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주 특별한 다섯 번째 취미 이야기_체스
두 왕은 서로를 고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전쟁으로, 양 국 모두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 이제 두 왕의 곁을 지키는 것은 아리따운 왕비들과, 몇 남지 않은 기사들과 충직한 신하들 뿐이었다. 사위는 고요했다. 바야흐로 폭풍 전야와 같이, 마주 보고 있는 두 왕 사이에는 숨 막힐 듯한 긴장감만이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흐르고 있었다. "때가 왔는가..." 검은 왕관을 쓰고 검은 로브와 검은 갑옷을 입은, 온통 검은 색으로 뒤덥힌 왕이 읊조렸다. 그가 예리한 눈으로 주위 신하들을 보자, 왕의 뜻을 즉시 이해한 기사 하나가 검은 말을 타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적군의 병사들을 가볍게 뛰어넘는 그 모습은 가히 진정한 기사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얀 왕관을 쓴 적의 왕을 치려던 직전, 흑의 기사는 아쉽게 멈춰야만 했다. "쯧..." 검은 왕이 안타까운 듯 혀를 한 번 찼으나, 그는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앞으로 멍청한 적국의 왕이 어떤 움직임을 취하던, 그는 다음 번 공격으로 적의 명줄을 끊을 수 있는 것이다. '잘 가라, 오랜 적이여.... 윽?!' 승리를 확신하던 그의 가슴에 은빛 칼날이 박힌 채 피를 머금고 빛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천천히 돌아본 왕의 눈에는, 칼을 든 채 요염하게 웃고 있는 하얀 여왕이 서 있었다. 그리고 여왕은 말한다, "체크메이트."
재밌게 읽으셨나요? 오늘은 한 편의 전쟁 대하 스릴러... 등등 여러 가지 장르가 뒤섞인듯한 소설처럼 글을 시작해 보았는데요, 위 이야기는 사실 오늘 글에서 다룰 주제, 체스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서로 싸우는 두 개의 국가는 두 명의 체스 플레이어, 백군과 흑군은 각각 화이트 피스(말)와 블랙 피스를 의미하죠. 체스는 서양의 장기라고도 불리는 놀이로, 소설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다뤄졌기에 그 이름을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요, 실제로 플레이해보셨거나 룰을 이해하시는 분은 그중에서도 적은 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에서는 종종 지적인 취미로 등장하는 체스, 과연 어떤 게임인지, 또 얼마나 매력적인 취미가 될 수 있을지, 이번 글에서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체스의 기원은 7세기 이전, 인도에서 즐기던 샤투랑가(chaturanga)라는 게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후, 15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하며 그 기틀이 잡히고, 19세기 유럽에서는 현재 알려진 규칙이 제정되었습니다.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체스는 귀족 문화의 일부로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체스를 통해 전략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왕의 게임"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요. 귀족들은 체스를 놓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사회의 도덕성에 대해 논하기도 했답니다. 체스의 각각의 피스는 각 계급의 사람들을 상징했으며, 말이 움직이는 규칙 혹은 체스 피스의 모양을 두고 인간이 지켜야 할 사회적 의무를 연상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 귀족들이 사용했던 체스 피스는 현대의 단순한 모양이 아닌, 말의 성격을 디테일하게 표현하여 하나하나 정성 들여 제작한 고급품이었답니다. 중세 유럽 귀족들이 얼마나 체스를 실제 인간 사회와 연관 지어 생각했는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죠.
18세기 계몽시대에 들어서서는, 체스는 자기계발의 한 방법으로 여겨지기도 했답니다. 그 유명한 미국의 정치가, 외교가,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의 에세이, <체스의 교훈 On the morals of chess>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답니다.
