이 원래의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본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심을 거쳐 나와, 개성이 묻어 있는 표현은 타인에게 몇 배는 더 큰 위력으로 날아갑니다.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수도 없이 좌절하면서, “내 생각을 예리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어 표현하기 공부”에 몇 년 간 목말라 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지라, 아예 직접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런칭하기에 이르렀네요. 절박한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https://brunch.co.kr/@micamica199/73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날, (전)직장인은 영어의 멱살을 잡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