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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Sep 29. 2015

기사의 결투, 서양의 검술

#6 아주 특별한 여섯 번째 취미 이야기_펜싱

챙챙챙챙,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이던, 중국의 무협 영화이던, 검객들이 날카롭게 벼려진 칼을 맞대며 불꽃 튀는 싸움을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현란한 검객들의 칼놀림에, 관객들은 넋을 잃고 스크린을 바라보며 승패가 나는 긴장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국, 일본 영화에 나오는 검객들은 허공을 뛰어다니거나 도포를 휘날리며 팔을 크게 휘둘러 검을 크게 부딪히는 반면, 서양 영화에 나오는 중세 유럽 기사들의 움직임은 보다 민첩하고 가벼우며,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더 적어 보입니다. 이는 영화 속 검객들의 검술이 오늘날 서양의 대표 검술이자, 올림픽 종목이기도 한 펜싱을 모티브로 하기 때문인데요, 펜싱에서는 주로 검으로 상대를 베는 것보단 찌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답니다.



펜싱은 고대 로마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전통있는 스포츠입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실내 스포츠라기 보다는, 실제로 전장에서 적을 베기 위해 사용되는 전투술의 성격이 훨씬 강했지요. 로마의 멸망 이후, 펜싱은 중세 카톨릭 문화권으로 전파되어 많은 검객이 나타나 이를 발전시켰답니다. 펜싱의 발달에 특히 영향이 컸던 나라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인데요, 그 중에서도 스페인은 현대 펜싱이 유래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페인이 유럽 최강대국이던 시절, 스페인을 통해 펜싱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는데요, 18세기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펜싱 아카데미를 통해 그 기틀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펜싱은 이미 귀족의 교양과목으로 사사되었으며, 성격도 전투 검법에서 스포츠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검술, 하면 펜싱을 떠올릴 정도로 보편화되고 사랑 받는 스포츠가 되었지요.


검을 들고 하는 스포츠인데다가, 한국에서는 펜싱교육시설이 그다지 범용화되지 않았기에, 저는 펜싱이야말로 직접 경험한 사람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취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펜싱에 늘 관심은 있었어도, 직접 해 본 적은 없었죠. 그래서 이번 이야기를 위해 특별히 2년 동안 펜싱동아리에서 펜싱을 즐기고 여자단체전 준우승까지 차지했던 대학 펜싱계의 꿈나무, 제 친구 H 양을 초대했습니다! (사실 꿈나무 까지는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펜싱 나뭇가지에 걸린 정도라고 할까요.) 펜싱에 대한 모든 것과 생생한 경험담을 케내기 위해 지난 저녁, H 양에게 케이크와 차를 공물로 바치고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아래에 잡지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보겠습니다.


(Q 가 저, H 가 친구 H  양을 가리킵니다.)

Q : 반갑다. 오랜만이다.

H : 매 주 프랑스어 수업 때문에 지겹게 보는 데 무슨 말이냐.

Q : 안다. 그냥 느낌을 내고 싶었다. 좀 맞춰달라. 쯧. 오늘 글의 주제는 펜싱이라서 그대의 경험담이 듣고 싶었다. 학교 다니는 내내, 펜싱을 하느라 바빴던 걸로 기억하는데, 펜싱을 처음 시작하게 계기는 무엇이었나?

H : 막연히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첫 회식자리에서 고기를 준다길래 따라갔다. 그리곤 잡혀서 2년 동안 펜싱을 하게 됬다.

Q : ... 참 한심한 이유다. 그런데도 2년 동안 꽤 열심히 한 걸 보니, 어떤 의미에서 대단하다.

H : 당신도 딱히 더 나은게 없는 걸로 알고 있다.

Q : (화제를 돌리며) 이제 잡담은 이만 됐으니, 펜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달라. 펜싱의 규칙이라던가, 기본 자세, 종목, 장비 등등에 대해 말해달라.

H : 흠...먼저 펜싱의 종목에 대해 말해보겠다. 펜싱도 쓰는 칼의 종류와 규칙에 따라 3가지 종목이 있다. 플뢰레, 사브르, 엣베인데, 플뢰레는 몸통, 엣베는 전신, 사브르는 상반신 공격만을 인정한다. 또 쓰는 칼도 다르다. 플뢰레와 엣베는 찌르는 공격만 인정하며 비교적 가벼운 칼을 사용한다. 반면 사브르는 칼을 휘두르는 공격도 인정하는데, 칼 무게도 무거운 편이다.


왼쪽부터 사브레, 에페, 플뢰레 용 펜싱 검

Q : 당신은 어느 종목에 출전했는가?

H : 나는 플뢰레에 출전했다. 플뢰레는 앞서 말했듯이 몸통 공격만 인정 되는데, 나는 몸이 작아서 그런 점에서 굉장히 유리했다. 플뢰레를 처음 배울 때, 선배가 무조건 옆으로 비스듬히 서라고 가르쳐 줬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가뜩이나 조그마한데 몸까지 옆으로 기울이니 상대방이 공격할 수 있는 면적이 굉장히 작았다.

