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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Dec 18. 2024

빈곤 퇴치의 정치적 한계

작물학, 경제학, 의학, 사회학의 최신 발견을 기초로 한 정책을 펴면 가난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문장은 빈곤 문제 해결의 열쇠가 학문적 발견과 이를 실행하는 정책적 의지에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 상식이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학문적 토대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우선순위와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각 학문이 제시하는 빈곤 해결의 이론적 기반


작물학은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고효율 작물, 병충해 저항 품종, 농업 자동화는 세계적으로 식량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켰다. 경제학은 부의 재분배와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누진세, 기본소득, 공공 고용 정책은 빈곤층에게 경제적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다. 의학은 공중보건의 확산과 예방 중심의 의료 정책을 통해 건강 불평등을 완화할 잠재력을 가진다. 사회학은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며, 이를 정책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학문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빈곤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뿌리 깊게 존재한다. 이는 학문적 해결책이 정치적 의지와 결합하지 못할 때,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문과 정치의 단절


빈곤 문제 해결은 단순히 학문적 발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집권층의 의지, 즉 정치적 우선순위에 따라 학문적 발견은 정책으로 전환될 수도, 무시될 수도 있다. 누진세나 소득세로 부자에게서 거둔 세금이 빈곤층에게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국가 예산으로 편입되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편성된 예산은 빈곤 문제보다는 집권층의 공약 실현이나 정치적 우선순위를 따라 사용된다.


그 결과, 학문이 제시하는 빈곤 해결의 방안은 실제로 실행되지 못한 채, 정치적 계산에 따라 좌우된다. 빈곤 문제는 복잡하고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제이기에, 즉각적인 정치적 성과를 원하는 집권층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빈곤의 세습과 구조적 불평등


빈곤은 과거의 신분 제도처럼 세습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교육, 의료, 주거와 같은 기본 자원이 금전적 여유에 따라 접근성이 결정되며, 이는 빈곤층이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례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교육비 상승, 고용 시장의 격화, 주거비 부담 등은 빈곤층의 사회적 이동성을 축소시키고 있다. 빈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정책의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학문과 정치의 교차점 찾기


학문적 발견이 실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치적 의지가 필수적이다. 빈곤 해결을 위한 정책이 단순한 “선거 공약”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으로 구현되려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1. 시민 사회의 감시와 참여: 시민 단체와 매체는 빈곤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정책의 지속 가능성 보장: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유지될 수 있는 구조적 정책이 필요하다.

 3. 국제 협력과 압력: 빈곤 해결을 위한 국제적 기준 설정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빈곤 문제는 개인의 실패라고 말하기 어렵다


학문은 빈곤 문제 해결의 도구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빈곤층이 여전히 빈곤층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빈곤 해결이 학문적 한계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의 부재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빈곤 문제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적 실패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과 정치, 그리고 시민 사회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상식”은, 이제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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