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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Sep 29. 2015

달빛 아래, 밤을 걷다

#7 아주 특별한 일곱 번째 취미_밤산책

밤, 내 안에는 오래된 기억들이 넘실거리고, 누구에게라도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감정이 스며들었다가 밀려 나갑니다. 밤, 모두가 잠들고 내일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 나만이 홀로 깨어 오늘의 끝을,  갈무리되지 못한 감정을 부여잡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어둠이 내려 앉고 만물이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이 밤, 홀로 방 안에 앉아 내 안의 감정들에 짓눌리지 마시고, 문을 열고 나와 걸어보세요.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숨겨진 경치가 눈에 들어오고, 세상은 너무나도 새로우며, 지친 마음은 어둠에 안기어 치유받습니다. 비로소 당신은 한결 자유로워진 마음을 품고 돌아와 가라앉듯이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집니다.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인 소설가 길은 약혼녀와 파리로 여행을 왔다가, 약혼녀와 다투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산책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1920년 대의 파리로 가게 되고, 매일 밤 12시, 1920년 대의 파리로 돌아가 헤밍웨이, 달리, 피카소 등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꿈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지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저 정처 없이 어둠이 내려앉은 밤을 헤치며 걷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밤거리를 걷다 보면,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에서처럼,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낭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의 OST 앨범 커버

비록 영화에서처럼 타임 슬립을 해서 시대의 천재들과 조우할 수는 없지만, 밤이 우리에게 새로운 낭만을 선사하는 시간이란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밤은 낮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시간입니다. 낮 동안 바쁘게 움직였던 우리는 밤에는 낮에 썼던 가면을 벗고, 짐을 내려놓고, 내일을 위한 휴식에 들어갑니다. 밤은 오락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낮에는 일로 바빴던 사람들은, 밤에 친구들과 만나, 집 안에서 책을 보며, 새로운 것을 배우며, 여가를 마음껏 즐깁니다. 밤은 나만의 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 사회의 규약에 따르며 나를 억제하고 자제해왔다면, 밤에는 온전히 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숨겨졌던 진실이 달빛에 드러나며, 비밀 아닌 비밀들이 어둠 속에 일제히 꽃을 피우는 시간입니다.


이런 밤, 집에 앉아 내 안의 상처로 침잠해 들어가기 보다는, 문을 열고 나가 밤이라는 낭만 속으로 들어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볍게 몸을 흔들며 생각이 흐르는 대로 걷는 거예요.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내 머리 속의 생각과  가슴속에 남아 있는 감정들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 쌓여 고이게 됩니다. 빠른 속도로 뛸 때는 흔들리는 시야와 턱턱 막히는 숨 때문에 생각들이 정신없이 흩어지고 말지요. 내 페이스에 맞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슬렁슬렁 걸어가다 보면, 머릿속에 쌓여 있던 생각도 내가 걷는 길을  따라 곧게 뻗어나가는 기분이 듭니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라도 좋습니다. 근처의 공원이라던가, 불빛이 밤에도 눈부신 시내 거리라던가, 우리 집 바로 앞의 화단길이라도, 어디든 발걸음이 닿고 생각이 닿는 곳이라면 자유롭게 걸어 보세요. 익숙한 줄만 알았던 우리 동네에서도 의외의 충격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달빛 아래 비친 모노 톤의 우리 동네는, 저마다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발하는 은은한 불빛으로, 고요한 감동을 일으킵니다. 달이 걸려있는 나뭇가지도 보고, 낮에는 들리지 않았던 바람소리도 들어보고, 늦게까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에너지도 느껴보세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삶에 대 성찰을 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요.

조금 특별한 장소로 가는 것도 좋습니다. 서울 외곽의 성곽길을 걷고 있으면 고즈넉한 등불 아래, 한쪽에는 풀벌 우는 소리가, 한쪽에는 도심 전체가 불빛으로 반짝이는 야경  눈에 들어옵니다.  수많을 불빛  하나일 나를 생각하며, 내가 가진 고민은  얼마나 많은 사람 겪었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란한 빛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자면 묘한  려옵니다. 야간 개장한  가는 것도 멋진 경험 되겠지요. 우리나라 전통 미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궁궐에서, 달빛을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노라면, 마치 나라의 미래와 가문의  걱정하던 조선시대의 리라도   기분이 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긴 역사 동안 생각에 잠겨 그 길을 걸어 왔을까요. 그 생각과 고뇌들이 모여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서울 성곽에서 본 야경

저도 개인적으로 밤 산책을 자주 즐기는 편입니다. 수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점수는 오르지 않아 심란할 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나를 덮칠 때,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간관계로 머리가 복잡할 때, 내 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머리 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할 때, 모든 일이 버겁고 지칠 때, 그럴 때마다 저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린 듯이 문을 열고 나가 어둠이 내려 앉은 밤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잔잔한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나름대로의 답안과 마음의 평화를 얻은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한테는 밤산책이 걱정인형과 같은 역할을 해준 것 같아요. 걱정이 많을 때, 걱정인형에게 이것저것 걱정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잠을 청하면 걱정이 다 사라진다고들 하잖아요? 밤산책을 할 때도, 처음 발걸음을 떼면서는, 오늘 하루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한 일들에 대한 걱정과 원망으로 한 걸음 한 걸음에 불만을 담아 걷게 됩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점차 생각의 방향이 다른 곳으로도 흐르게 됩니다. 나는 왜 애초에 이 상황을 힘들어 하지? 이 상황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건 뭘까? 그 문제는 내가 고민하는 것만큼 실제로 큰 문제인가? 이 문제가 내 삶 전체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중요하지? 등등 다방면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면, 풀리지 않는 심각한 문제처럼 보였던 제 고민이 한층 다르게 보였습니다. 걱정이 다 사라지거나, 문제가 한 번에 얍 하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제 스스로의 답을 내리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밤 산책


밤산책을 나가실 때는, 밤을 연상시키는 잔잔한 뉴에이지 곡을 듣는 것도 강력 추천합니다. 저는 요새 이루마의 <Piano> 앨범에 나온 곡을 들으며 밤산책을 즐기는데, 참 좋더라고요. 혼자가 아닌 친구나 가족과 함께 나가 걷는 것도 진솔한 이야기를 하며 힐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앞서 생각이 흐르는 대로 산책을 즐기시는 걸 권해 드렸지만, 그래도 안전에는 유의하셔서 너무 외지거나 으슥한, 사람의 인기척이 너무 적은 곳은 피하시길 권고드립니다. 이 점만 주의하시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낭만과 성찰이 가능한 나만의 시간을 달빛 아래 보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모두 즐거운 밤산책 되시길 바라며, 저도 이만 밤산책을 하러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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