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아쉬웠던 점수인 토플 114점을 받고, 국제학부에 입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제가 영어고급자인 걸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영어”를” 잘 하는 게 아니라, 영어”로” 잘 해야 하는 삶에 부딪히기 전까진요….
교과서와 실무의 차이는 생각보다 어마무시했고, 저는 한순간에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한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수업 시간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매일이 괴로웠고, 그렇다고 가만히 괴로워하기에는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건 확실히 알았습니다.
초중급 레벨일 때처럼, 단순히 더 많이 영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달달 공부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란 건 직감적으로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몰라서, 피땀눈물이 서린 삽질을 몇 년간 한 결과, 제 나름의 고급자의 영어 공부법 3원칙을 발견했습니다.
원칙 1. 무의식에 패턴 각인시키기
질문 : 영어를 할 때 가장 익숙한 문장부호는?
답은 “…” 입니다.
꾸역꾸역 영어로 말을 이어나가다 보면 어김없이 괴롭고 긴 공백이 찾아옵니다.
말을 하다 갑자기 입을 반쯤 벌린 채, 다 이해한다는 듯 인내심 있게 미소짓는 외국인 강사를 앞에 두고, 머릿속으로는 발 구르는 백조처럼 필사적으로 영어 문장을 만드는 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고, 결국 이 짓을 몇 번 하다 지친 뇌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고만고만한 쉬운 표현만 가져다 돌려 쓰기 시작합니다.
결국 빡쳐서 내동댕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훈련 방법이 무의식에 패턴을 각인시키는 방법입니다.
그간 단어를 기준으로 드문드문 외웠을 때는, “forbid : 금지하다” 라는 식으로 단어장을 외웠겠지만,
이제부터는 “I was forbidden from…” 처럼 forbid가 나오면 from 을 자동적으로 입에 올릴 수 있게, 한 단어에 딸려 오는 표현을 뭉텅이로 기억주머니에 저장해 두어야, 말이 뚝뚝 끊기는 일이 적어집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다음 표현을 생각할 때에도 이미 많은 부분이 자동적으로 처리가 되니, 훨씬 정교하게 표현을 가다듬는 데에 뇌를 쓸 수 있고, 그렇게 점차 자신감도 붙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숙지 후 반복”이 무의식에 패턴을 각인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내용도 잘 모르겠는 어려운 뉴스를 무의미하게 끊임 없이 듣는 것보다, 확실히 내용을 숙지한 콘텐츠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게 가장 효과가 높았습니다.
이러면 효과가 낮아요.
원칙 2. 능동적 인풋
성실한 영고자 (영어 고급자)들은 이미 머릿속에 든 영어 지식이 많습니다.
“이 단어 아세요?” 라고 물어보면, 학생 때 단어장 좀 넘겨보던 짬밥으로, “예, 이 뜻이죠?” 하고 대부분 맞는 답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는 것과, 아는 걸 쓸 수 있는 건 레벨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단어장을 뺏고, “자 당신의 생각을 표현해 보세요!” 라고 하는 순간, 흔들리는 동공…. 쏟아지는 초딩 단어의향연….
Good, make, do, think, know….
단어 수준이...! 분명 많은 표현을 알지만, 사용할 수는 없는 건, 여태까지 수동적인 인풋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으로 영어를 입력할 때는, 단순히 머릿속의 단어장에 단어와 뜻을 입력하고는 뇌가 활동을 멈춥니다.
능동적으로 영어를 머릿속에 입력할 때는, 맥락과 사용방법을 함께 입력하게 됩니다.
이 때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쓰지?”가 됩니다.
같은 단어, 예를 들면 “potential”을 봐도, 수동적인 인풋을 할 때는 “잠재적인, 가능한” 이란 뜻이구나, 하고 멈추지만,
능동적인 인풋을 할 때는 potential 이 보통 어떤 단어 앞에 붙게 되는지, possible 도 가능하다는 뜻인데 potential 과는 뭐가 다른 건지 자연스럽게 꼬리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보다 정교하게 potential 이란 단어를 이해하고, 비로소 사용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참고로 사람마다 그 성향에 따라 능동적 인풋 시,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 약간씩 다른데, 그 내용은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습니다.
원칙 3. 무한 첨삭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분야에서건, 초중급자와 고급자를 가르는 훈련 방식은 바로 “첨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자기를 예로 들자면, 초중급자들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지만, 고급자들은 끊임 없이 도자기를 만들고, 깨고, 다시 만들고, 깨고를 반복하며 기술의 숙련도를 다듬어 예술에 이릅니다.
영어도 마찬가지로, 여태까지의 영어 공부 로직이 “머릿속에 많이 집어넣어” 였다면, 이제부터는 “계속 쓰고 다듬고, 쓰고 다듬자!” 입니다.
바야흐로 무한 암기에서 무한 첨삭의 단계로 끌려 온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오히려 노력한 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성질이 급한 분들일수록 쉽게 좌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려치우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펭수는 오늘도 귀엽습니다. 이번 영화캐스팅 편에서도 어찌나 열심이던지 우리 펭귄 충무로 데뷔해야 할텐데.. 참치 맥여주고 싶다.
공부한 걸 “쌓아 가는” 초중급 단계에서는 내가 얼마나 쌓았는지가 바로바로 눈에 보이기 때문에 공부를 계속하게 하는 리워드가 크지만, 공부한 걸 다듬는 과정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 효과가 느리고 조용하게 일어납니다.
언어는 패턴과 습관이고, 하루 아침에 습관이 변하지 않듯, 영어 또한 긴 시간 동안 다듬어야 새로운 습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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