Q : 오호. 머리를 잘 썼다. 그렇다면 펜싱의 규칙은 어떻게 되나?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

H :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상대방에게 칼로 유효한 공격을 하는 것, 그게 다다. 3분 3회 동안 경기를 하는데, 공격이 인정 될 때마다 쉬기 때문에 경기가 한 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 펜싱에서 인정하는 기본 자세들, 앙가드 (시작 자세), 마르세 (앞으로 걷는 자세), 롱뻬 (뒤로 후퇴하는 자세), 팡트 (발을 쭉 뻗어 공격하는 자세) 등을 지키며 공격이 인정되는 상대편의 신체 부위에 칼 끝이 닿으면 점수를 얻는다. 이 외에도 통통 뛰거나 달려가거나 앉아서 피하는 등 다양한 자세가 있다.

Q : 취할 수 있는 자세가 참 다양하다. 그런 만큼 생각해야 하는 것도 많다는 얘기겠지.

H : 맞다. 펜싱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스포츠다.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면서, 어떻게 공격할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수법만 너무 자주 쓰면, 상대방이 금방 수를 간파해서 역으로 공격해 오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공격해야 한다.

Q : 그걸 움직이면서 계산하다니, 대단하다. 운동량도 많아 보이던데...

H : 어휴, 엄청나다. 준비운동, 워킹 연습에다 무거운 칼과 더운 옷에 보호장비까지 차고 1시간 반 동안 펜싱을 하다 보면 땀이 뻘뻘 난다. 또 다리를 구부린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허벅지 근육과 엉덩이 근육에 직통으로 자극을 준다. 처음 펜싱을 했을 때, 허벅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Q : 오호,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렸다. 솔깃하다. 그만큼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혹시 펜싱할 때 칼로 맞으면 아픈가?

H : 생각보다 아프다. 비록 칼 끝의 면적이 작고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지만,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기 때문에 따가운 느낌이다. 특히 잘못해서 머리를 맞으면, 뭔가 아프지는 않은데 우롱당한 느낌이 든다. 사브레의 경우, 베는 것도 허용되는데, 한 번 맞아봤다. 채찍으로 맞는 느낌이었다. 아, 참, 보호장비를 꼭 착용하시길. 언젠가 선배들이 계속 양말을 신고 연습하라고 했는데, 양말을 신고 오지 않아서 그냥 연습했는데, 상대편 친구가 실수로 내 발을 찔렀다. 아프더라.

Q : 생각보다 터프하다, 당신과 펜싱. 그럼에도 펜싱을 2년이나 계속 할 수 있었던, 펜싱의 매력은 무엇인지 얘기해 줄 수 있나?

H : 시간이 정말 금방 간다. 그리고 몸은 힘들지만, 정말 재밌다! 몸과 머리를 함께 전략적으로 쓰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마침내 상대방을 칼로 찔러 포인트를 따낼 때의 쾌감이란! 그 때의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 또 펜싱을 하다 보면, 뭔가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쓸데 없는 잡생각이라던가 고민이 사라지지 않나. 상쾌하다. 함께 펜싱을 하는 동료들과도 무척 친해질 수 있다.

Q : 과연 매력적이다. 나도 요즘 잡생각이 많이 들고, 살도 찌는 것 같아 고민인데, 펜싱을 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는다. 혹시 처음 펜싱을 시작하는 초심자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나?

H : 흠... 나도 전문가는 아니라서 잘난듯이 이것저것 충고하기는 뭣하지만, 뭐든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처음부터 펜싱 칼을 잡고 찌르는 연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본적인 스텝을 제대로 익히는 게 정말 가장 중요하다. 이 스텝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많이 고생한다. 또, 첫 술에 바로 재미를 느낄 거라는 기대를 접어라. 일주일에 2, 3번 정도는 펜싱을 연습해야지 몸이 굳지 않는데, 꾸준히 하나하나 익혀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재미를 느끼고, 푹 빠지는 순간이 온다.

Q : 좋은 충고 고맙다. 오늘 많은 정보를 얻었다. 다시 한 번 고맙다.

H : 글이 나오면 나중에 보여달라. 좋은 글이 나오면 좋겠다.


이상, H 양과의 인터뷰였습니다.

좋은 정보를 준 H 양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펜싱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혼자서 단련하기에는 어렵고, 펜싱 동호회나 근처 펜싱 클럽에 가서 배우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칼과 복장도 동호회나 클럽에서 빌리시면 좋은 게, H 양 말로는 칼과 보호복장을 직접 사면 그 가격이 꽤 나간다고 합니다. 성능에 따라 가격도 다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괜찮은 퀄리티의 칼은 20만원 정도, 복장도 20만원 정도 한다고 합니다. 전문 신발도 있는데 이 신발도 10만원 정도 한다고 하네요. H 양의 경우는 칼과 보호복장은 개별로 구매했지만, 전문 신발은 따로 구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펜싱클럽도 많으니 개별 장비 구매는 펜싱에 어느 정도 능숙해지시고 난 다음에 고려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상, 아주 특별한 여섯 번째 취미, 펜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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