"체스는 그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우리는 체스로부터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배우고 이를 단련할 수 있다. 인생은 체스와도 같다. 얻어야 하는 것이 있고,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나 적이 있고, 우리의 신중함과 욕망으로 인해 다양한 좋고 나쁜 일이 벌어진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체스로부터 배울 수 있는 3가지 중요한 덕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통찰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상대가 다음에 어떤 수를 취할지를 늘 생각하며 전략을 구상해야 하기 때문에, 체스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미래를 예상하는 통찰력이 필수적이죠. 두 번째로는, 관찰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체스를 플레이하는 도중, 플레이어들은 현재 각 피스는 어느 자리에 위치해 있고, 서로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색하며 상황을 분석해야 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피스들의 관계를 놓치게 되면, 그 다음 수는 돌이킬 수 없답니다. 마지막으로, 주의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참지 못하고 확실한 계획 없이 피스를 움직여 버리면 십중팔구 지기 마련이죠. 성급한 판단은 실수를 불러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체스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체스를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룰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 글의 설명을 읽고 한 번에 체스를 플레이하는 법을 이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직접 해보지도 않은 게임의 복잡한 규칙을 글로 아무리 상세히 설명해 드린다고 해도 한 번 직접 게임을 해 보는 것처럼 바로 이해가 될 리가 만무하죠. 여기서의 설명은 그저 "아, 체스가 대충 이런 게임이겠구나"라고 감을 잡는 정도로만 생각하시고 가볍게 읽어 내려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셔서 다시 직접 체스를 플레이해보면서 차근차근 룰을 익히면 훨씬 더 수월하게 익히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규칙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체스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상대편의 "킹"이라는 피스를 잡으면 승리하는 단순한 승리규칙을 가진 게임입니다. 두 명의 플레이어는 각각 화이트, 혹은 블랙으로 편을 정하고, 화이트를 택한 사람은 16개의 흰색 피스로, 블랙을 택한 사람은 16개의 검은색 피스로 각각 번갈아가며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각 피스를 배치하는 방법은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알파벳과 숫자가 쓰여진 체크 판 무늬의 체스 보드에 위 그림과 같이 피스들을 배열해 놓아야 하는 데요, 각 체크 무늬를 한 칸으로 보고, 이는 체스 피스가 움직이는 기본 단위가 됩니다. 세로와 가로에 쓰여진 알파벳과 숫자는 각 칸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편의상 설치한 좌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 피스 중 하나는 2A 에 있어"라고 생각하는 식으로요. 그림을 보시다 보면, 하얀색과 검은색 피스들로 나눠진다는 것 외에도, 같은 색의 피스들도 서로 모양이 다른 것을 보실 수 있는데요, 이는 체스 피스에도 종류가 있고, 각 피스는 고유의 규칙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체스 피스에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총 6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왼쪽부터 킹, 퀸, 비숍, 나이트, 룩, 그리고 폰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킹, " 즉 왕은, 아까 말했듯이 게임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입니다. 내 편의 "킹" 이 잡혀버리면, 체크메이트라고 해서 그 게임을 지게 되니까요. 킹은 앞, 옆, 뒤, 대각선 어느 방향이든 한 칸을 전진할 수 있습니다. 퀸은 왕비를 뜻하는 피스로, 체스 게임 중 가장 강력한 피스입니다. 원하는 어느 방향이든 칸에 제약 없이 진격할 수 있습니다. 퀸이 이렇게 강력한 파워를 지니게 된 것은 15세기부터인데요, 워낙 강력한 피스이다 보니 현대 체스는 "퀸스 체스 (Queen's chess)" 또는 "미친 여왕의 체스" 로도 불린답니다. 비숍은 주교를 뜻하는 피스로, 대각선 방향으로 원하는 칸만큼 전진할 수 있습니다. 나이트는 기사를 뜻하는 피스로, 중세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다닌 것을 표시하기 위해 말 머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L자 모양으로 수직/수평으로 두 칸 간 후 대각선 방향 (오른쪽 대각선이든 왼쪽 대각선이든 상관없이) 한 칸을 갈 수 있습니다. 룩은 성을 뜻하는 피스로, 성 모양을 하고 있지요. 룩은 수직 혹은 수평 방향으로 원하는 칸 수 만큼 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폰은 장기의 졸(卒)과 같은 피스로, 처음 시작할 때는 두 칸 혹은 한 칸, 그 이후에는 기본적으로 앞으로 한 칸 씩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대각선 한 칸 앞에 적의 피스가 놓여 있다면, 그 피스를 잡기 위해서 대각선으로 한 칸 움직이는 게 허용되지요.
이제 각 피스의 성질도 알았으니, 다음 6가지 규칙에만 유의해 주세요.
1. 내 차례당, 한 피스 씩만을 움직일 수 있으며, 한 칸에 두 개의 피스가 있을 수 없습니다.
2. 내 차례가 오면, 피스들 중 하나를 신중하게 골라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움직여야 할지를 정합니다. 피스의 움직임을 멈춘 마지막 칸에 적의 피스가 있다면, 그 피스는 내가 잡은 것으로, 체스 보드에서 제외됩니다. 룩이나 퀸, 비숍의 경우, 내가 나아가는 방향에 적의 피스가 있다면, 그 피스를 잡은 후 그 자리에 멈춰야 합니다. 적의 피스를 잡고도 끝 간데 없이 계속 나아갈 수 없습니다.
3. 시작은 화이트 피스가 먼저 하며, 양 플레이어 모두 가장 처음 수를 둘 때에는 폰을 한 칸 혹은 두 칸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만약 가장 처음에 폰이 아닌 다른 피스를 움직이거나, 폰을 한 칸만 앞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면, 폰을 두 칸 움직일 수 있는 처음 한 번의 기회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게 되는 거죠.
4. 나이트나 킹, 폰 같은 경우에는 움직일 수 있는 칸 수가 정해져 있어서 방향만 고민하면 되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로막은 다른 피스가 없다면, 칸 수에 제약이 없는 퀸이나 비숍, 룩 같은 경우에는 몇 칸을 갈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5. 아무리 상대편 말을 많이 잡았더라도, 우리 편 킹이 잡히면 나의 패배로 게임 끝!
6. 상대편 말을 잡을 때, "체크 메이트!"라고 유쾌하게 외쳐줍니다.
나름 이해가 쉽도록 간략하게 설명드리려고 했는데, 쭉 써놓고 보니 내용이 꽤 길어졌네요. 이 외에도 캐슬링이라던지, 앙파상이라던지, 다른 예외적인 규칙도 많지만, 너무 세부적인 규칙이기에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하고, 나중에 체스에 능숙해지시면 숙지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여태까지 쭉 설명한 내용만으로 체스를 플레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신다면 저는 아주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당) 모름지기 게임은 직접 해보면서 익혀야지요. 위 설명이 여러분이 처음 체스를 시작할 때 이해를 원활히 하는 정도의 도움이 되길 바래요!
저는 체스를 저희 동생한테서 처음 배웠답니다. 동생이 어느 날 체스 세트를 사와서는 가르쳐 줄 테니 함께해보자며 꼬시더군요. 그리고 결과는... 참패였답니다. 평소 생각이 굉장한 단순한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앞에 잡을 수 있는 피스가 있으면 다 잡으면서 흡족해하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킹을 체크메이트 당하고 말았어요... 하.. 그때의 허무함이란. 반면 동생은 제가 어떤 수를 둘지도 모두 예측하면서 두더군요. 그러던 사이, 제가 미처 제 킹이 어떤 위험에 빠져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때, 동생은 제 킹을 잔인하게 쳐부셨습니다. 흑흑. 체스가 극도의 주의력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전략 게임이란 것을 그때 절절히 느꼈습니다.
앞서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생은 체스와도 같다" 고 했는데요, 저도 체스를 플레이하며, 이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체스를 하면 플레이어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지가 보이는 것 같아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위험에 어떻게 대비하는지, 직감으로 움직이는지 치밀한 이중삼중의 전략을 세우고 움직이는지,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각종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는 듯했습니다. 물론 실제 삶에는 단지 승리를 목표로 하는 체스와는 달리, 다양한 목적과 훨씬 더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굳이 말하자면 체스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겪게 되는 전쟁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원하는 것이 생기고, 이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치게 됩니다. 체스의 피스들은 내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수단이고, 체스에서 승리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 수단들을 버무려 하나의 큰 그림으로 완성시키는 예술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저는 체스를 플레이하며 나름 제 자신에 대해 반성도 많이 했답니다. 아, 내가 그동안 앞에 보이는 작은 성과만 급히 좇다가, 정작 꼭 이뤄야 할 큰 목표는 놓친 적이 없을까... 하고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취미였습니다.
체스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체스판과, 나와 함께 체스를 둘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되죠. 체스판은 그 종류와 가격이 다양한데요, 다이소에서 파는 2000원짜리 미니 체스판부터 예전에 중세 귀족들이 사용하던 것처럼 하나하나의 피스를 정성스레 조각한 값비싼 세트까지, 다양한 체스판이 있으니, 본인의 취향과 형편에 맞는 체스판을 구매하시면 됩니다. 혹은 체스판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 같아요. 64칸의 체스보드와 18개의 피스만 있으면 되니,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나만의 체스판을 만드는 거죠. 이도 저도 귀찮다 하시면, 온라인 게임으로도 즐기실 수 있답니다. 체스 동호회에 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주위에서 체스를 즐기는 친구를 찾기 어렵거나, 체스에 진지하게 함께 몰입할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면 체스 동호회 만한 것이 없지요. 인터넷 커뮤니티 검색이나 동호회 앱을 통해 체스 동호회에 가입하셔서 정기적으로 체스를 즐기면 절로 실력이 향상될 것 같네요. 취미가 맞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건 덤이고요.
일상에서 불꽃 튀는 스릴과 한 편의 예술 같은 승리를 쟁취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그로부터 삶과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얻고 싶으시다면,
체스, 이 고요한 작은 전쟁에 뛰어들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참고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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